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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Oct 18. 2019

왜 일하는가

목표와 생존

어느덧 세 달 째에 접어든 북클럽(물류 까대는 북클럽) 진행으로 인해 여러 책을 읽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왜 일하는가>. 교세라 창업자이자 저서 <아메바 경영>으로 꽤 유명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썼습니다.


책은 짧습니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입니다. 딱히 어려운 내용도 아닌지라 술술 읽힙니다. 책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교세라의 전신인 교토세라믹을 창업하고, 회사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따라 갑니다. 그 과정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Part1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책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능력과, 열의, 마음가짐을 곱하면 일과 인생의 성공방정식이 나온다고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이게 긍정적(양수)이냐, 부정적(음수)이냐에 따라서 결과치는 능력과 열의의 절대값과 상관 없이 확연하게 바뀐다고 합니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자신은 능력은 부족했지만, 열의를 가지고 일했다고 회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일을 사랑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흔한 자기개발서가 이야기하는 법칙을 따라 갑니다. 가까운 예가 있습니다. 제가 나신교 경전이라 평가하는 론다 번의 <시크릿>. 강하게 염원하면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 나오는 '1만시간의 법칙'. 이 또한,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면 비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이 책은 한 몇 달 전에 기자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많이 공유된 기사의 주제인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워라인은 말 그대로 일과 삶의 통합을 이야기합니다. 일이 곧 삶이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이 즐거워야겠죠.


아쉬운 점은 <왜 일하는가>에는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론이 적혀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나모리 회장은 월급이 나오지 않고 밀려도, 한직에 떨어져도, 고객사가 단가를 후려쳐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잃지 않고 일에 몰입하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직원 입장에서는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네요.

사장님은 그럴 수 있는데, 우리는 아닌데요

Part2 워커홀릭


저 또한 한 때 일에 미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남들은 월요병에 시달린다고 하죠? 저는 월요일에 회사 가는 것이 너무 기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주말인데 굳이 회사에 나가 일을 한 적도 있고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당시 제 월급이 많다던가, 더 일한다고 회사에서 돈을 더 준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돈도 안 주는데 왜 이런 미친 짓을 자처했냐면 일이 재밌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것, 자유롭게 무엇인가 만들고 반응을 보는 것, 독자들의 응원과 늘어나는 페이스북 따봉이 제 즐거움의 동력이었습니다.


Part3 매니저, 에디터, 세일즈맨


그런데 어느 순간 일이 힘들어지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그 기점은 조직원들이 늘어나고, 제가 매니저 일을 맡고 부터였어요. 이제는 혼자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죠. 같이 잘해야 됐죠. 하지만 그게 어렵더군요. 저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모두가 잘 해야 되니까요. 모든 사람이 저처럼 미친듯이 일하지도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일과 삶의 균형이 일에 열중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필드에 나가서 취재를 하고, 제 이름이 걸린 글을 쓰고, 독자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관종이니까요. 하지만 팀장이 되고 나서 제가 주력한 일은 '에디팅'이었습니다. 후배 기자와 외부 필진의 글을 더 빛나게 다듬는 일을 했습니다. 이건 분명히 언론사가 더 좋은, 다양한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저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페이스북 포스팅은 여전히 계속됐지만, 제 글보다는 남의 글로 스토리텔링을 했습니다. 이렇게 쓰는 글이 정말 나의 실력이 맞는가 고민이 쌓여 갑니다. 이대로 살면 내 역량이라는 것이 남기나 할까 걱정 됐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점점 죽어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장은 멈추고,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프라인 이벤트를 기획하는 일도 했습니다. 가끔은 영업 전선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것 또한 분명히 언론사가 먹고 살기 위해서 중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저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 스스로 제 일에 떳떳하지 못했거든요. 


언젠가는 후원 요청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이메일을 받은 누가 전화로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아니 니네가 뭔데 돈을 내라마라요? 당신도 기레기입니까?"


