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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의바깥 Feb 01. 2017

다가오는 것들을 마주할 수 있으려면

영화 <다가오는 것들> 리뷰

 가장 사랑했던 뷔트 쇼몽 파크Buttes-Chaumont와 곧잘 영화를 봤던 당통Danton 거리를 배경으로 오랜만에 불어를 듣고 있으니 잠시 파리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L'avenir>은 삶의 새로운 순간을 담담히 맞아들이는 자세를 담은 영화이다. 철학 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역)는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비난받고, 남편은 새로운 애인을 만나 떠나며, 홀로 서지 못하는 어머니를 힘겹게 요양원에 보냈더니 이내 돌아가시고, 오랜 기간 저자로 참여해 온 교과서 출판에서 배제되며, 둘도 없는 동지적 관계의 애제자마저 그녀를 비판한다.


 항상 준비하지 못한 때에 불현듯 찾아오는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나탈리의 표정은 담담하다. 때로는 질문으로 반응하고 욕을 내뱉기도 하지만, 다가오는 것들을 지긋이 마주할 수 있는 태도의 근저에는 "상상력의 풍부함"이 자리하고 있다. 상상력은 때로는 비현실적이지만 분명히 효과를 발휘한다.


 여러 영화가 떠오른다. 우리네 다가오는 삶에 행운이나 진화 같은 특별한 변화는 없을 테다. 남는 것은 대개 상실과 이별인데, 그렇더라도 때로는 태연하게 때로는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단념의 정조를 담은 영화들. 상투적인 언명이지만 이를 일깨우는 개별 영화의 이미지가 지니는 힘은 세다.(김영진, "단념의 정조", 『씨네21』)


  삶은 계속 이어짐을 암시하는 다르덴 형제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내일을 위한 시간>, 어찌할 도리없이 예정된 실패를 껴안는 과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남다은, "소멸 중인 흘러넘침", 『씨네21』)을 체념이 아닌 적극적인 수동으로 담은 줄리엣 비노쉬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앞과 뒤가 급격하게 달라져도 그게 가능할 수 있는 게 우리 일상이고 지속적인 삶이며 그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김영진, 같은 글).


 나는 여전히(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관념적이어서 영화를 이해했다고 생각했건만 정작 내게 새로이 다가온 것에 우왕좌왕하며 쓴웃음을 짓고 있다. 아둔하여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만은 예외일 거라는 헛된 착각이었구나 싶다.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상상력을 내면에 지닌다는 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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