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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Oct 09. 2016

우리들의 3개월, 조금은 차갑게

가을의 시작, 동해안의 끝에서

최근 몇 주 동안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저를 지탱하던 가치의 흔들림이 그 원인입니다. 새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간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저는 지난 7월 1일부터 CLO의 콘텐츠 제작 및 유통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 같은 경우 편집회의를 통해 방향만 잡고 대부분을 일선 기자들에게 위임합니다. 그렇기에 제 실질적인 역할은 콘텐츠 유통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덕분에 제 역할 또한 일선 취재 및 기사작성에서 콘텐츠 편집 및 유통으로 바뀌었습니다. 언론사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취재기자에서 편집기자로 역할이 바뀐 것이며, 더욱 크게 이야기하자면 일선 기자에서 데스크의 권한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앞서 제 자신에게 새롭게 부여한 미션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디지털마케팅'입니다. 지금껏 생각없이 쓰고 올렸던 콘텐츠 유통 방식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면, 그리고 그것을 데이터 기반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의 유의미한 결론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시도로 페이스북 콘텐츠 송고 균일화가 있습니다. 현재 CLO 웹사이트 유입의 40% 이상은 페이스북에서 발생합니다. 때문에 페이스북 콘텐츠 유통은 CLO 트래픽 증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기존 난잡하게 페이스북에 올라가던 콘텐츠를 주 7일 하루 1회 이상 균일 송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1회 페이스북 송고 시간 역시 트래픽이 가장 집중되는 시간대인 주중 08:00, 주말 및 휴일 10:00로 고정했습니다. 여러 콘텐츠가 동시간에 중복 송고되면 페이스북 도달률이 낮아지기에 2개 이상의 콘텐츠 송고는 3시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뒀습니다.     


두 번째는 'HR'입니다. 자유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성과에 따라 보상 받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언론사에 구글과 같은 조직문화를 구축해보고 싶었습니다. 


기자들에게는 절대적인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기자가 지켜야 할 것은 단 두 가지. 마감(Deadline)과 개인 브랜딩이였습니다. 기자의 성과는 콘텐츠 송고량, PV, 취재기사 평균PV로 측정되어 절대량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 매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핵심은 콘텐츠팀을 구성하는 기자의 브랜딩입니다. 기자의 가치는 광의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좁은 분야에서 여러 이야기를 청취하고, 그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 나타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저는 물류 전문지라는 좁은 분야 안에서도 기자의 전문 분야를 더욱 좁혀 나갔습니다. 각 기자의 관심 사항을 중심으로 한 영역을 집중 취재하며, 점차 그 영역을 확장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기자의 인사이트는 하나의 전문 분야에서도 더욱 좁은 분야에서 여러 취재원의 이야기를 넓게 청취했을 때 나타나며, 그렇게 하나하나 천천히 영역을 공략해나가면 단순히 남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는 CLO 콘텐츠가 해운, 항공, 포워딩 등의 분야에 취약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3개월이 지났습니다. 안타깝게도 디지털마케팅, HR 각각의 영역에서는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차례 도약을 위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온 것입니다. 이는 제가 최근 몇 주간 겪었던 극심한 슬럼프와 중첩되기도 합니다.      


콘텐츠 유통의 절벽     


지난 3개월 동안 CLO는 트래픽 측면에서 정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CLO의 글로벌 트래픽 순위는 7월 50만위를 기점으로 8월 21만위, 9월 12만위, 10월 10만위까지 치고 올라왔습니다. 로컬 순위로는 1700위 대까지 진입했습니다. (디지털마케팅툴 '알렉사(http://alexa.com)' 기준)      

CLO 웹사이트 트래픽 및 방문자 지표(2016년 10월 1일 기준)


불과 3개월 사이에 CLO는 동종 전문지 중 최고의 트래픽을 기록했으며,  포탈에서 검색되는 꽤 많은 온라인 매체의 트래픽 역시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콘텐츠팀을 맡기 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물류판은 좁아서, IT만큼 넓은 분야의 독자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반증한 셈입니다.      


