왼손잡이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우리 사회에서 오른손잡이 인구는 90% 가량됩니다. 왼손잡이는 소수자입니다. 신기한 것은 왼손잡이의 비율이 문화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왼손잡이의 비율이 12~15%가량 됩니다. 또 2013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우리국민 중 왼손잡이의 비율은 5%입니다. 그런데 아랍문화권은 왼손잡이의 비율이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왜 지역에 따라 왼손잡이의 비율은 다를까요?
중세 유럽에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그 손을 ‘악마의 손’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영어에서 ‘불길한’, ‘사악한’의 의미를 지닌 ‘sinister’라는 형용사는 왼쪽을 뜻하는 라틴어 ‘sinister’에서 유래했습니다. 프랑스어에도 ‘왼손잡이 성향’을 뜻하는 단어 ‘gaucherie’는 ‘서투름’, ‘실수’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처럼 소수자인 왼손잡이를 괴롭힌 것은 사회적 편견이었습니다. 영어에서와 같이 우리말에도 오른손은 ‘바른손’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마치 오른쪽이 올바르고 왼쪽은 그르다는 뜻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는 어느 방향을 ‘옳다고’ 생각할까요?
2010년 스페인 그라나다대학교 훌리오 산티아고 데 토레스 교수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다니엘 카사산토 교수팀은 한 가지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실험참가자에게 좋아하는 동물은 착한 이미지로, 싫어하는 동물은 나쁜 이미지로 인식하게 한 것입니다. 얼룩말을 좋아한다면 착한 동물, 판다를 싫어한다면 나쁜 동물이라고 생각하게 한 것이다.
이어 착한 동물과 나쁜 동물을 종이에 그리게 했습니다. 이 결과, 왼손잡이는 착한 동물을 왼쪽에, 오른손잡이는 오른쪽에 그렸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에 대한 편견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사회적으로 오랫동안 학습한 결과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왼손잡이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바르지 않은 것’과 마주칩니다.
수저나 젓가락을 집을 때, 펜을 집을 때, 책을 넘길 때, 악기를 다룰 때도 모두 오른손잡이에 맞춰진 세상에 스스로를 맞추어야 합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왼손잡이들은 자신과 맞지 않은 ‘불편한’ 체험을 겪으며 오른쪽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즉, 우리는 자신에게 편한 손이 착하고 옳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오른손잡이가 다수인 사회에서 소수자인 왼손잡이는 알게 모르게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나귀가 걷기 시작했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시니 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요번만은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소설에서 주인공 허생원은 못난 얼굴과 가난, 소심한 성격 때문에 평생을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젊은 시절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 추억이 있습니다. 우연히 장터에서 만난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꺼냅니다. 허생원은 동이의 어머니가 자신이 찾던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허생원이 동이가 자신처럼 왼손잡이인 것을 확인하며 끝을 맺습니다.
소설 《메밀 꽃 필 무렵》처럼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가계를 조사해보면, 유전적인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른손잡이가 우성, 왼손잡이가 열성이라는 유전이론으로는 실제 왼손잡이의 비율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20% 정도는 우세한 손이 서로 다릅니다. 유전자가 같은데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영국 런던대 심리학과 크리스 맥마누스 교수에 따르면,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니라 오른손잡이를 결정하는 D(dextral)유전자와 그 돌연변이로 좌우를 선택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C(chance)유전자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서 모두 D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오른손잡이가 되는 반면, 모두 C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가 될 확률이 50%씩이라는 얘기입니다. 왼손잡이 부모에게서 오른손잡이 자녀가 태어나는 이유입니다.
만약 부모로부터 D유전자와 C유전자를 하나씩 받은 DC형은 어떻게 될까요? D유전자를 우성으로 생각해 오른손잡이를 계산하면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유전자가 반반씩 기여한다고 계산할 경우, 오른손잡이가 될 확률은 75%(=100×0.5(D) + 50×0.5(C))이고 왼손잡이가 될 확률은 25%(=50×0.5(C))이라고 가정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맥마누스 교수는 현재 왼손잡이가 10% 내외인 것을 참고해 D유전자와 C유전자의 비율이 8:2라고 계산했습니다. 이를 적용하면 부모 모두 오른손잡이일 경우 자녀의 8%, 한쪽이 왼손잡이일 때는 19%, 둘 다 왼손잡이일 때는 30%가 왼손잡이인 것으로 계산됩니다.
아직 왼손잡이 유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앞의 설명은 ‘D유전자 가설’일입니다. 그럼에도 궁금증은 여전히 남습니다. 왜 우리는 양손을 모두 능숙하게 쓰지 못할까요? 그리고 왜 오른손을 쓰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 더 많을까요?
50~60만 년 전에도 인류의 90% 이상은 오른손잡이였습니다. 미국 캔자스주립대학교 데이비드 프레이어 연구원은 스페인의 고대유적지에서 발견된 유골의 앞니 자국을 분석했습니다. 이 유골은 네안데르탈인이나 그 조상격인 인류로 믿어지고 있는데, 이들의 앞니에서 오른손으로 도구를 쓴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사냥한 고기를 가죽과 분리하려면 고기를 앞니로 입에 물고 왼손은 고기의 가죽을 붙잡은 뒤 오른손으로 돌칼을 잡고 내리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분석을 통해 50만 년 전 인류의 93.1%가 오른손잡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대 왼손잡이의 비율이 11%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연구진은 이 시기 오른손잡이가 많은 이유를 언어능력과 연관지어 설명합니다. 언어능력은 좌뇌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좌뇌는 우리 몸에서 주로 오른쪽 부분의 운동 능력을 제어합니다. 즉 오른손잡이는 언어능력의 발달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른손을 많이 쓰면서 언어능력이 발달할 수 있을 정도로 좌뇌가 커졌다는 설명입니다.
또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다니엘 아브라함 교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는 협동작업이 오른손잡이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특정 작업을 할 때 도구를 함께 쓰려면 같은 방향의 손을 쓰는 것이 효율이 높기 때문에 왼손잡이라도 오른손잡이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처음 활동할 당시에는 왼손과 오른손잡이가 제각각이었는데, 진화를 통해 큰 집단을 형성하면서 협동할 일이 많아지자 같은 쪽을 사용하도록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에도 의문은 남습니다. 왜 모두가 오른손잡이가 아닐까? 이 작은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경쟁’ 때문입니다. 협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같은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경쟁을 할 때는 변칙적으로 다른 방향을 써야 앞서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교수는 이를 야구와 골프선수의 예로 설명했습니다. 타자와 투수가 맞붙어야 하는 상황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칙 경기를 할 수 있는 왼손잡이 비율이 더 높은 이유입니다.
물론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우월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오른손이 ‘바른손’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8월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International Lefthanders Day)입니다. 이날은 전 세계 왼손잡이의 인권 신장과 왼손 사용에 대한 편견 개선을 목적으로 1976년 제정됐습니다. 이 날 만큼은 오른손잡이들도 병따개나 가위 등을 왼손으로 써보며 왼손잡이가 겪는 일상의 어려움을 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문헌
https://news.joins.com/article/4492798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1301N027
http://dl.dongascience.com/magazine/view/S200412N032
한국갤럽 (2013) 귀하의 자녀가 왼손잡이라면?, 보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