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용 Nov 04. 2021

물류센터에 '패션 쇼룸'이 들어선 이유

풀필먼트 비즈니스 뒤틀어 보기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11월 4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2.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자 매주 목요일 뉴스레터를 입력하신 메일함으로 발송 드립니다.(무료)

3. 뉴스레터로 받아보고 싶다면 아래 구독 신청 링크를 눌러주세요!

[커넥트레터 무료 구독하기]

위드 코로나, 라는데요?

지난주 금요일의 일입니다. 한 F&B업계 지인과 술자리를 하던 중이었죠. 한참 술잔이 오고가던 중 지인이 고민 섞인 목소리를 뱉습니다. 최근 매장 홀은 사람 가뭄이라고요. 뽑고 싶어도 도무지 사람이 오지 않는다고요. 셰프가 주방은 물론 홀 업무까지 전부 맡아 하는 게 요즘에는 흔하다고요. 의도치 않게 가족경영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고요.


왜인지 물으니 의외의 답변이 들어옵니다. ‘배달대행’이 매장의 인력을 흡수하고 있다고요. 시간당 임금으로 치더라도 매장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배달 업무가 알바계의 블랙홀이 됐다고요. 한 편에서 ‘라이더’가 부족하다 아우성인 배달대행업계 누군가의 전언이 생각나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시간당 1만원 준다는데도 없어”...아르바이트 구직자 감소하는 이유는, 매일경제]


2021년 11월. 정부가 공인한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렸습니다. 신데렐라 셧다운이 사라진 첫날 배달 라이더들은 평소보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플랫폼들이 기본 배달비만 준다는 정보를 저에게 전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배달 주문이 서서히 줄고 있다는 언론사의 보도도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죠. 하루아침에 시대가 바뀐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배달주문 벌써 줄었다” ‘위드 코로나’에 배달전문점 뒤숭숭, 비즈한국]


바로 어제였죠. 위드 코로나 시행 이후 처음으로 오후 10시가 넘은 시간에 지인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9시 40분경. 드문드문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더군요. “우리, 이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로 계속 있어도 되는 거야?”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2년의 관성이라는 게 참 무섭지요.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렸고, 매장은 활기를 되찾았다고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 매장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열렸고, 다시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고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배차 간격과 함께 사라진 버스 기사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딜 가나 참. 쉽지 않은 세상이네요. 오늘 커넥트레터 뉴스픽 시작합니다.

위클리 뉴스픽 :

풀필먼트 비즈니스 뒤틀어 보기

지난 2일의 소식입니다. 패션 버티컬 커머스 브랜디의 풀필먼트 자회사 ‘아비드이앤에프’가 동대문 맥스타일 도매상가에 ‘패션 쇼룸’을 오픈했습니다. 브랜디에 따르면 맥스타일 도매상가 6층 전체를 ‘쇼룸’으로 이용하고요. 여기 약 2만여벌의 동대문 패션 상품 샘플이 전시 됩니다. 바로 옆에는 스튜디오와 탈의실도 있어서 누구나 쇼룸에 있는 옷을 입어보고 사진 촬영을 하는 것도 가능하죠. 쇼룸과 스튜디오 사진부터 보고 가죠.

[함께 보면 좋아요 : 아비드이앤에프, 동대문에 ‘셀피쇼룸’ 오픈]

패션 쇼룸이 들어선 맥스타일 도매상가는 브랜디의 ‘물류센터’가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맥스타일 도매상가 7층 전체와 8층 일부를 물류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죠. 물류센터 바로 옆에 패션 쇼룸이라니! 어떻게 보면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죠? 물류센터도 한 번 보여드릴께요.

하지만 이런 기묘한 조합이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패션 버티컬 커머스 ‘브랜디’의 비즈니스 모델, 나아가 아비드의 풀필먼트 비즈니스 모델 ‘헬피’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존식’으로 대표되는 풀필먼트 모델은 입점 판매자의 이커머스 물류를 대행해주고 보관비, 물류처리 비용을 받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3PL업체들도 디테일이 다를 뿐 이렇게 풀필먼트 모델을 설계합니다. 창고에 재고를 입고받아, 물류를 대행하고 ‘보관비’와 ‘물류비’를 받죠.


