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을 돌아보며
귀가하는 버스에서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동중에 틈틈이 글을 보는 것이 버릇이 된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부터 시작해서 몇 개의 기사, 블로그, 브런치를 오갔습니다.
그러다가 들어간 한 선배의 브런치.
일반적인 언론사 생활(CLO는 아주아주 작은 규모의 신생매체입니다.)을 하지 않았던 저에게 그 선배의 글은 처음부터 깊게 와닿았습니다. 제가 하지 못했던 기자의 일상을 생생하게 체험시켜주는 매개체가 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글이 너무 재밌습니다.
한동안 읽지 않았는지, 눈에 익지 않은 글들이 보입니다.
찬찬히 가장 최근에 올라온 글부터 읽어나갔습니다.
그리고 3번째.
언제 함 봬야 하는데 날이 참 덥네요로 시작하는 그 글
익숙한데?
평소 굉장히 활달하고 열정넘치는 후배였기에...
익숙한데??!
글에 등장한 후배는 저였습니다.
쭉 훑어내리면서 괜시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봄.
선배의 글의 열렬한 팬이였던 저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선배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꼭 한 번 뵙고 싶다고요...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매체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공감하며 읽었던 선배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습니다.
2시간 이상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저는 끝없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본 그 글에는 저에 대한 선배의 애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감쳐야 하는데...
라는 생각은 어느덧 온데간데.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상을 주체하지 못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선배가 쓴 글의 제목은 내가 서 있는 이유
지금 제가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4년 7월. 취업 준비를 위해 언론사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가고 싶었던 기업들의 담당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과 한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분에 겨웠습니다.
14년 9월.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이 재밌었고 무엇보다 좋은 선배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했습니다.
15년 1월. 정식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한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15년 9월. 여러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언론과는 다른 환경 속에서 또 다른 언론이 궁금했는지 모릅니다. 그저 선배들의 영향력이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배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배울 것은 차고 넘쳤습니다.
16년 4월. 사람에 실망하고, 누군가를 실망시켰습니다. 사람에 상처입고, 누군가를 상처입혔습니다. 새로운 사람, 남아있는 사람, 떠나는 사람. 군중속에서 끝없이 흔들렸습니다.
16년 7월. 관리자가 됐습니다. 사람이라는 숙제는 아직 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숙제를 풀 수 있는 권한이 생겼습니다. 오롯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 달려왔던 2년, 이제 제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성장을 지원합니다. 때때로 사람을 향해 끝없이 타오르는 불신의 유혹 또한 견뎌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옆에 있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14년 7월. 제가 가고싶었던 기업에 계셨던 그 사람은 작은 조직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 조직도 작다고 할 수는 없으려나요.
14년 9월. 훌륭한 후배가 위대한 선배를 만든다고 이야기해준 그 선배는 이제 한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지라 위대한 선배는 못된 것 같지만 코 하나는 참 크십니다.
15년 1월. 세상을 바꿀줄 알았던 그 사람은 세상을 바꾸진 못했지만 한 사람은 바꿨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그 때 이야기는 농담처럼 오고갑니다. 시간은 많으니 세상은 천천히 바꾸면 되겠죠.
15년 9월. 이제는 제법 선배들과 술자리를 즐깁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이야기한 후배에게 "팀장이 후배들 앞에서 그런 소리 하면 안된다"며 고마운 쓴소리를 해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16년 4월. 모든 이를 붙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떠나간 이중 하나는 저에게 가장 큰 조언자가 됐습니다. 조직에 대한 생각,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해준 소중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 가장 즐거운 친구 중 하나기도 합니다.
16년 7월. 사람에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람이 문제라는 글도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믿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 것, 제가 서 있는 이유 또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 작게나마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마감의 영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