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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용 Jan 04. 2017

보관에서 유통까지 “무인보관함의 변신은 계속된다”

보관에서 배송으로, 배송에서 유통으로

미유박스. 지난 15년 도무지 잘 보이지 않던 물류스타트업을 찾느냐 안달나 있던 기자의 눈에 보였던 이름이다.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무인보관함을 통해 어떤 사업을 하는 업체 같았다. 전국 아파트 단지에 무인보관함 시스템을 구축하여 고객이 직접 미유박스 무인보관함을 통해 물건을 수취하거나,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는 기사도 봤다. 장차 무인보관함을 ‘배송 플랫폼’으로 활용한다고도 하는 것 같았다. 쭉 내용을 살펴봤지만, 사실 기자 입장에서 미유박스가 뭐하는 서비스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진= 미유박스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한 ‘배송 서비스’. 뭔가 다른 것을 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은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다시 한 번 미유박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이제는 ‘전통시장 배달대행’도 하는 것 같고, ‘퀵서비스’ 비슷한 것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기가 대체 무엇을 하는 업체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더라. 궁금한 마음에 행사장에서 만나 명함을 주고받았던 파슬넷(미유박스 개발사) 최원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대표는 지금 홍성에서 무엇인가 세팅하느냐 엄청 바쁘다고 전했다. 홍성? 충청남도에 있는 그 홍성 맞다. 무인보관함 업체가 홍천에 가있다고? 이 업체 대체 뭘까... 기자가 불쑥 파슬넷을 방문한 이유다. 


무인보관함의 변신은 무죄 


파슬넷은 2012년 10월 탄생한 기업이다. 2013년 서울시가 제공하는 ‘여성안심택배’의 하드웨어 공급을 진행한 업체이기도 하다. 이후 파슬넷은 인천 신기시장, 서울 중곡시장, 역곡 상상시장 등 6개 전통시장에 무인보관함을 통한 시장구매 물품 발송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시점 파슬넷은 무인보관함을 넘어간 ‘무인매장’ 사업을 강원도 평창과 충남 홍성에서 운영하고 있다. 


파슬넷이 변신에 변신을 반복한 이유는 ‘무인보관함’ 사업모델이 갖는 수익성의 한계 때문이다. 초기 파슬넷은 전국 아파트에 무인보관함 공급을 확대하고자 했다. 이는 몇몇 국내 무인보관함 업체가 추구하는 전략과 동일하다. 그러나 파슬넷은 아파트에 무인보관함을 공급하는 데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령 1000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하루 들어가는 택배물동량 300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무인보관함 500개가 필요하다는 것이 파슬넷의 설명이다. 그런데 아파트에는 그렇게 많은 무인보관함을 설치할 지상 공간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지하 주차장에 무인보관함을 설치하기에는 ‘택배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는 높이가 걸린다. 결정적인 문제는 아파트가 무인보관함을 설치하여 얻는 ‘수익’이 없다는 점이다. 무인보관함을 구매하는 주체인 아파트가 단순히 ‘입주민 서비스’ 차원에서 비용을 투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주거단지의 보관, 말단배송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통합택배’라는 무인보관함의 대체제가 이미 존재하기도 한다. 


최원재 파슬넷 대표는 “무인보관함 아파트 판매 사업은 이제 누가 하고 싶어도 쉽게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다”며 “아파트에 들어오는 택배 물량이 적으면 무인보관함 자체가 필요 없고, 택배 물량이 많으면 보관함 설치 공간이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라 설명했다. 


노령 일자리 창출의 중심, 통합택배가 뭔가요?

통합택배란 주거단지 밀집지역에 일정 공간을 확보하여 택배 보관을 대행하고 전동카트 등을 통해 주변 아파트 단지 약 7~8개에 대한 라스트마일 물류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국내 대표적인 사업자로 사회적기업인 ‘살기좋은마을’, CJ대한통운이 설립한 ‘실버종합물류’ 등이 있으며, 실버종합물류의 경우 노인 배송기사가 약 40~50개의 택배박스가 들어가는 전동카트를 통해 최종 배송하고 있다. 통합택배 사업은 수익성 측면의 숙제를 갖고 있어 사회적기업, 혹은 기업의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차원에서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인보관함의 두 번째 변신, 배송거점으로

 

사실 파슬넷은 처음부터 무인보관함이라는 하드웨어를 리스하거나 판매하는 사업이 아닌 ‘플랫폼’ 사업모델에 집중했었다. 2013년 파슬넷이 서울시에 공급한 ‘여성안심택배’ 박스 역시 사실 하드웨어와 함께 ‘하드웨어 관리’, ‘고객용’, ‘택배기사용’ 플랫폼을 일괄 배포하길 희망했다는 게 파슬넷의 설명이다. 


