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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Aug 04. 2021

#1 픽업 지연의 한숨

자전거 배달 일기

배민커넥트를 하다 보면 누군가 먹다 뱉은 것 같은 콜이 왕왕 보인다. 앱상에 잠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주문인데 이런 콜은 영 느낌이 쌔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나타난 주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라이더들도 안 주워 가서겠지.


그 날도 그랬다. 두집 배달을 마치고 담배 한 대 태우는데 나타난 꼬치집 주문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12분 정도 픽업 지연이 붙었는데 이런 가게를 방문하면 경험상 높은 확률로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대개는 이런 콜을 주워가진 않는데 그 날은 평소와는 다른 기행을 해봤다. 대체 왜 이리 주문이 안 빠질까 궁금한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분초단위로 변하는 프로모션 요금이 탐나서가 두 번째였다. 이미 3천원 가까운 추가할증이 붙은 이 주문은 통상의 2배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다. 다이나믹 프라이싱을 몸으로 느껴본다.


역시나 방문한 가게에서는 왜 이리 늦었냐는 한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담배 한 대 태웠을지언정 곧바로 인접 거리인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니. 애초에 내가 잡기 전부터 안 빠진 주문이렸고, 이런건 배민에 문의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답했다.


"그건 알지만, 소금구이는 빨리 가야 맛있는데..." 내뱉는 사장님과 "그냥 빨리 가라 그래"라 되받는 또 다른 사장님 내외의 한숨이 뒷통수를 간지럽힌다. 사장님들 입장에선 추가 배달료에 수수료까지 부담하고 배달앱에 입점한 것일터인데,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생각보다 배달은 수월하게 끝났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꼭대기가 목적지였고, 소주 포함 배달이라 주민등록증 인증이 번거로웠던 것 빼고는 평소와 같았다.


배민은 쿠팡이츠와 달리 주문을 잡기 전에 라이더가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배달하는 입장에서 이것 만큼 좋은 게 없다. 지리에 익숙해지면 내가 이동하는 곳이 산인지 언덕인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인지 사전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 것 같고 단가가 후지면 사전에 거른다.


반대로 사장님들 입장에선 이것 때문에 애 타는 일이 생길 것도 같다. 오늘 첫 번째 픽업지였던 한 치킨집은 시스템 오류 때문인지 앱상 픽업지 위치를 뒷산 중턱에 노출시켜놨더라. 나한테는 익숙한 동네 가게인지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지도까지 검색해서 재차 픽업지의 주소와 위치를 확인했고 앱에 노출된 픽업지 정보가 잘못된 것을 알았다. 다른 라이더들은 나와 같지 않을지 모른다. 그 사이 많은 라이더들이 가게의 위치가 산인 줄 알고 콜을 잡는 것을 꺼렸을 수 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면서 "혹시 여기 올 때 돌아오지는 않으셨어요? 아니 무슨 가게를 산에 박아놨어" 외치던 사장님의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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