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용 Dec 08. 2020

구매대행을 반대로 돌린 비즈니스

매주 화요일의 뻘소리

알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일하고 있는 바이라인네트워크는 매일 아침 8시마다 구독자 여러분에게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저는 화요일 뉴스레터 담당인데, 뉴스레터를 써야하는 매주 월요일은 저에게 고뇌를 안겨주죠. 매번 쓸데 없음과 쓸데 있음의 경계선 상에서 뭘 써야 하는지 고민 되거든요. 맛집 리뷰를 하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하고, 가끔 짜투리 취재썰을 풀기도 하는데 어제는 후자였습니다. 구매대행 관련 기사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얼마 전 업계 관계자 한 분으로부터 전해 들은 구매대행을 거꾸로 돌려본 비즈니스 모델 이야기를 정리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이건 그 기록이에요.


먼저 구매대행 관련 개념부터 잡고 갑니다. 초기 구매대행 하면 이랬죠. 제가 외국 온라인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고 싶은데 이 물건을 결제할 방법도 없고, 배송할 방법도 모르겠는거에요. 그래서 네이버에 '해외직구 방법'을 쳤는데, 무슨 온라인 카페가 검색에 걸리네요. 구매대행 사이트래요. 그 카페에 들어가니 제가 사고 싶은 상품의 링크를 전해주면 견적을 준다는 공지가 뜹니다. 제가 상품상세 링크를 이 분에게 전해주면 구매대행 사업자가 그 요청을 기반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뒤 어떤 방식으로든 알아서 구매+배송을 소비자까지 해주는 모델이 구매대행입니다. 당연히 구매하기전에 돈부터 받죠. 계좌이체로요.


구매대행은 진화를 반복해서 현재의 외국 사이트 상품 정보를 긁어서 대량으로 업로드하여 판매하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굳이 카페에서 저런 짓을 하지 않고도 구매대행을 이용할 수 있어요. 어디서요? 네이버와 11번가와 같은 마켓플레이스를 통해서요. 거기 해외직구라던가 구매대행 마크 찍힌 글로벌 판매자들이 참 많이 들어와있어요. 이들이 상품 재고를 가지고 운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닐걸요. 여러분이 네이버나 11번가에서 상품을 구매한 정보를 해당 사업자들이 확인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알아서 구매+배송을 여러분에게 해주는 모델입니다. 그래서 배송속도는 좀 느려요. 더 느릴 수도 있고요.


사족이 길었는데, 본격적으로 역구매대행 이야기를 해볼께요. 여러분이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이라고 해보죠. 그러면 여러분은 한국 이커머스 업체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구매하고 싶을 지 몰라요. 현지에 유통 안되는 한국 제품도 많을 것이고, 유통이 되더라도 한국 온라인 구매가 더 저렴한 상품도 있을테니까요. 굳이 LG전자 TV를 한국에서 안사고 해외직구로 사는 것처럼요.


이 업체는 그런 고객들의 니즈를 찔렀습니다. 앱 메인화면을 보면 통상의 이커머스 업체와 비슷해 보입니다. 여러 상품 리스트가 뜨고, 베스트 상품 같은 것도 보여요. 다른 것이 있다면 여기 있는 상품들은 지마켓, 11번가, 네이버, 쿠팡, 위메프, 티몬 등 국내 마켓플레이스 상품 DB를 긁어와서 확보했다는 것이죠. 락앤락이나 안다르 같은 브랜드 자사몰 DB를 긁어온 것도 꽤 보이네요. 앱에서 노출되는 상품을 클릭하면 해당 쇼핑몰의 상품상세 페이지로 연결되는 식입니다. 예컨대 티몬이 판매하는 떡볶이 가루소스 상품을 누르면 티몬 상품상세로 넘어갑니다.


업체의 무기는 '통합 장바구니'입니다. 지마켓에서 구매한 상품도, 쿠팡에서 구매한 상품도, 티몬에서 구매한 상품도 업체가 제공하는 하나의 장바구니에 담깁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지마켓, 쿠팡, 네이버에 각각 방문해 개별 쇼핑해서 장바구니에 담아 배송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제도 비자, 마스터 등 해외카드, 페이팔 등을 통해 해외에서도 문제 없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결제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가격도 원화가 아닌 국제 표준이 될 수 있는 '미국 달러'로 노출이 됩니다.어떻게 보면 지그재그의 그 비즈니스 모델이 떠오릅니다.


여기 더 붙은 것은 크로스보더 이커머스를 위한 물류(AKA. 배송대행)입니다. 이 업체는 재고가 없습니다. 실제 구매가 일어난 다음에 지마켓, 쿠팡, 네이버 등지에서 상품을 구매하거든요. 그렇게 고객이 구매한 상품이 업체의 한국 집하지에 모인 다음에 합포장이 돼 상품을 주문한 해외고객에게 특송사를 통해 배송되는 구조입니다. 한국 배송비는 중복으로 낼지언정, 해외로 가는 배송비는 하나로 통합해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죠. 물론 날뛰는 재고는 마켓플레이스 특성상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래서 이 업체는 뭐 먹고 살까요. 어떻게 보면 이 업체는 한국 지마켓과 쿠팡에서 해외 고객이 구매한 상품을 소매가로 구매해서 되판매한 것이잖아요. 소매가에 더 높은 금액을 올려서 판매할까요? 그러지는 않습니다. 약간의 서비스비를 받긴 하지만 한국과 동일한 소매가에 상품을 판매합니다. (사실 고객도 바보는 아니죠. 검색하면 가격 다 나오는데...)


이 업체의 수익모델은 한국에서 수출신고를 하면 받을 수 있는 10%의 부가세 환급이라고 합니다. 여기 더해 물류에서 규모의 경제로 특송사 할인율을 꽤 많이 받아서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해외 배송비의 일부에서 돈을 또 벌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뭐 먹고 사는지 궁금한 업체지만, 나름 돈을 벌 구멍은 만들어놨다는 이야기죠.


마지막으로 이 업체가 한국의 많은 자사몰과 이커머스 플랫폼들에게 상품 DB를 퍼오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커머스 플랫폼이나 자사몰 입장에서는 그들의 상품을 '도매급'으로 사주는 플랫폼이 있다면 딱히 막을 이유는 없겠죠. 역마진이 나고 있는 이상한 상품만 아니라면요.


업체 이름은 광고스러울 수 있어서 굳이 뉴스레터에 써놓지 않았는데, 아침부터 수십통의 문의 메일이 들어오더군요. 덕분에 뉴스레터 독자 분들과 짧게나마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매번 뻘소리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데, 이렇게 독자 반응이 폭발적이면 나름 의미 있는 글을 쓴 게 아닌가 저 혼자 뿌듯해 합니다.


그래서 별로 안 궁금하시겠지만, 마무리는 바이라인 뉴스레터 링크로 잡아보겠습니다. 구독해주시면 제 뻘소리를 매주 화요일마다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요일에는 저 말고 다른 기자들이 저보다는 훨씬 유익한 이야기를 하니 도움이 조금 될지도요.

매거진의 이전글 포항에서 날아온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