그래요. 원치 않은 후원 요청, 협찬 요청.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죠. 이해가 됩니다. 그래도 떳떳한 글을 쓰고 있다고 자부했던 사람인데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매니저 생활은 저에게 별로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지만, 소중한 경험으로 남은 것은 분명합니다. 에디터로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제 주변에 남아있으니까요. 오프라인 이벤트 기획과 운영 경험이 지금 제가 주력하고 있는 바비네와 같은 유료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니까요.


Part4 사장님처럼 일한다는 것


다시 한 번 돌아와서 왜 일하는가. 많은 사장님들이 직원들에게 '사장님처럼 일하는 것'을 바랍니다. 하지만 사장님과 직원은 분명히 다른걸요. 직원들은 회사가 성장한다고 더 많은 돈을 벌지도 않고, 반대로 회사가 망한다고 큰 책임을 지지도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직원들에게 지분이라도 주라는 이야기냐"라고 반문하는 분이 있다면, 그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일을 스스로 즐거워해서, 시키지도 않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무엇인가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회사는 그런 직원이 있으면 당연히 잘해줘야죠.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자기가 재밌어서 더 하는데요. 보상해줘야 합니다. 심지어 잘하면요? 더 큰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가끔은 열과 성을 다 바쳐서 일을 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장님들도 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런 직원 많지 않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요. 스스로 자가발전하는 그 직원은 굉장히 고마운 존재입니다. 잘해주세요.


반대로 일이 즐겁지도 않은 사람에게 "사장님처럼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횡포입니다. 생각해봐요. 직원에게 오전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동안 끝낼 수 있는 만큼의 일거리를 주고 있나요?  혹시 직원들 모두가 매일매일 오전 7시 출근해서 오후 10시 퇴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게 매일 같이 야근하고, 초과근무하고, 주말근무하는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고 있나요?


예컨대 돈. <무엇이 성과를 이끄는가>라는 책에 나오는데, 돈은 성과를 일으키는 동기요인 중에서도 부정적인 동기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안 주지는 않았나요? 투명한 보상 체계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나요? 그냥 맘에 드는 사람 돈 좀 더주고, 친한 사람 승진시키고 있지는 않은지요? 


Part5 나는 왜 일하는가


저는 즐거워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일이 즐겁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하기도 싫은 일을, 나의 신념과 맞지도 않는 일을, 상사가 시켜서, 회사가 까래서 하게 되는 상황은 끔찍합니다.


그래서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한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한게 생각하는 것은, 회사의 목표와 개인의 목표를 최대한 동기화 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관종짓을 하면, 회사 브랜딩이 같이 오르고

제가 커뮤니티를 만들면, 회사 이익이 같이 오르고

제가 물류 글을 쓰면, 회사 광고가 많이 들어오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져야 

제가 즐겁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방점은 '오랫동안'입니다. 만약 제가 관종짓과 물류 글쓰기,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을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이런 행동들이 회사의 가치 향상에 도움이 안된다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언젠가 제가 싫어하는 일을 강요받을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잘릴 겁니다. 


제가 바이라인네트워크에 이직하고 어언 1년이 흘렀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오고 처음 세운 목표는 1년 안에 제가 받는 연봉 이상의 돈을 자가발전으로 벌자였습니다. 왜 굳이 기자가 돈을 목표로 잡았냐고요? 심지어 회사가 저한테 제시한 KPI는 돈 벌기가 아니었는데요. 그냥 좋은 기사 쓰는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돈을 벌고자 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 그러니까 떳떳하게 물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저널리즘은 저의 저널리즘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매체 아닌 곳으로 이직 면접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널리즘은 딱히 기업의 목표와 동기화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요.


그렇다고 세일즈맨이 제 미래라면 그 또한 슬픕니다. 이건 제 목표와 동기화가 안 됩니다. 기왕 돈을 번다면 떳떳하게 벌고 싶은데, 이 영역의 세일즈는 왠지 부끄럽습니다. 세일즈를 하더라도 구매자에게 충분한 가치를 줄 수 있는 세일즈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버는 법을 고민합니다.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미래에도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남고 싶어서 돈을 법니다. 기왕이면 좀 더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콘텐츠 전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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