하지만 10월. CLO는 이제 성장의 정체기에 도달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치고 오르던 트래픽은 로컬 1800위, 글로벌 10만위대에서 거대한 장벽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균일하게 콘텐츠를 송고하는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콘텐츠의 양이 됐든, 질이 됐든, 그 이상의 유통채널, 전략을 구축하든 말입니다.     


자유로운 조직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콘텐츠팀은 자유로운 조직을 꿈꿉니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각각의 기자에겐 마감이라는 단 하나의 절대적인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책임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자에게 주어진 마감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에는 차질이 생기며, 그 모든 부담은 한 곳에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을 낳습니다. 물론 제가 방종이라 보았던 것들에도 이유는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능력밖"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부여한 책임은 그들에게 과중한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많은 기자들은 업무 노드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모든 기자들은 기존 부여된 업무 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합니다. 업무 시간을 초과하고, 주말에 글을 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여기서 저의 딜레마는 시작됩니다. 모든 기자들은 초과 업무에 대한 금전적 가치를 보상 받지 못합니다. 제가 금전적 보상을 건드리는 것은 어렵기에, 기자들에게 당장 선물해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성장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성장 없이 단순히 업무에 대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요? 제가 그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여기서도 고민은 시작됩니다. 제가 과연 이 위치에 있을만한 사람일까요?    


흔들리는 가치


기자의 인사이트는 현장에서 나옵니다. 현장을 떠난 기자는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지난 3개월. 저는 현장을 떠났습니다. 글을 쓰기보다는, 글을 고치는데. 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보다, 후배 기자들의 가치를 높이는데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들을 빠른 시일내에 성장시켜 종국에는 편집기자와 취재기자를 병행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시점은 곧 제가 현장에 복귀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최초 그 시점을 2개월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현장을 떠나 있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하고 있기도 합니다.  바이라인으로 이야기 하는 기자의 업무에서 바이라인이 실종된 상황...  제 가치는 대체 어디 있을까요?


기업의 이름이 당신의 이름을 좀먹게 하지말라

     

제가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제 자신을 잠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콘텐츠 트래픽 성장의 한계 도달. 내부적으로 기자의 책임이 흔들리는 상황. 마지막으로 현장을 떠난 제 자신에 대한 회의감...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됐습니다. 

     

조금은 차갑게, 가치를 찾아서    


생각을 정리하고자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생소한 길을 걷다보면 무엇인가 답이 나오지는 않을까.     


한반도 최동단. 끊임없이 이어지는 해안선을 정처없이 걸었습니다.  

   


너무 무겁게 살지는 않았나, 

스스로가 우리들에게 가혹하지 않았나,

조금은 내려놓아도 되지는 않을까,


항상 머릿속을 짓누르던 어떤 압박을 잠시 놓아두고 길을 걷고, 또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전히 자유가 만드는 가치를 믿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자유를 믿지 못하고 새로운 기준을 만든 것은 제 자신입니다.


저는 여전히 개인의 브랜드가 만드는 힘을 믿습니다. 그 브랜드는 누군가가 강요한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앎에 불구하고 그것을 강요한 것 또한 제 자신입니다.


조금은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이제 불과 3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뿐입니다. 


성장의 정체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꾸준히 성장해 왔으며, 이제 잠깐 짧은, 벽이라고 볼 수도 없는 시점에 도달했을 뿐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가치는 사람에서 나타납니다.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이 곳이 그것을 증명하며,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증명해 나갈 것입니다.


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만드는 문화,

우리가 만드는 성장,

그 과정중 겪는 실패마저도 가치가 됩니다.


그것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는 지금 제 상황은 또 하나의 축복입니다.


휴가의 끝. 

새로운 시작.

뜨거웠던 제 자신을 조금은 식혀볼까 합니다.


아직 저에게 시간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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