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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Jan 18. 2021

디지털은 무한하지만, 무한하지 않다

100% 디지털 CES 2021 참관기

한국의 IT 기자들이 사랑하는 연례행사 CES 2021이 지난주 14일 마무리 됐습니다. 이번 CES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역대 최초로 '100% 디지털'로 진행된 행사였죠. 저도 CES에 참가했고, 오늘까지 총 5개의 콘텐츠 작성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참고차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난 2019년 중국 상해에서 열린 CES아시아2019에 방문했었고요. 그 때 오프라인 행사에 참가하면서 느낀 기억과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와 비교해서 올해 CES는 아무래도 디지털이기 때문에 생기는 장단점이 명확했습니다.

디지털로 진행된 CES 2020 메인화면(왼쪽) 및 기자가 방문한 CES 2019 아시아 아우디 부스 모습(오른쪽)

디지털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흔히들 디지털은 시공간을 초월한다고 하죠. 오프라인 전시회와 달리 디지털에는 '전시 공간'에 제약이 없으니까요. 관람시간이 정해진 오프라인 전시회와 달리 언제든 원할 때 콘텐츠를 열람할 수 있으니까요.


디지털 CES 2021에서 느꼈던 가장 큰 강점은 이거였습니다. CES 2021은 일정표에 맞춰서 키노트, 컨퍼런스 세션 등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라이브(사전 녹화한 거 트는 것 같은 업체도 보이긴 했습니다.)가 끝난 이후에 1~2시간 후에는 콘텐츠 다시 보기 페이지가 열립니다.

 

과거 오프라인 행사장의 경우 지정된 시간의 세션이 끝나면 별도로 관계자가 콘텐츠를 녹화해서 유포하지 않는 한 다시 콘텐츠를 볼 수 없었죠. 디지털로 열린 CES 2021에서는 행사 기간 동안, 심지어 행사가 끝난 이후에도 언제든 무제한으로 맘껏 콘텐츠를 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가 종료되고 한 달 뒤인 2월 15일까지도 요렇게 행사 DB가 살아서 다시 보기가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디지털 행사는 '물리적인 시간'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아래 사진은 제가 짜놓은 CES 2021 관심 행사 타임테이블의 일부입니다. <Retail Trends:The New Shopper>, <The Commerce Coundrum: A new Journey>는 모두 13일 12:15~12:45 사이에 진행했죠. 만약 오프라인에서 같은 타임테이블이었다면 저는 둘 중 하나는 포기했어야 됩니다. 디지털은 이 모든 것을 다 챙겨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원래대로라면 미국시간에 맞춰서 무조건 '새벽(한국시간 기준)'에 일어나서 콘텐츠를 봐야 했을텐데 '디지털 다시보기' 기능 덕에 이번 CES 2021에선 비교적 잠을 잘 잤습니다.

확실히 디지털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주최측이 '다시보기' 기능만 제공해준다면요.

CES 2021에서 제공한 '자막 서비스'도 맘에 들었습니다. 이번 CES 2021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총 17개국 언어로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제공해줬는데요. 특히 영어 자막의 디테일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기침이나 웃음소리까지 잡아내는 디테일이 있었고, 만약 스피커의 발음이 뭉개지면 해당 부분을 (안 들림)이라고 표기해주는 센스도 있었죠. 훌륭한 영어 자막과 달리 한글 자막은 보다보면 좀 많이 슬퍼지는데, 미국행사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해서 영어 자막을 틀고 행사를 본게 아닙니다.

아, 물론 제가 예전에 참가한 오프라인 CES아시아2019에서도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긴 했습니다. 주요 행사에 한정했기 때문에, 모든 발표를 통역과 함께 듣지는 못하는 한계가 있었지만요.

디지털은 무한하지 않다

이제 훌륭한 이야기는 다 했습니다. 디지털은 시공간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시공간을 초월하지 못합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디지털에도 좋은 자리는 한정돼 있거든요.


생각해봐요, 여러분. 저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고기를 팔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우삼겹을 검색하면 제가 파는 상품은 8페이지에서 노출되죠. 제 앞에는 1페이지에 40개씩 280개의 상품이 깔려있습니다. 우삼겹을 먹고 싶은 여러분이라면 굳이 앞에 있는 280개의 상품을 일일이 훑어 보면서 숫자도 애매한 8페이지의 제 고기를 구매할까요? 이건 제 매출이 증명합니다. 안 팔립니다.


