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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Sep 13. 2018

낭만의 역사 #2 문화물류의 탄생

물류보다 문화가 좋았다

물류로 전공을 바꾼 나에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입대라는 가까운 미래, 그 이전에 어떻게 놀고, 먹고, 즐기느냐가 당장 닥친 숙제다. 화려하게 널부러지고 싶었다.


밴드에 들어갔다. 기타로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연주의 재미는 알았다. 전과 공부라는 핑계로 제대로 달리지 못한 여정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전자기타를 들었다. 펑크밴드의 곡을 커버하고, 첫 공연 무대에 올랐다. 부평 루비살롱. 내가 참 좋아하는 국카스텐과 갤럭시 익스프레스라는 밴드를 배출한 그 장소에서 나는 스스로 락스타로 남았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기타는 못친다.

연일 술판이 이어졌다. 지역별로 다른 소주를 전부 마셔본다고 <내일로> 기차티켓을 끊고 전국을 일주했다. 청주, 대전, 대구, 부산, 순천, 전주까지. 스마트폰이 없던 그 때, PC방 프린터로 뽑아든 지도를 들고 맛집을 찾아 골목을 누비던 그 시절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찜질방까지 가는 길이 멀다며 차를 태워주신 청주의 파닭집 사장님, 대구 안지랑 곱창골목에서 술에 쩔어 찜질방 숙박을 거부당하고 갔던 당구장, 부산 해운대의 그 맛없는 BBQ 통닭이, 학생들이 무슨 이런 비싼 곳을 오냐면서 손수 쌈을 싸 음식을 먹여주던 순천 한정식집의 아주머니를 잊지 못한다.

입대 직전 26일 연속으로 소주를 먹었다.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남은 4일은 안식일이었다.

원없이 달렸던 2009년은 그렇게 저물었다. 앞으로 다가온 것은 입대라는 현실, 그보다 더 큰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다.


복학을 했지만 물류는 나에게 그렇게 재밌지 않았다. 화물운송론, 항공운송론, 물류시스템분석... 그저 오기로 열심히 했다. 실제 필드에서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했다. GLC(Global Leaders Club)라는 대학생들이 운영하는 교육법인에 운영진으로 참여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곳에서 운영진은 매달 회원들을 위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나는 대외협력일을 했는데, 장소섭외와 외부기관, 기업에서 협찬, 후원을 따오는 것이 주업무였다.

이슬람 이문화 미션 수행을 위해 방문한 이태원


GLC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딴 짓은 멈추지 않았다. 이때 눈에 들어왔던 것이 KT&G가 CSR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던 <상상유니브>였다. 상상유니브는 대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외부 문화예술 강연을 제공한다. 보컬, 기타, 와인, 그래피티, 댄스, 캘리그라피... 듣고 싶은 프로그램이 가득했다. 어반자카파의 박용인씨가 강연하는 보컬클래스가 특히 인기가 있었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과 KT&G의 기업 브랜딩 활동을 기획하는 대외활동이 있는데 <상상프렌즈>다. 그 모집공고를 보고 가슴이 쿵쾅 뛰었다. 정말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치열하게 준비했다. 면접장에 기타를 매고 들어가서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싸이월드에서 자료 발굴하고 있는 지금 봐도 정말 오글거리는 가사다. 그래서인지 면접장도 웃음으로 가득했는데 나만 새삼 진지했다. 그리고 받아든 합격장. 기뻤다.

당시 연주했던 곡의 가사. 이후 대외활동 도중 밴드를 만들었고, 그룹사운드로 CM송(다른 곡이다)을 만들어 녹음했다. 신문도 만들었는데, 그러고보니 이게 출판업과의 첫 인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6bFNOhc3DTw

상상프렌즈 활동중 제작한 홍보영상. 역시나 지금 보면(사실 그때도) 매우 오그라든다. 미쳤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오간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들과 협업하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쁨. 외부의 누군가를 설득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쁨은 이루말할 것이 없다. 문화가 피어오른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확실히 물류보다 '문화'가 좋았다. 더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문화경영'을 두 번째 전공으로 선택했다.


물류와의 상관성? 알게 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찾는건 오롯이 나의 숙제로 남았다.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인 '문화물류'를 이야기하고 다녔던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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