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쇼몽을 통해 보는 말을 옮기면 안 되는 이유

by 김수철


정신과 진료를 하다 보면 부부 모두를 상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놀라운 일은, 같은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명절 때 가족들끼리 여행 잘 다녀왔어요. 좋았어요.”

그런데 아내는 말한다.

“명절 때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어요.”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가족.

그런데 서로의 기억은 전혀 다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이런 질문을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라쇼몽>.

한 사무라이의 살인사건을 두고

도적, 사무라이, 부인 — 세 인물이 각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자신이 본 “진실”을 말한다.


감독은 연출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정직할 수 없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악이다.”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더라도,

정신의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복잡하게 움직인다.

우리 안에는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인 왜곡이 일어난다.

즉, 우리가 보는 ‘현실’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필터를 거친 ‘정신적 현실(psychic reality)’인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

그 말에는 이미 그 사람의 감정, 기억, 해석, 그리고 자기 방어기제가 스며 있다.

결국 “전해 듣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전하는 말에 흔들리지 말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을 또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불편함 없이 표현하는 능력이다.

그게 바로 관계의 오해를 줄이고,

‘라쇼몽’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