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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May 10. 2021

"쿠팡의 물류를 알아내라"

미시를 조립하여 거시를 연결한다

쿠팡의 물류를 알아내라. 제가 최근 만난 한 유통 대기업 실무자가 임원으로부터 지시받은 내용입니다. 사실 조금 더 디테일한 내용이 있는데, 그러면 대상자가 특정되는 만큼 이 정도까지만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만큼 시장에서 쿠팡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이야기겠죠. 수조원 매출, 수천명의 임직원수를 자랑하는 거대한 기업조차도 이렇게 관심을 가질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기업이 쿠팡의 물류를 알고 싶어도,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쿠팡은 내부 정보를 오픈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화(어디든 안그렇겠습니까만..)를 갖고 있고, 심지어 어찌어찌 내부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하더라도 쿠팡 직원이 공유 받고 있는 정보 또한 제한적입니다. 이미 쿠팡 출신 직원들이 상당수 합류한 그 기업이 굳이 저를 찾아와 '쿠팡'에 대해 물어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죠.


하지만 저라고 쿠팡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저는 쿠팡 출신도 아니죠. 그저 파편화된 정보 여러 가지를 조립해서 콘텐츠를 만들 뿐입니다. 때로는 쿠팡을 경험한 여러 내외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방식으로, 때로는 쿠팡과 관련된 채널에서 일을 하는 방식으로요. 하지만 감히 제가 그 정보가 최신의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고, 불과 몇 달 전 사실이었던 이야기가 오늘 거짓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를 찾아온 실무자는 "기업 내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발표를 해줄 수 없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죠. 제가 쿠팡을 이야기하는 것은 크게 의미는 없을 것 같다고요. 대신 어떤 특정 물류 영역에 관련 있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요. 저보다는 그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저는 왕왕 외부 미팅에서 "물류 전문가는 없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파편화된 물류의 전문가는 있을 수 있습니다. 배달대행 네트워크 운영 전문가가 있을 것이고, 3PL 창고 영업 전문가가 있을 것이고, 아티스트 굿즈에 특화된 이커머스 물류 시스템을 개발하는 전문가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배달대행 네트워크 운영 전문가에게 '화물 지입기사 네트워크 운영'을 물어보면 잘 모를 것이고, 3PL 창고 영업 전문가에게 '포워딩'을 물어보면 잘 모를 것이고, 아티스트 굿즈에 특화된 이커머스 물류 시스템을 개발하는 전문가에게 '국제물류 시스템 개발'을 물어보면 잘 모를 것입니다. 물류는 어디에든 있지만, 모든 물류 영역의 전문가가 되기에는 우리 인간의 수명이 그것을 허락하지 못합니다.


저 또한 '물류 전문 기자'라고 스스로를 지칭하기에는 부끄럽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희 바이라인네트워크는 이번 주에 '리테일&로지스 테크 컨퍼런스'라는 이름의 행사를 합니다. 무려 제가 취재하는 분야인 유통과 물류를 다루는 온라인 세미나인데요. 이 행사에선 저에게 있어 다소 익숙한 기업 홈플러스가 발표하지만, 저에게 있어 다소 익숙하지 않은 '마케팅' 분야의 내용을 다룹니다. 마찬가지로 저에게 있어 다소 익숙한 기업 쇼피가 발표하지만, 저에게 있어 다소 익숙하지 않은 '페이먼트',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역시나 저에게 익숙한 '풀필먼트'를 발표하는 기업 한국IBM은 역설적으로 저에게 익숙한 기업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이렇게나 모르는 영역이 많습니다.


쿠팡의 물류 또한 그런 것 같습니다. 쿠팡의 거시적인 물류 전략은 제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김범석 의장의 공개된 주주서한 정도야 참고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영역은 제가 다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쿠팡의 미시적인 물류 영역은 조금은 접근하기 편합니다. 관련된 사람의 숫자가 비교적 한정적이고, 그렇기에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도 쉽습니다. 이렇게 미시적인 영역을 여러 관계된 사람들과 함께 파고든다면, 그런 내용을 하나씩 조립한다면 쿠팡의 거시적인 물류 전략의 맥락도 조금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실무자의 답변은 비밀로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생각의 여백을 드리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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