근데 아비드의 풀필먼트는 조금 다릅니다. ‘물류비’를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풀필먼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돈’을 줍니다. 상품이 팔리면 팔린 상품가의 약 10% 정도 되는 돈을 브랜디 입점 판매자(헬피 크리에이터)에게 정산해줍니다. 여기 남은 90%의 돈에서 운영비, 인건비 등을 제한 금액이 브랜디의 이익이 되는 셈입니다.


아비드의 풀필먼트가 ‘물류’ 서비스만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동대문 가치사슬의 뒷단과 앞단인 상품 소싱과 마케팅까지 확장해서 연결했습니다. 브랜디 입점 판매자는 상품을 골라보는 ‘안목’과, ‘예쁜 사진’을 찍는 역량, 이후 개인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마케팅’ 하는 역량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나머지 상품 소싱, CS, 사입, 플랫폼을 통한 고객 인입 등의 모든 과정들은 아비드와 브랜디가 대행합니다. 아래 그림과 같은 가치사슬을 브랜디는 설계했습니다.

왜 굳이 이런 귀찮은, 이상한 형태의 풀필먼트가 나왔을까요? 브랜디가 C2C 마켓플레이스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디는 애초에 개인 판매자, 블로그마켓을 공급자로 유입시킨 패션 플랫폼으로 브랜디는 성장했습니다. 적당한 패션 센스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휴대전화, 적당한 블로그,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있다면 누구나 브랜디에 입점하고 많은 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인천 모대학교에 다니는 옷 좀 잘 입는 여학생이 브랜디의 판매자가 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런 업자가 아닌 개인 판매자들은 동대문 가치사슬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물류요? 알 리가 있나요. 이런 개인 판매자들을 플랫폼에 유입시키기 위해 브랜디는 판매뿐만 아니라 소싱, 사입, 물류, CS 등 모든 과정을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동대문 기반으로 성장한 쇼핑몰의 데이터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성장한 B2C 마켓플레이스 ‘지그재그’와는 성장의 방법론이 다릅니다. 지그재그는 입점 쇼핑몰이 알아서 물류 잘 하거든요.


이제 정보의 파편이 다 모인 것 같네요. 물류센터에 패션 쇼룸이 들어선 이유, 짐작이 되시나요? 그 자체가 동대문 도매상가인 맥스타일에 있는 수많은 도매상들이 쇼룸에 샘플을 비치하고, 새로운 개인 판매자를 맞이합니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릴 마중물이 만들어 집니다.


반대편의 판매자들을 대상으로는 동대문 판매, 브랜디 입점의 진입장벽을 더욱 낮춰버립니다. ‘몸’만 온다면 브랜디 판매가 가능한 구조가 이 ‘쇼룸’에서 만들어지죠. 누구나 쇼룸에 방문하여 자기가 생각하기에 예쁜 옷을 골라 입어보고, 바로 촬영하여 셀카컷을 브랜디 플랫폼에 올려 상품을 팔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상품이 팔리면 매출의 10%가 통장에 꽂히는 것이죠. 굳이 험악해(?) 보이는 동대문 삼촌, 이모들과 거친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비대면으로 동대문 패션 판매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론칭 2년만에 한국 1 패션 쇼핑앱 만든 에이블리의 비결, 바이라인네트워크]


브랜디의 사례를 봤을 때 ‘풀필먼트’ 비즈니스를 굳이 이커머스 물류로 해석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사실 풀필먼트의 사전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채우는, 충족시키는, 완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풀필먼트가 충족시키는 게 고객의 ‘주문’일 수도 있고, 고객의 ‘만족도’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굳이 ‘물류’만이 고객의 만족도를 채우는 수단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물류뿐만 아니라 예쁜 상품을 손쉽게 찾는 ‘소싱’ 또한 고민일 수 있을테니까요.


고객의 부족함을 채우는 가치사슬을 구축하는 것. 그 또한 풀필먼트 아닐까요? 제가 브랜디의 비즈니스 모델 사례를 여기 들고 온 이유입니다.

