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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Nov 18. 2020

포항에서 날아온 편지

평소처럼 술기운이 올라오던 17일 노량진의 밤. 버릇처럼 이메일함을 뒤적였다. 이건 뭘까. 평소엔 보기 힘든 제목 하나가 눈에 밟힌다. <크라우드소싱 라스트 마일 연구를 위한 면담 요청>이라는 건조한 제목.


그렇게 열어본 이메일의 내용은 제목처럼 건조하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려도 한 번에 끝나지 않는 장문의 메일. 이메일을 보낸 이는 서두에 자신을 포항 소재의 한 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라 소개했다.


그의 연구 분야는 OR(Operation Research)과 경영과학. 물류를 전공했던 나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드문드문 기억을 뒤집어 보면 나의 경영과학 성적표는 B+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점수다.


하지만 그 때 배운 경영과학의 방향은 지금도 내가 쓰는 글에 녹아있다. 물류란 수많은 연결에서 결핍을 찾아내고 개선하여 최적화하는 것. 나는 오랫 동안 이 생각을 내가 쓰는 모든 글에 녹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의 연구에 흥미가 동했다.


그는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을 연구한다. 여기서 크라우드소싱은 일반인 배송으로 치환해도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가끔씩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 앱을 키고 배달에 나서는데 딱 그런 용도다. 노동자는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기업은 불규칙하게 변하는 물동량에 그 노동력을 활용한다. 물량과 노동자의 중간에는 플랫폼이라는 녀석이 자리잡는다.


그의 연구 주제는 <크라우드소싱과 자차를 혼용한 라스트 마일 배송의 차량 대수 결정>이다. 그는 이메일에 그가 최근 해외 저널에 제출한 연구 논문을 함께 전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수식의 향연에 머리가 지끈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크라우드소싱과 기존 배송 프로세스를 동시에 활용하는 상황에서 라스트마일 물류망을 짠다고 했을 때 차량과 비용 비중을 어느 정도 둬야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논문의 방향이다. 크라우드소싱 네트워크 활용을 고민하는 물류기업, 화주기업이 관심 가질만 한 주제다.


논문은 제도권의 규제가 들어왔을 때 기업의 의사결정 변화 방향 또한 다뤘다. 플랫폼 노동이 전업화 되는 현상이 관측되고, 이에 대한 노동 문제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이 또한 대립점이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다.


그는 경영과학도로 기업 백오피스에서 일어나는 운영과 현장 최적화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기업의 장기적인 전략 결정에 있어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이 고려해야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문제도 명확했다. 그는 담담하게 백오피스와 현장의 사람과 대화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크라우드소싱이 활성화 되고 있는 서울과 달리 그가 있는 포항에서는 관련 서비스를 체험해볼 길도 막막했다.


그는 이야기 했다. 왜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인지, 왜 배달 라이더가 받는 임금은 변하지 않는 것인지 알고 싶다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데이터 과학이, 딥러닝이, 최적화가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그는 이야기 했다. 약 2년간 연구 과제를 수행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쓴 거의 모든 글들을 봤다고. 논문에도 그 내용이 다수 인용됐다고. 그래서 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부끄럽게도 그는 내가 오랫 동안 해온 삽질을 잘 알고 있었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것을 내가 해본 것은 사실이지만 현장 이해도가 부족한 것은 나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 배달을 해봤지만 잘하지 못했고, 셀러를 해봤지만 잘 팔지 못했다. 크라우드소싱이 전부가 돼버린 노동자들의 마음을 내가 공감하고 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나는 배달을 하지 않아도, 냄비를 팔지 않아도 들어오는 안정적인 수익이 있다.


오히려 내가 그에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도 법적으로 '물류'로 정의되지 못한, 이 영역에 학계가 관심을 가져주고 있음에 기뻤다. 내가 물류를 공부하던 10년 전. 물류란 중후장대한 무엇인가였다. 선박과 항공기, 컨테이너 트럭이 국가와 국가를 오가는 무엇인가였다. 내가 한창 쓰고 있는 물류란 녀석은 10여년 전 내가 배운 물류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생활물류'라는 이름으로 법제화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물류 아닌 물류를 이야기 한 나의 콘텐츠를 물류로 인정해줬다.


그의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무엇을 받으려면 교환할 만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대학원생인 그가 나에게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괜찮다면 식사 끼, 잔이라도 사고 싶다고. 그래도 시간 내줄 의향이 있다면 이메일로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답변받고 싶다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거절해줘도 괜찮다고.


방금 이메일에 답했다. 식사 한 끼, 술 한 잔을 산다면 내가 사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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