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하지 못한 언론사의 슬픈 민낯
몇 달 전 늦은 밤 한 스타트업 임원의 연락을 받았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걸 대응해본 적이 없는데, 아는 사람이 대표님뿐이라서요... OOO 언론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요. 저희와 관련한 부정적인 소식이 있다고 기사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저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스타트업은 한창 투자 라운드를 진행 중이라 했다. 부정적인 기사는 한창 진행 중인 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대표이사를 통해 임원들에게 비상지령이 떨어진 모양이다. 넌지시 새로운 질문을 얹혔다. “혹시 어떤 이슈로 기사를 쓰겠다고 하던가요?”
짧은 한숨과 함께 대답이 돌아온다.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요. 그건 말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OO일 기사가 올라갈 예정이라고...”
한 줌의 부끄러움이 머릿속을 스친다. 이슈에 대한 확인? 당연히 언론사가 할 일이다. 특히 부정적인 이슈를 다룬다면 그 사건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에게 그렇다, 아니다, 심지어 답변을 못 받더라도 그 ‘사실’ 한 문장을 콘텐츠에 담아야 한다. 마땅한 이 업계의 도리다.
근데 당사자에게 무슨 이슈인지조차 이야기 않는다는 건, 소명을 담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다. 이건 부정적인 이슈가 퍼지는 게 싫다면, 돈을 내놓으라는 뜻이다. 협박을 하지 않았지만, 굳이 돈을 달라는 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알아서’ 처신하라는 뜻이다. 언제 기사가 발행되는지 친절하게 날짜까지 알려준 것을 보니 더욱 그렇다.
나는 전화를 준 그 분에게 이야기했다. “광고 달라는 것 같은데요? 근데 굳이 줄 필요는 없어 보여요. 진짜 제대로 취재한 기자라면 이런 식으로 연락 안합니다. 투자 돌고 있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고 연락한 것 같은데, 막상 나와도 별거 없을 가능성이 커 보여요. 콘텐츠 나온 이후에 대응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이 회사는 그 언론사에 광고비를 집행했다. 투자가 꺾이면 기업의 지속을 보장하지 못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원천 차단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소식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그 기사는 그렇게 세상 어디론가 묻혔다.
이건 내가 경험한 파편이다. 하지만 흔한 업계의 괴담이다. 언론사의 수익모델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매스미디어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그 자리엔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들어섰다.
그렇게 언론사의 수익모델은 망가졌다. 구독은 광고 집행의 명분을 만드는 의미 없는 부수 발행을 늘렸다. 폐지 사업자들의 소싱처가 되는 웃음거리가 됐다. 광고는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었다. 관계 구축을 위한 보험 상품이다. 돈으로 마땅히 알려져야 할 정보를 막는 명목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관행은 고의로 부정 이슈를 부각시키는 ‘삥뜯기’라는 이름의 변종 수익모델을 탄생시켰다.
누구의 책임인지가 무엇이 중요한가. 자생하지 못한 언론사의 슬픈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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