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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Mar 22. 2021

가끔 쓰는 반성문

2014년 기자가 됐습니다. 딱히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재밌었고, 급여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처음 받았던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고마웠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행복은 생각보다 큽니다.


2015년 스타트업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스타트업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네트워크가 부족했고, 관계가 없는 큰 기업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작은 기업이라고 만나기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조금은 접근성이 좋았습니다. 그 때 만난 많은 기업들이 거대해지거나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사람입니다.


2016년 물류 현장을 방문 했습니다. 딱히 현장을 사랑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쓰는 많은 것들이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굴러가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에게 현장은 여전히 보여주기 싫은 것입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너무 잘해서' 혹은 '너무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물류 현장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용직으로 일을 하면 됩니다. 그 경험을 기록했습니다.


2017년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작은 기업의 대표자, 큰 기업의 실무자, 강연을 요청하는 대학 교수까지. 저에게 있어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행복은 생각보다 큽니다. 그 사이 저는 작은 팀의 리더가 됐습니다. 조직과 팀의 성장을 고민했고, 현장과 거리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2018년 새로운 조직에 합류합니다. 당시 소감을 브런치에 기록했습니다. 본업인 기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크고 작은 업무를 경험했다고요. 그렇지만 가장 즐거웠던 일은 현장에서 치고받는 취재였다고요. 콘텐츠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언론사가 돈을 못 벌면 생기는 슬픔을 짧은 경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콘텐츠로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면 아름답게요.


2019년 원없이 글을 썼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하고 싶었던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합니다. 작은 성공을 거뒀습니다. 물류 콘텐츠로 아름답게 먹고살기. 그 가능성을 여기서 봤습니다. 힘껏 달렸고 행복했습니다.


2020년 거대한 물결이 세상을 덮칩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저 또한 변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이전처럼 기쁘진 않았습니다. 성장 동력은 잃어버렸고 그 자리에는 타협의 아성이 남았습니다. 다행히 타협을 위한 변명거리는 있었습니다.


2021년 어느 날 한 IT업체 이커머스 물류 담당 실무자와 저녁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그가 이야기 하더군요. 제 글이 예전 같지 않다고요.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존경하는 한 투자업체 대표는 제 글에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제목만 봐도 솔직한 의견이 보이질 않아서... 아니라면 사과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그 분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이따금 쓰는 반성문입니다. 굳이 반성문을 일기장에 쓰지 않는 이유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타성에 젖은 저에게 약속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이들에게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움직여야 합니다. 흔들려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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