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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pr 04. 2018

"서울지하철에 물류팀이 있다고요?"

지하철도 물류할 수 있습니다

지난 1월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에 물류사업팀이 정식 발족했다. 무인보관함, 지하철, 차량기지 등 도시철도 인프라를 활용하여 ‘도심물류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사람’을 나르는 지하철이 화물이라고? 왠지 모르게 이상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현행 도시철도법은 도시철도운송사업을 ‘도시철도시설을 이용한 여객 및 화물 운송’으로 정의하고 있다. 도시철도시설에는 ‘물류시설’이 포함된다. 지하철에 물류팀이 있다? 아직도 조금은 이상하지만 이런 것이야 말로 편견이다. 지하철도 충분히 물류할 수 있다. 


2017년 5월 31일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와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하나의 회사로 합병한다. ‘서울교통공사’의 탄생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서울교통공사에 사내 물류사업

TF(Task Force)가 발족한다. 여객 인프라인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업에 ‘물류팀’이 생긴 순간이다. 


공사가 도시철도 인프라를 활용하여 ‘물류’를 하고자 했던 시도는 10년도 더 전인 2006년부터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연구개발 단계에 그쳐, 실체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좀 다른 것 같다. 서울교통공사 물류사업TF는 지난 1월 ‘TF’를 벗고 물류사업팀이 됐다. 이번달(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시철도 인프라를 활용한 ‘물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객에서 도심물류 플랫폼으로 


서울교통공사는 역사의 무인보관함(해피박스), 지하철, 차량기지 등 도시철도 인프라를 활용하여 ‘도심물류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한다. 지난해 CJ대한통운,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과 협업을 통해 ‘지하물류’의 타당성 검증을 끝냈다. 검증대로라면 기존 퀵서비스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당일택배가 가능해진다는 게 서울교통공사의 설명이다.

첫 번째 인프라는 무인보관함이다. 무인보관함은 도심물류의 말단 집배송 거점이 된다. 시민들의 생활권역과 근접한 지하철에서 택배를 보내거나 수취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서울교통공사는 종전 5-8호선에서만 직영했던 해피박스를 이번달(4월)을 기점으로 1-8호선 전체 노선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 전체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마이크로 거점망이 생기는 것이다. 


두 번째 인프라는 지하철이다. 지하철은 무인보관함에 보관된 화물들을 수거하고 인근 수발송 센터에 이동시켜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배송수단이 된다. 회사측에 따르면 지하철 이용승객이 몰리는 러시아워를 피해서, 롤테이너가 이동하는 것으로 준비하고 있다. 따로 화물칸이 없는 지하철이기에, 롤테이너는 지하철 휠체어석에 비치할 수 있도록 개조됐다. 아울러, 지하철 배송인은 65세 이상 어르신, 발달장애인 등 취업소외계층을 고용할 계획이다. 


마지막 인프라는 서울과 수도권에 배치된 11개의 차량기지다. 차량기지의 남는 공간을 메인 DC(Distribution Center)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물류기업 입장에서는 택배물동량의 70%가 몰리는 수도권 최전방의 ‘물류센터’ 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서울교통공사는 20만평 규모의 차량기지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에 양측 모두 이득이 된다는 설명이다. 


장경호 서울교통공사 물류사업팀장은 “차량기지가 메인DC 역할을 하고, 차량기지부터 역 사이를 잇는 중간에 수발송센터(서브DC)를 두는 방식으로 라스트마일 서비스까지 이어지는 물류 프로세스를 검증했다”며 “이게 실현된다면 기존 퀵서비스보다 절반 정도 저렴한 가격에 수도권 당일배송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시민들은 더욱 다양한 배송옵션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령 지하철역사 인근에 거주하거나 퇴근시 특정 역사를 지나치는 시민의 경우 직접 택배를 수취하여 배송비 할인을 받거나, 반품이나 택배수취거점으로 무인택배함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여객? 물류? 선형시설? 


하지만 당장 서울교통공사의 도심물류 플랫폼 계획은 실현이 요원하다. 국내법상 차량기지는 ‘개발제한구역을 통과하는 선형(線形)시설’로 분류돼 있는데, 이 경우 물류시설로 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도시철도법상 도시철도시설과 도시철도운송사업은 여객뿐만 아니라 ‘물류’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이 점을 들면서 차량기지의 물류시설 활용을 국토교통부와 논의를 통해 타진하고 있다. 

장 팀장은 “도시철도는 여객운송만 하는 인프라라는 생각이 만연하다”며 “차량기지를 물류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토교통부와 논의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 말했다. 


그는 또한 “차량기지의 대형공간을 물류시설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 번에 많은 물동량을 움직일 수 있고, (물류) 효율도 나올 수 있다”며 “(차량기지를 물류시설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단계에서는 무인보관함을 활용한 ‘수하물 운송’ 이상을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 밝혔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이번달부터 5-8호선의 해피박스를 활용한 수하물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다. 여행객이 호텔에 맡긴 수하물을 수거하여 호텔 인근 지하철역 해피박스에 보관한다. 해피박스에 보관된 수하물은 지하철을 통해 ‘김포공항역’이라는 한 거점으로 모인다. 이후 공항철도를 통해 ‘인천공항’까지 전달된다. 


수하물 배송 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적인 R&R은 스마트박스, 공항철도(AREX), CJ대한통운 등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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