대부분의 구매는 검색 키워드 1~2페이지에서 승부가 갈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론적으로 온라인 공간은 무한하지만, 무한한 공간이 모두에게 잘 노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때문에 잘 팔리는 특정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셀러들의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쉬운 방법은 네이버에 광고를 하는 거죠.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네이버 알고리즘을 파악해서 검색순위를 올리는 작업, 예를 들어서 리뷰를 쌓는다던가 판매량을 늘린다던가 배송 품질을 올린다던가 하는 작업을 막연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하면 저처럼 되죠.


CES 2021도 마찬가지입니다. CES 2021은 올해 오프라인 부스가 아닌 '온라인 부스'를 업체에 판매했습니다. 약 1959개의 회사가 디지털 전시관에 참가했죠. 온라인 부스란 쉽게 말해서 '배너'입니다. 배너를 클릭하면 해당 업체가 꾸며놓은 디지털 전시관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업체들은 이 전시관에 '홍보 영상'을 넣어놓기도 하고, 회사소개서를 넣어놓기도 하고, 담당자와 컨택포인트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CES 2021 전시회 검색 페이지. 한 페이지에 12개 업체의 배너가 뜹니다. 대부분은 이름만 봐서는 생소한데, 이게 무려 164페이지에 달합니다.

문제는 CES 2021 전시관 페이지에서 한 번에 노출되는 디지털 배너의 숫자가 '12개'밖에 안된다는 겁니다. 모든 전시관 참가기업을 다 보기 위해서는 164페이지를 오가면서 기업들을 눌러보고 영상을 봐야 합니다. 실제로 지난주 한 CES 2021 참가 스타트업 관계자가 행사 기간 동안 해당 업체가 연 디지털 부스에 방문한 사람이 10명도 안 된다고, 돈을 날렸다고 밝혀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디지털 부스가 공짜는 아니기에 업체들 입장에선 조금 억울할만 합니다.

업체들은 이런 식으로 영상과 소프트카피, 컨택포인트를 넣어 디지털 부스를 꾸밀 수 있습니다. 전시회 메인화면에서 아무 로고나 눌러봤는데 삼성 C랩이 나왔네요.

더군다나 디지털 배너에 노출된 로고만 봐서는 이 업체가 뭐하는 곳인지 직관적이지 않고, 가끔은 인터넷 속도 저하 현상이 발생해서 혈압이 오릅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은 먼저 미디어를 통해 CES 2021에 참가한 기업들을 알아보고, 그 중에서 제가 관심있는 기업만 검색해서 전시회를 봅니다. 당연히 전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기업에 관심을 갖고 많이 넣어놨고, 관심사가 공급망관리와 물류, 리테일이니 관련 외국기업을 추가해놨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방식으로 디지털 전시관을 방문한다면 '잘 알려진' 기업 중심으로 방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제가 방문하고 싶은 온라인 전시관 운영업체 리스트를 온라인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거진 다 알려진 기업들이죠.

소비자 입장에서도 화가나는 일은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전시업체 중에서는 CES 2021에 출품한 것과 정확히 똑같은 콘텐츠를 유튜브에, 그것도 CES보다 '먼저' 올려놓은 업체도 있었습니다. 제가 만약 돈내고 CES 2021에 방문했는데, 이 사실을 알았다면 화가 많이 났을 겁니다. 어차피 공짜로 유튜브로 보면 되는데, 굳이 업체 온라인 전시관까지 돈내고 찾아올 이유가 없잖아요.


반면, 제가 과거 참가한 CES아시아2019에는 오프라인의 맛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다가 눈에 띄는 제품을 전시한 업체가 보이면 업체 이름을 잘 몰라도 쓱 들어가서 보곤 했습니다. 심지어 2019년 행사는 개최지 특성상 대부분 중국업체들이 참석해서 업체 이름을 아예 읽을 수 없는 곳도 많았는데도 '오프라인'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취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시각'과 '몸짓', 그리고 '파파고'에 의존했죠. 그렇게 예전 제가 쓴 CES아시아2019 기사에는 올해와 달리 생소한 업체들이 많이 등장했죠. 디지털 행사장에선 이런 묘미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건 CES아시아2019에서 만난 쑤닝 부스의 스마트 저울인데요. '체험'은 확실히 오프라인이 가진 묘미입니다.

정리해보자면, 개인적으로 CES 2021은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때, 빠르고 정확하게 수급하는 데 '디지털'은 분명히 오프라인보다 편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CES에 참석한 목적이 콘텐츠가 아니라 네트워킹이었다면, 디지털이 갖는 한계는 굉장히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기업들의 기술을 살펴보는 데도 어려움은 있었고요.


다가올 2022년 열릴 CES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다시 한 번 온라인일까요? 오프라인으로 회귀를 택할까요? 아니면, 온오프라인을 병행할까요?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 중에서도 CES 2021에 참가한 분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번 행사는 어떤 경험으로 다가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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