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진 대기업 압승
지난해 어느 날, 한 물류스타트업 관계자로부터 “사람을 뽑고 있는데 혹시 주변에 내용을 전달해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연봉은 2,500만 원선. 자신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분야를 막론하고 치열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했다.
시간은 흘러 올해 어느 날, 또 다른 물류스타트업 관계자로부터 사람을 뽑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연봉은 2,300만 원선. 전통적인 물류를 넘어 새로운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했다.
필자는 두 기업의 채용공고를 SNS에 열심히 퍼 날랐다. 필자 역시 물류학을 전공했기에 주변에 물류업계 취업준비생은 많았다. 그러나 그렇게 공고를 실어 나른 결과는 참담했다. 주변에 건넨 채용공고는 되돌아오지 않고 허공의 메아리가 되어 흩어져버렸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수단으로 ‘창업 활성화’와 ‘벤처 육성’을 이야기한다. 새롭게 출범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제1 국정과제로 내걸었는데 그 방안에도 역시 창업과 벤처 육성이 포함돼 있다. 국토교통부가 물류스타트업으로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며 고군분투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10일 대한상의에서 발표한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 추진방향' 발표자료 中. 벤처 창업 활성화가 일자리 창출 역량 강화의 한 방안으로 거론돼있다.
좋다. 분명 좋게 볼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정말 물류스타트업으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가능한가.
먼저 ‘좋은 일자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침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가 ‘일자리 질 높이기’를 목표로 발표한 계획이 몇 가지 있다. ▲ 공공부문 상시·지속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제로화, ▲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 강화(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 확립), ▲ 정규직 채용 원칙, 비정규직이 불가피한 경우를 법령에서 열거, ▲ 인센티브 및 패널티 강화(최저임금 위반과 임금체불 제재 강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지원금 확대 등)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좋은 일자리 만들기(일자리 질 높이기) 계획은 대부분 ‘정규직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취업준비생들도 ‘좋은 일자리=정규직’이라고 생각할까. 앞서 언급했던 두 물류스타트업은 모두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물류업계 취업준비생들은 그 자리를 외면했다. 왜일까. 취업준비생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란 과연 무엇일까.
직접 듣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 I대학교에서 물류전공생 4명을 만났다. 각각 어떤 기업에 취업하길 원하는지, 그리고 그 기업에 취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학생들의 답변에 ‘좋은 일자리’에 대한 힌트가 있으리라.
취업준비생 A는 대한항공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이룰 수도 있고 남들이 알아주는 기업이라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학사졸업생 B는 최종면접을 마치고 삼성전자로지텍과 KT 중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물류전공을 살릴 수 있는 삼성전자로지텍보다는 조금 더 안정적인 KT로 마음이 기운다고 했다.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C는 스타트업에 가고 싶단다. 왜냐고 물으니 자유로움에 끌린다고 했다. 가장 인상적인 답변을 한 사람은 석사과정 중인 또 다른 학생 D였다. D는 “어차피 여러 기업에 원서를 넣고, 그중 되는 곳 중에 면접을 보는 마당에 좋은 일자리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필자에게 되물었다. 맞는 말이다. 이는 지금 취업준비생이 직면한 현실이기도 했다.
▲ 대기업의 위엄. 한화, KT, SK,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LG, 현대중공업, 부영, 신세계, 두산, CJ, 포스코, GS, 한진 등 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대기업의 임원들이 간담회를 마치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의)
결국 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높은 급여, 누군가에게는 인지도, 누군가에게는 안정성, 누군가에게는 자유로움이다. 많은 이들이 취업을 희망하는 대기업, 의사, 공무원 등의 직업은 이러한 기준 중 몇 개는 충족하는 ‘좋은 일자리’인 것 같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은 어떨까.
1년 전 여름이었다. 국토교통부가 두 차례의 취업 박람회를 연이어 개최했다. 한 번은 코레일, CJ대한통운, 현대글로비스 등 물류대기업 및 공기업이 참여했다. 또 다른 한 번은 쿠팡을 위시하여 메쉬코리아, 원더스, 트레드링스 등 물류스타트업들이 참여했다.
두 박람회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뤘던 첫 번째 박람회와 다르게 두 번째 박람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썰렁했다. 기업가치가 무려 5조 원에 이른다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출격했음에도 말이다.
▲ 지난해 국토부가 주최한 물류스타트업 채용 박람회 오전 발표장 전경. 썰렁하다. 이 날 오전에 발표 예정이었던 한 스타트업은 발표를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썰렁함 때문은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실제 물류업계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일자리’의 무게추는 스타트업보다는 대기업에 쏠린다. 이해는 된다. 학생들이 보기에 일 많이 하는 거야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매한가지다. 그러나 대기업에 가면 최소한 명절에 가족들에게 회사소개를 할 필요는 없다. 급여는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고, 왠지 모르게 스타트업은 잘 망할 것 같다는 이미지도 있다.(안타깝지만, 실제로 잘 망한다.)
원승환 군산대 물류학과 교수는 “아직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물론 스타트업의 장점을 인식하고 취업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고 밝혔다.
