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와 신념에 대하여
내 인생의 곡점을 만들어 준 사람이 세 명 있다. 옛날에는 그 사람들에게 존경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존경은 돌아가신 분한테나 쓰는 단어라고 하니 내 나름의 리스펙은 간직하려고 한다.
첫번째로 대학교 7학기차에 만난 은사님. 기업가정신을 강연하던 분이었는데, 좀 특이했다. 강연에 반골기질이 묻어났다. 깔게 있다면 월급 주는 대학 총장도 까버리는 그 스피릿이 좋았다.
당시 난 전직장인 CLO에서 인턴생활 중이었는데, 그 분에게 배운것을 참 많이 써먹었다. 우리도 스타트업 같았고, 린스타트업이니 뭐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분께는 종강과 함께 한 페이지가 넘는 이메일을 작성하여 감사를 표했다. 내 대학교에서 굴러먹은지 8년만에 처음으로 강의를 통해 감동을 준 분이다.
두번째로 전직장 상사 한 분. 자유의 축복을 알게해줬다. 이 분은 왠지 모르지만 집시 같은 사람이다. 굉장히 대충대충 놀면서 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일이 만들어진다. 좀 신기했다. 그럼에도 일이 잘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실력이다. 무엇이 성과를 만드는지 궁금했다.
그 분의 기조는 나에게까지 이어졌다. 이걸 어찌 짬도 깜도 안되는 내가 할 수 있는가 생각되는 도전을 야생에서 하게 해줬다. 킬리만자로 언덕에 새끼를 던지는 표범의 심정이 이럴까. 그건 잘 모르겠다만, 과분할 정도로 미친 자유를 누렸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결과의 기쁨을 맛봤다. 사실 난 지금도 대충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지만, 조금은 대충 살게된 게 다 그 분 덕이다.
마지막으로 전직장 후배 한 분. 조직문화의 소중함을 알게 해줬다. 이 친구는 전투민족이다. 팀장이고 대표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 나랑도 몇 번 싸웠는데, 그렇기에 오히려 이 친구를 더 좋아하게 됐다. 꼰스럽지 않은 자유주의 문화를 몸소 개척하는 분이다.
이 분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문화의 본원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라곤 쥐뿔도 모르는 나에게 그걸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 이후 나는 CLO의 모든 가치사슬을 데이터 안에 담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근원이 됐다. 난 퇴사하는 그 친구에게 "널 감당할 수 있는 한국기업 아마 없을거다"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세 명 다 이상한 사람이란 공통점이 있다. 난 아직도 이상한 사람을, 자신의 길을 만드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그걸 단어로 표현하면 신념이고 속된 말로 곤조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