넘어가긴 아쉬운 이야기들 :

'오월동주'가 당연한 시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죠. 요즘 이커머스판이 딱 이 모양새를 띄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시대입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소식만 모아 볼께요. 배달앱 요기요를 운영하던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가 GS리테일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났습니다. 10월 29일 ‘위대한상상’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GS리테일과 복수 사모펀드로 구성된 컴바인드딜리버리플랫폼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됐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배달앱 요기요, '위대한상상'으로  출발, 테크M]


새로운 위대한상상 체계의 요기요는 ‘하이퍼 로컬 커머스 플랫폼’을 표방한다고 합니다. 이건 지난 뉴스레터에서 좀 자세히 이야기했죠? ‘퀵커머스’와 ‘마이크로 풀필먼트’라는 키워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요. 편의점 중심의 망을 운영하는 GS리테일이, 퀵커머스의 위협을 받아 주가가 메롱이 됐다고 하는 GS리테일이, 퀵커머스의 기간망을 뒷받침하는 ‘음식 물량’을 뽑아낼 수 있는 요기요를 오늘의 혈맹으로 포섭해버렸습니다.


요기요와 GS리테일의 합병이 선포된 것과 같은 날. 약속을 한 것처럼 또 다른 동맹군이 만들어집니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마트의 이베이코리아 지분 취득을 승인한 것이죠. 단순히 거래액 규모 합산으로만 본다면 네이버, 쿠팡에 이은 3위 이커머스 플랫폼이 한국에 등장했습니다. 이제 ‘통합’이라는 새로운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겠지만요.

[함께 보면 좋아요 : 공정위, 신세계 이마트의 이베이코리아 지분 인수 승인, 전자신문]

[함께 보면 좋아요 : 이마트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온라인쇼핑 시장의 왝더독이 될까 , 찻잔속의 태풍이 될까, 꿈꾸는섬]


재밌는 건 이마트는 네이버와도 상호 지분을 교환한 ‘동맹’ 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죠. 네이버는 일본에서 소프트뱅크와 동맹군을 만들었는데, 소프트뱅크는 아시다시피 ‘쿠팡’의 쩐주이기도 합니다. 한국 이커머스 플랫폼 1, 2, 3등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미묘하게 자본이 연결된 애매한 구도가 함께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 또한 오월동주죠.


오월동주는 이커머스 업계에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11월 1일이었죠. 북미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우버’와 한국 2위 모빌리티 플랫폼 ‘티맵모빌리티’ 동맹의 결과물 ‘우티(UT)’의 전략이 공개됩니다. ‘사전 확정 요금제’, ‘카풀’, ‘택시 물류(?!)’와 같은 관계 기관 허가가 필요한 선 넘는(?) 비즈니스 모델을 경쟁력으로 발표했습니다. 시장의 절대강자 카카오모빌리티에 균열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모험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습입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추가 요금 없이 타세요” 우버-티맵 합작 ‘우티’ 본격 시동, 헤럴드경제]


모빌리티, IT업계에 관심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SK텔레콤은 카카오와 경쟁 관계이자, 혈맹 관계입니다. 지난 2019년 서로가 보유한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죠. 네이버가 2020년부터 CJ대한통운, 이마트, 카페24 등과 공격적으로 진행한 지분교환과 같은 방법론을 카카오는 한 템포 먼저 한 것입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SKT-카카오 손잡았다...3천억 규모 지분 맞교환(종합), 연합뉴스]


2019년 당시 SK텔레콤, 카카오 양사는 통신, 커머스, 디지털 콘텐츠, 미래 ICT 등 4대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는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 눈에는 통신, 커머스, 디지털 콘텐츠, 미래 ICT. 이 모든 영역에서 양사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 착각일까요?


오늘 커넥트레터는 이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요즘 가끔 지인 분들과 통화하면 많이들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왜 뉴스레터에서 술 냄새가 나냐”, “주 8일 술먹는 거 아니냐” 등등.


음, 제가 어제 밤에 술을 먹었을지언정 주말엔 술은 안 마시는 게 원칙입니다. 사실 뉴스레터 발송시간이 오후 4시가 된 것도 술 영향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어쨌든 다음 주에 또 만나요. 뿅.

1. 이 글은 커넥터스가 만드는 큐레이션 뉴스레터 '커넥트레터'의 11월 4일 목요일 발송분입니다.

2.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하고자 매주 목요일 뉴스레터를 입력하신 메일함으로 발송 드립니다.(무료)

3. 뉴스레터로 받아보고 싶다면 아래 구독 신청 링크를 눌러주세요!

[커넥트레터 무료 구독하기]

매거진의 이전글 카카오가 퀵서비스 회사를 인수한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