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낡은 우산 하나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검은 천에 몇 군데 작은 구멍이 나 있고, 손잡이는 세월을 머금은 채 빛이 바랜 나무로 되어 있다. 언뜻 보면 그저 버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나에게 이 우산은 단순한 생활 도구 이상의 무언가다.
그 우산은 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비 오는 날,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 우산을 들고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나는 비가 싫어서 할아버지 옆에서 투덜거리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비가 없으면 꽃도 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던 나는 그저 비를 뚫고 걸어가는 것이 힘들다고만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우산이 단순히 비를 막아주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에 떨어졌을 때, 오랜 친구와 멀어졌을 때, 그리고 인생에서 수많은 작은 실패를 겪었을 때마다 나는 그 우산을 떠올렸다. 할아버지가 말한 ‘꽃이 피는 과정’이 바로 이런 거였을까? 비는 불편하지만, 결국 그 뒤에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걸까?
이제는 비가 올 때면 일부러 그 낡은 우산을 꺼내 들곤 한다. 천의 구멍 사이로 몇 방울의 비가 스며들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좋다. 그 몇 방울은 나에게 삶의 균열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진실을 떠올리게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어딘가 결점이 있어도 그것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사람들은 자주 새롭고 번듯한 물건을 추구한다. 반짝이는 우산이 유행하면 다들 그걸 사고, 낡은 우산은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그 낡은 우산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의 삶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이며, 비가 오더라도 끝내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알려주는 조용한 속삭임이다.
다음 비가 오는 날, 당신도 집 구석에 묻혀 있는 낡은 무언가를 꺼내 보길 권한다.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을 두드릴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