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K리그에서 '떡'의 새로운 고찰

떡은 정이다

by Vianney

'떡'

[명사] 1. 곡식 가루를 찌거나, 그 찐 것을 치거나 빚어서 만든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이것이 떡의 사전적 정의다.

그러나 우리 생활에서 '떡'은 음식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멀쩡한 단어도 '떡'과 합쳐지면 상스러운 표현이 되곤 한다. 대표적 예로 '떡검'이 있다. 떡값 받아먹은 검찰이란 뜻으로 사용되며, '떡값(뇌물)'을 받은 검찰이 권력을 이용해 봐주기,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이러한 별칭이 생기게 되었다.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떡'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잔치를 하거나 새롭게 이사를 가면 제일 먼저 한 것이 '떡'을 돌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웃의 '정(情)'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떡은 고사하고 이웃집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현실이다.

이처럼 '떡'을 통해 느꼈던 '정'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던 중,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정이 가득 담은 떡'을 만났다.

축구팬들에겐 '전쟁터'라 불리는 '축구장'에서 만난 '떡' 이야기다.


축구는 전쟁이다.PNG 포항 서포터 걸개 - 축구는 전쟁이다 반드시 이겨라

2017년 3월 18일. KEB 하나은행 2017 K리그 클래식 3라운드 강원FC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서 펼쳐졌다.

강원FC가 강등의 아픔을 이겨내고 클래식 무대에 복귀하며 4년 만에 두 팀의 매치업이 성사됐다.

시즌 전 이적 시장에서 두 팀 간에 이적과 트레이드를 통해 많은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이날 강원의 선발 명단에 4명의 포항 출신 선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홈 팀 선수 소개를 할 때 황진성, 문창진, 박선주 등이 호명되자 강원 홈 팬들과 포항 원정 팬들이 동시에 박수를 보내는 묘한 장면이 펼쳐졌다.

그러나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과 함께 그라운드 안과 밖은 전쟁터로 변했다. 축구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양 팀 선수들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고, 팬들은 각자의 구호와 함성으로 힘을 보탰다. 90분의 혈투 끝에 두 골씩 주고받은 두 팀은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승점 1점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창 알펜시아 스타디움은 스키 점프대가 한 쪽면을 차지하고 있어 경기장 입구가 하나다. 반드시 홈 서포터석 뒤를 거쳐야만 퇴장할 수 있다. 괜한 분쟁을 일으킬까 걱정되어 유니폼을 벗을까 잠시 고민을 했을 만큼 난감한 구조였다.

그러나 너무 추웠던 탓에 유니폼을 입은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강원의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어르신이 뒤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다가왔다. 대뜸 '좋은 경기였어. 둘 다 재밌게 축구하네'라며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이어 옆에 있던 나르샤(강원 서포터스)분들도 악수를 청하며 무승부의 아쉬움을 나눴다. 그러면서 "이번에 떡 줬으니까 포항 가면 과메기 준비해놔"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무슨 떡'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경기 종료 후 페이스북을 통해 '떡'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떡선물.PNG



강원FC 서포터 대표님이 평창까지 원정 온 포항 팬들에게 떡을 선물한 것이었다. 경기 시작 전 포항 서포터석에서 떡을 나눠먹었는데, 팬들이 포항에서 맞춰 온 떡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강원FC 서포터가 준 떡이었다니. 충격이었다.

축구장에서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 간에는 만나는 것조차 위험하게 생각한다. 양 팀의 역사나 경기 결과에 따라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강원 서포터의 대표가 원정석까지 찾아와 떡을 선물했다니. 다시 생각해도 신기했다.

경기 종료 후 강원 관계자에게 '떡'에 대해 물었으나 '정말 맛있는 떡'이라는 것 외에 아는 것이 없었다. 대신 구단 관련 콘텐츠 '강원과 포항은 예전부터 우호적이었다'라는 댓글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축구는 전쟁이다. 반드시 이겨라'라는 걸개를 다시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펼쳐지는 90분이 지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두 팀 선수들은 '포옹'이나 '악수'를 하며 전쟁을 마친다. 그러나 팬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경기장 밖에서 전쟁을 이어 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건·사고들이 발생한다. 유럽 축구뿐만 아니라 K리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서포터 문화가 유럽에서 왔지만 그들의 부정적 행동까지 따라야 할까. K리그 만의 서포터 문화를 만들어 90분 동안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종료 후엔 서로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K리그에서 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원정 팬들에게 지역 특산품을 선물하는 등 활발한 교류를 한다면 어떨까. 쉽진 않겠지만 이러한 변화를 통해 K리그 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도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평창에서 만난 '떡'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서포터 문화에서 다정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5월 27일, 포항 스틸야드를 방문하는 강원 원정팬들에게 포항 팬들이 어떤 선물을 건넬지 벌써 기대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포항-강원,알펜시아 원정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