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를 보고
눈에 띄는 포스터가 있었다. 올해의 포스터로 꼽혔다는 소식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슬픔은 폭탄보다 거대할 수 있다는 문구를 읽었다. 그리고 이자벨 위페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라우더 댄 밤즈 Louder than Bombs>는 상실과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가족 구성원 중 전쟁사진작가이던 어머니가 세상을 먼저 떠났고, 3주기를 맞아 가족들이 다시 모인다.
떠난 사람에 대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조각은 조금씩 다르다. 사진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리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듯이. 때로는 함께 조각을 맞추는 과정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괴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기껏 스스로를 추스르기 위해 지었던 매듭은 다른 이의 줄과 얽히기도 하고, 다시 풀리기도 한다. 그렇게 감히 '이해'라는 단어로 담을 수 없는, 우리가 모르던 떠난 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Fragile"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맴돈다. 영화에서 이자벨 위페르는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당당한 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 덧붙인다. 강한 줄 알았는데 아마 fragile 했나 봐. 아들인 제시가 되묻는다. 그녀의 마지막 선택을 몰랐더라도 똑같은 표현을 할 수 있겠느냐고.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프랑스에서 만난 사진학 교수님을 떠올렸다. 팔레스타인 등 분쟁지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줄리엣 비노쉬가 전쟁사진작가로 나왔던 영화 <천 번의 굿나잇 A Thousand Times Good Night>도 떠올랐다. 극한의 상황과 평온한 일상을 오가는 삶. 끊임없이 터지는 사건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는 삶. 마지막을 예비하는 작별 인사를 매번 가슴에 담아야 하는 삶. 작업 후 일상으로 돌아오더라도 가족이 나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요로 하는 것 같지는 않다던 대사. 개인과 가족 사이에서의 그 끝없을 고민들.
상실과 부재에서 비롯된 텅 빈 감정은 결코 채워질 수 없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잠시 잊힐 뿐이라던 양 선생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가족들은 그동안 몰랐던 고인의 모습을 마주하고, 직시하고, 받아들인다.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 의미를 부여하여 나름의 매듭을 짓는 것.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매 순간을 그저 주변인들과 함께하는 것.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콘래드를 보며 다시 한 발자욱 앞으로 내밀 용기를 얻게 된다.(2016.11.4.)
마지막 문장은 상태의 서술이라기보다는 바램이자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