그러나 파슬넷에 따르면 서울시는 정작 중요한 플랫폼만 빼고 무인보관함을 그저 ‘락커’로만 바라봤다. 파슬넷이 ‘서울안심택배’를 공급하고 나온 결과 역시 ‘이것은 도저히 수익성이 나올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애초에 파슬넷은 무인보관함의 플랫폼화와 연계된 수익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하드웨어만 공급하는 그 때 상황에서는 그것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파슬넷은 한 차례 쓴 교훈을 얻고, 15년 9월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기존 무인보관함의 ‘보관’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배송’에 집중하는 또 다른 사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파슬넷 ‘전통시장 배송함’의 탄생이다.

사진= SK텔레콤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스마트배송 업무협약식. 파슬넷은 여기에 무인배송함 제공 사업자로 참여했다.

SK텔레콤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15년 9월 서울 양천구 소재 신영시장에서 전통시장 ‘스마트 배송 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파슬넷은 무인배송함 제공 사업자로 참여한다. 파슬넷 무인배송함의 핵심역량은 ‘모바일 플랫폼’이었다. 단순히 보관기능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전통시장을 이용한 소비자가 구매 물품을 무인배송함(미유박스)에 넣고 자체 내장돼 있는 터치스크린에 주소 등을 입력, 배송을 신청하면 통합택배 배송기사의 스마트폰으로 알람이 전송되는 등 시스템 연계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전통시장 배송함’ 서비스 론칭 당시 하루 평균 약 40여건의 무인배송 서비스 이용 실적이 나타났으며, 파슬넷 또한 전통시장 무인배송함 사업이 CSR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파슬넷의 무인배송함 사업 역시 ‘현금흐름’을 만들지는 못했다. 파슬넷이 또 한 번의 변신을 고민하게 된 이유다. 


임영수 파슬넷 부사장은 “현시점 파슬넷은 전통시장 배송 플랫폼 사업을 유지는 하되 더 확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 신선하긴 했지만, SK텔레콤이 무인보관함 설치비를 부담하는 모델인지라 애초에 CSR 목적 외에 비용 부담이 컸던 것이 사실”이라 밝혔다. 


파슬넷의 또 다른 도전, ‘무인유통’으로 드라이브 


파슬넷의 또 다른 도전은 기존 ‘배송 플랫폼’의 ‘유통 플랫폼’화가 중심이 된다. 무인매장 구축을 통해 산지에서 생산된 다양한 특산품과 생활용품, 신제품 등을 소비자가 소비하는 장소 인근의 무인매장에 입점 시키는 것이 그 골자다. 파슬넷의 무인매장은 매일매일 다양한 상품군을 큐레이션하여 고객에게 제공해줄 전망이다. 아울러 실시간으로 입고되는 상품 정보는 고객에게 전달되며, 고객은 그것을 무인매장에 가서 직접 구매하거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구매한 상품을 ‘통합택배’ 사업자를 통해 배송 받을 수 있다.(현시점에는 오프라인 구매만 가능하다.)

파슬넷의 무인보관함 ‘미유박스’의 진화(자료= 파슬넷)

파슬넷에 따르면 고객은 무인매장을 통해 산지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특산품이나 기업이 판매하는 신제품을 소비지 근방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파슬넷의 무인매장은 ‘직거래 유통’ 플랫폼을 지향하기 때문에 판매되는 상품 가격 역시 여타 오프라인 마트에서 판매되는 상품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파슬넷의 무인매장은 ‘온라인의 가격’과 ‘오프라인의 접근성’을 동시에 확보한 모델이다. 파슬넷은 무인매장을 통한 상품판매 매출의 10%를 무인매대 설치사업자(5%)와 파슬넷(5%)이 나누는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구축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오프라인을 통한 소비는 가깝지만 중간 유통마진 추가로 인해 비싸다는 단점이 있고, 온라인을 통한 소비는 편하고 싸지만 배송까지 최소 1박 2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며 “파슬넷의 무인매장은 온라인에서 사는 것과 같이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택배비와 같은 부가적인 비용 없이 소비지와 가까운 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모델”이라 강조했다. 


유통 플랫폼에 대한 의문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온라인 유통의 강점은 아무래도 유통채널 축소를 통해 단가 경쟁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광범위한 잠재소비자를 확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파슬넷의 오프라인 매장은 유통채널을 감축하여 단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는 있다지만 무인매장이 설치된 지역 소비자에게만 판매된다는 한계가 있다. 


파슬넷은 이에 대해 오히려 한정된 시장에 판매된다는 점이 ‘무인매장의 장점’이라 이야기한다. 베드타운 등 밀집거주단지 중심으로 생활거점이 구축되고, 지역의 택배 물동량이 늘어나기도 한 현 시점에 이르러서는 지역 고객의 수요만으로 충분히 무인매장의 모든 상품을 순환, 판매 가능하다는 것이 파슬넷의 설명이다. 파슬넷에 따르면 과거 택배사업 초기 연간 전국 택배물량이 88만 건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현재는 길음뉴타운의 1년 택배물량만 90만 건(2015년 기준)에 달한다. 


더욱이 파슬넷이 무인매장을 통해 판매하고자 하는 품목중 하나인 ‘지역 특산물’은 애초에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한정된 시장이더라도 공급을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게 파슬넷의 설명이다. 무인매장로 판매되는 또 다른 품목인 ‘신제품’이나 ‘생활용품’ 같은 경우에도 특정 지역에 한정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에 장점이 된다는 설명이다. 


