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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Oct 14. 2019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좋은 글의 세 가지 기준

때때로 읽다가 소름이 돋는 글을 만나곤 합니다.

글쓴이가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볼 정도로요.

저에겐 지난해 SNS에서 화제가 된 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이 그랬고요.

어제는 어쩌다가 <이바닥늬우스>라는 매체에 올라온 글들을 읽었는데 그 느낌을 받았습니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좋은'이란 수사는 꽤나 주관적입니다.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저에게도 좋은 글의 기준은 있습니다.

먼저 잘 읽혀야 된다는 것.

글이란 모름지기 잘 읽혀야 되고, 그게 기본입니다.

쉽거나 가벼운 내용을 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려운 내용도 쉽게 읽히도록 쓸 수 있고, 그건 실력입니다.

글의 시작부터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는 것도 까먹을 만큼 흡입력이 좋은 글들이 있고, 그런 글들을 좋아합니다.


두 번째는 경계를 넘나드는 글입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저마다 콘텐츠를 작성하는 정형화된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익숙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새로운 콘텐츠를 채워넣습니다. 저 또한 그렇고요.

틀은 안정적이고 빠르게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틀대로 매일 글을 쓰면 재미는 없습니다. 틀에 박힌 글이 됩니다.


단순히 글의 형식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글의 재료인 콘텐츠에서도 경계 넘기는 가능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의 소재를 관점을 담아 재해석할 수 있고, 그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계 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시간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고, 괜히 오버하다가 뭣도 아닌 글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형식을 깨부수는 글을 너무나 편하게 잘 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고, 부럽습니다.


세 번째는 콘텐츠의 내공입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콘텐츠의 깊이를 말하고, 이건 그 자체로 콘텐츠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 버립니다.

여기서 기자의 내공이라면 좋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취재를 잘하는 겁니다. 

아무래도 기자는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남에게 이야기를 잘 듣고 조립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기자가 아닌이의 내공이라면 좋은 네트워크에서 얻는 정보와 자신의 업력에서 갈무리 됩니다.

기자와의 차이점이라면 '자신의 업력'입니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콘텐츠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입니다.

가끔 내공과 글실력을 겸비한 현업 관계자들을 만나는데, 이건 부러움을 넘어 조금 무섭습니다.


이 세 가지 기준을 기자일에 치환해서 본다면 이렇습니다.

첫째, 잘 읽히는 글은 '필력'입니다.

둘째, 경계를 넘나드는 글은 '기획력'입니다.

셋째, 콘텐츠의 내공은 '취재력'입니다.

저 또한 이 세 가지 능력을 갈고 닦고자 노력합니다.


뜬금 없지만 이렇게 좋은 글을 만드는 기준에 대해 길게 쓴 이유는,

어제 본 <이바닥늬우스>에서 어떠한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히는 필력,

마치 기사 같지 않은 제목과 형식, 그러니까 경계를 넘나드는 무모함,

특유의 깊이 때문에 궁금해서 바이라인을 찾아보니 글쓴이들이 기자 출신이 아니더군요. 

현업에서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고민이 깊어지는 저녁이고, 술이나 먹으러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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