신광섭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본인이 선택한 회사가 최소한 남들이 이름은 알아주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스타트업에 취업하고자 하는 일부 학생들도 존재하지만 그들도 어느 정도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선호하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불안정한 기업에 취업하길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과 스타트업은 체급부터 차이가 난다. 싸움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물류스타트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게다가 2년 전과 비교하면 그 숫자는 크게 늘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물류업계에서도 관측된다. 그들이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타트업을 선택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스타트업의 장점은 ‘자유로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스타트업의 단점 역시 ‘자유로움’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스타트업 취업을 선택한 4명의 물류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신선식품 커머스 스타트업의 물류담당자 A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서 취업을 고민하다가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A가 말하는 스타트업 근무의 장점은 역시 자유로움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안 보고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와 사소한 개선사항을 제기하더라도 바로 반영되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또한 (많은 이들이 잡부로 귀결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신선식품 영역의 재고, 배송, 주문처리 등 모든 물류영역을 두루두루 배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A가 언급한 스타트업의 단점 또한 자유로움이었다. 명확한 사수가 없어 모르는 게 있어도 누구에게 물어봐야 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A에 따르면, 스스로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타트업 물류현장이다. 그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되지 않은 탓에 현장 ‘까대기’에 투입되는 시간이 많아 육체적으로 힘든 것 역시 스타트업 물류현장의 고된 점이라고 했다.
라스트마일 물류스타트업 사원 B는 스타트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케이스다. 먼젓번 스타트업에서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새로 입사한 조직은 꽤나 맘에 든다고 한다.
B는 스타트업 근무의 장점으로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것을 꼽았다. 신입사원의 의견이라도 타당한 이유가 있고 논리적이라면 빠르게 업무에 적용되며, 일만 잘하면 신입사원도 PM(Project Manager)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B는 피드백이 바로 오기 때문에 업무에 책임감이 생기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스타트업의 장점이라고 했다.
반면 B가 말하는 스타트업의 단점은 간단했다.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B에게도 사수는 없었다. B의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언젠가 필자가 가입했던 ‘사수없는 주니어들의 모임’이라는 한풀이 카톡방이 생각났다. 이 카톡방에는 유난히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들이 많았다.
외국계 제조스타트업 물류담당자 C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그가 이직한 스타트업은 나름 업계에서는 ‘추종자’가 많은 유명 기업이다. 취재원이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 수도 있기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C가 경험한 스타트업도 여타 스타트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아 스스로 모든 것을 공부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C가 이야기하는 스타트업 근무의 장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환경이었다. 대기업에 다닐 때는 매일 시키는 일만 했고, 시간이 지나면 직급이 딱딱 올라갔다. 반면 스타트업에서는 ‘다이내믹’하게 일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꼽은 스타트업의 단점 역시 자유로운 환경과 연관돼 있었다. C에게도 사수는 없었다. 혼자서 관련 업무를 추진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삽질’을 하더라도 그게 삽질인지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는, 차라리 업무를 전부 뒤엎고 새로 시작한 것이 빠를 지경이었다. C는 그저 CEO나 매니저가 조정자의 역할을 잘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필자와 이야기를 나눈 스타트업 종사자 중 유일하게 실명을 허용한 사람이 있었다. 대기업과 신선시품 커머스 스타트업 물류담당자를 거쳐 현재 뷰티 커머스 미팩토리에서 20대의 나이에 물류팀장을 맡고 있는 양거봉 팀장이다. 필자는 양 팀장에게 스타트업 취업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양 팀장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사람이라면 스타트업에 들어가도 괜찮지만, 무엇을 할지 목적이나 방향이 뚜렷하지 않다면 일반적인 기업에서 체계를 배우는 것이 나을 수 있다”며 “규모가 있고 사수가 있다면 모를까,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그야말로 멘붕(멘탈 붕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앞서 언급한 스타트업은 사실 초기 ‘고난의 시기’를 잘 넘겨 수십, 수백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이름을 알린 업체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업계 관계자들이 느낀 바는 비슷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자유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자만이 스타트업에서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많은 고용을 창출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구인난과 취업난이 공존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스타트업이 더욱 성장하고,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의 기준이라 생각하는 조건이 여타 기업과 견줄 만한 수준까지 나아진다면, 스타트업은 충분히 취업준비생들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스타트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고용’보다는 ‘성장’이다.
민정웅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창업을 통한 성공사례, 즉 기업매각이나 상장 사례가 나와야 학생들도 스타트업을 좋은 일자리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는 기존 기업만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새로운 플러스알파를 만들자는 것이겠으나 학생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히 급여를 많이 받는 것 이상으로 스타트업 취업에 대한 여러 보상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성호 한국교통연구원 부연구위원(물류스타트업 연구 담당자)은 “예전 닷컴버블 때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업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혹여 실패하더라도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조금 더 성공한 스타트업 사례가 많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성공적인 사례가 많이 만들어진다면 스타트업 취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속도도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중심 성장기조 'J노믹스'. J노믹스는 3대 과제로 일자리의 양과 질 증대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된 격차 축소 또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단순히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이는 것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려는 것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이용섭 부위원장은 스타트업이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속칭 '삼세번 재기 펀드'를 만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진정 물류스타트업이 ‘좋은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하는 시간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