최 대표는 “농산품은 공산품과 달리 한 해 생산량의 한계가 정해져있다”며 “가령 평창 곤드레나물이 올해 잘 팔렸다고 하여 내년 수확을 3배 이상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어차피 수확량이 고정된다면, 전국 유통채널에 판매하여 많은 유통비용을 지불하느니, 소비자가 집중된 일부 지역에 판매하는 것이 산지 생산자 입장에서는 이득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덧붙여 “파슬넷의 무인매장은 한정된 지역에서만 운영되기에 신제품 마케팅베드로도 이용 가능하다”며 “기업이 생각하는 마케팅 타겟 모집단이 있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대규모 생산이전 고객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나타난다. 산지 특산물을 소비지 근처에서 유통, 판매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대부분이 식품이 들어갈 무인매장의 상품 신선도 관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간단한 예로 ‘자판기 캔커피’야 30일이 지나도록 자판기에 방치돼도 문제가 없지만, 30일이 지난 곤드레나물이 판매되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파슬넷은 이에 대해서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파슬넷이 무인매장에 공급할 품목은 가격과 특산품이라는 경쟁력을 동시 보유한 상품이기에 오히려 소비자들이 먼저 상품을 사가기 위해 경쟁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혹여 재고가 남더라도, 그것을 경험한 산지 생산자는 다음 공급 유통량을 팔릴 수량 이하로 스스로 조절할 것이라 덧붙였다. 


최 대표는 “파슬넷 무인매장 판매는 ‘로컬푸드 매장’ 운영과 흡사하다”며 “로컬푸드 매장 점주들은 사업을 하면서 고객이 평균적으로 어느 날, 얼마나 물건을 사는지 경험을 쌓고, 이를 통해 팔릴 만큼만 상품을 조달한다”고 설명했다. 처음 몇 차례 수요예측 실패가 있을 수는 있어도 그 이후에는 생산자 스스로가 공급량을 조절할 것이라는 뜻이다. 


아직까진 미래형, 앞으로를 기대하며 


사실 앞서 설명된 내용들은 파슬넷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미래다. 현시점 파슬넷은 강원도 ‘평창’(2015년 12월 설치, 5월 가동, 총 130칸)과 충남 ‘홍성’(2016년 11월 구축, 총 90칸)에 무인매장을 구축했다. 파슬넷이 평창에 구축한 무인매장에서는 현재 평창 특산물인 ‘곤드레나물’이 판매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무인매장에 방문하여 나물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 특성상 매출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파슬넷의 설명이다.

사진= 파슬넷 홍성 무인매장(위)과 새롭게 구축한 평창 무인매장(아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슬넷이 실제 판매거점이 되는 ‘소비지’가 아닌 ‘생산지’ 인근에 무인매장을 구축한 이유는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의 지원사업과 관련 있다. 농림부는 파슬넷을 통해 기존 가판대 판매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농민들은 국도변 가판대를 통해서 그들이 생산한 산지 농작물들을 팔곤 한다. 가판대가 농민들을 위한 ‘직거래 장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가판대에서 판매되는 농작물은 따로 관리되지 않기 때문에 신뢰하지 못할 상품이 판매되기도 한다. 가령 지역 특산품인 나물을 판매한다고 하는 가판대가 실제로는 ‘중국산’을 판매하는지, ‘북한산’을 판매하는지 분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농림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시스템화된 가판대’ 개념의 무인매장을 시범사업 지역인 ‘평창’에 우선 도입한 것이다. 


아울러 파슬넷은 농림부의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유치 1호 기업으로 사업운영자금 5000만원을 지원받았으며, 무인매장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초기 비용 역시 농림부와 지자체가 100% 지원해주고 있다. 즉, 파슬넷 입장에서는 지원 기간 동안 자금 걱정 없이 얼마든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시간을 번 것이다. 


파슬넷은 향후 세종시의 지원을 통해 세종시 주거단지 및 시청사에 무인매장 2개소를 구축할 예정이다. 이후 파슬넷은 이를 길음뉴타운 등 아파트 주거밀집단지까지 확장할 전망이다. 파슬넷이 초기 진입 소비지로 ‘길음뉴타운’을 선택한 이유는 파슬넷이 일전 시장 배송을 하면서 관계를 맺은 통합택배업체 ‘살기좋은마을’이 소재한 곳이 길음뉴타운이기 때문이다. 파슬넷과 통합택배업체의 파트너십은 파슬넷의 무인매장 사업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파슬넷의 무인매장 도입계획(자료= 파슬넷)

즉, 앞서 언급된 파슬넷이 바라보는 미래는 파슬넷의 무인매장이 본격적으로 소비지 인근으로 확장했을 때가 될 것이다. 파슬넷은 현재 그 시점을 2017년으로 보고 있으며, 1차로 100개의 미유박스 무인매장 네트워크를 달성하고 2018년 전국 1만 개의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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