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로즈
주저리 주저리
한줄평을 적기전 서평을 적어보기 위해서 파일을 열었다. 페이지 라는 프로그램을 열었을때, 폰트를 다운받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맥북으로 부터 받았다. 굳이 인터넷을 연결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별로 어려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핫스팟 연결을 시도 했다. 그런데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의 모든문제가 잘 되지 않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것이 맞다고, 세상 모든일이 마음대로 된다면 재미 없을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적당히 마음대로 움직여 줘야 하는것 아닌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서 광주로 가고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역시 생각하고 고민하면 된다고 했던가? 열차예매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까지 3장을 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하행선으로 일요일은 상행선으로..일요일 상행선은 밤에 와야겠다. 그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늦게 이동해도, 나 혼자 움직이는 일은 없을것 같다. 역시나 군인들 이겠지, 그 밤중 ITX 청춘 열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거의 11시 30분인데 그 시간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서 무섭지도 않았고, 당황 스럽지도 않았다. 가능할것이라고 판단된다. 역시..적어봐야 한다. 내 일상이든 무엇이든 적어봐야 내 생각을 정리할수 있고, 패턴을 알수 있다. 적어야 한다. 머릿속의 생각은 휘발성이 너무 짙어서 금방 날아가 버린다. 적자. 어떤 식으로든 적어보자. 그렇다면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의 한줄평을 적기전에 먼저 9일에 복귀하게 될 열차의 시간을 좀 조정하고, 용사들의 휴가 출타 기록을 적은 다음에 다시 한줄평을 적어보자
한줄평
사회의 평균을 종식시킴으로서 각자의 능력을 극대화 시킬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
평균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뒤엎는 이시대의 파괴적인 생각
이시대의 모든 어른들은 무조건 읽어야 하는 생각의 반전
초 일류 시대로 가는 간단한 지침서
의식의 흐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군대, 학교, 회사 모든 곳에서 평균을 원한다. 평균점수가 어떻게 되느냐, 그래서 합격을 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게 되고, 평균이라는 것이 쓸데 없는것인데 왜 인간은 그런 쓸데 없는 평균이라는 것을 맹신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불확실한것을 싫어하기 때문은 아닐까? 인지부조화? 상황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확실한것을 싫어하는 인간 뇌의 특성상 확실한것을 믿기 위해서 만들어낸 쓸데 없는 허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가 주장하는것은 평균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말하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평균이라는 만능수치는 없다는것을 이야기 하고, 또 증명하고 있다. 바로 노르마 라던가, 미 공군의 전투기 조종석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아마도 작가 본인인 토드 로즈가 평균적인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며 군대에는 어떻게 적용을 할수 있을까 잠시 스쳐지나간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병기본훈련이나 개인 전투력 측정 결과 등에 대한 평균 점수가 아니라 자격증을 수여함으로서, 그 용사들의 활용방안을 생각해 보는것이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생각해보면, 매우 쓸데 없는 이야기 인듯 하다. 왜 용사들의 성적을 가지고, 우리가 그들을 평가해야 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것일까? 내가 국방부에 당직근무를 없애자고 이야기 한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국방부에 당직을 없애자고 이야기 하는것과 평균을 종식시키는 것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의 서평을 적기 위해서 재독을 해봐야겠다. 일취월장이나 완공을 재독하기 전에 머리를 식힐겸해서 평균의 종말에 대해서 서평을 적는 것이다. 나는 어느 블로그나 혼자서 읽을 요량으로 적는 글에 내 신분이 군인이라는것을 될수 있으면 밝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았는데, 쓸데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내가 군인으로서 해서는 안될일을 한다고 말할것인가? 서평을 적는것이 군인으로서 해서는 안되는일인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이상 군인이 아니라고 숨길필요가 없는것이다. 시끄럽다. 숙소로 돌아가면 또 술을 먹을것 이고, 사무실에 있자니 너무 시끄럽고 싫다. 나가고 싶다. 도서관으로 가야 겠다.
밑줄 긋기 및 필사 (필사한부분 의견적기)
흑갈색 머리 백인여성
처음 이글귀를 읽었을땐 백인여성이라는 단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읽었다가, 한참동안 흑인여자가 우승자로 밝혀 졌다고 인지하고 있었는데, 계속 이런 의문이 들었다. 노르마대회가 있었던 시기가 1945년인데 이때에는 백인우월주의같은걸로 인해서 흑인들이 제대로 기를 펼수 없었을텐데 어떻게 흑인이 우승을 했을까? 라는 생각말이다. 그런데 역시 흑인이 아니고 흑갈색 머리를 가진 백인여성이었다. 내가 가진 생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제대로 읽자. 대충읽지 말고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해 미국 여성들이 대체로 건강하지 못하고 몸 상태가 나쁘다는 식의 결론이 주류를 이뤘다. 정상에 대한 인위적인 이상을 더 열심히 따르도록 권고하기 보다, 평균적 인간을 바탕으로 삼아 설계된 시스템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맥락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동문서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거만한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그런사람들과는 대화를 하기 싫다. 이야기 하는 주제에 대해서 엉뚱한 답을 해놓고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지속적으로 그 부분에 대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마치 위의 결론과 같은 상황일것이다. 평균의주의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리를 다른식으로 해석해서 시스템이 잘못된것이 아니라 그 대상들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것은 어이가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내가 그런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하고, 맥락에 대해서 잘 이해할수 있도록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며, 평균적인 결과를 반드시 실패한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지만 아직은 아닌것 같다. 아마도 이책을 4번쯤 독파하고 나면 이해 할수 있을까?
공군에서는 대니얼스의 주장을 수용했다. 이제는 개개인을 시스템에 맞추기 보다 시스템을 개개인에 맞추게 되었다. 군에서 그런 파격적 변화를 그토록 신속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런 시스템 변화가 지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시급한 문제에 대한 실용적 해결책 이었기 때문이다.
미 공군에서는 대니얼스의 주장을 잘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육군에서는 내 주장에 대해서 잘 받아들일수 있을까? 물론 막무가내로 받아들려 달라고 떼를 쓰거나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정식적인 문건으로 보고를 했을것이고, 탄탄한 데이터를 가지고 보고를 했기에 가능했을것이다. 나 역시도 이런 보고서를 한번쯤 만들어서 육군본부에서 군소리 않고 받아줄수 있는 그런 문서를 한번 만들어 봐야 겠다. 그렇다, 단순한 지적 차원의문제가 아닌 시급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어야 하는데, 그 당직근무가 시급한 해결책인가? 예산 절감에 대한 문제, 국가에서 시급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이다.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 있는것이라고 말한다. 군에서의 규정은 어떠한가? 처벌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는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정확한 기준을 세워주는 것이 규정인듯하다. 우리는 당직근무를 서면서 수많은 처벌을 받는다. 근무를 잘서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직근무간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졸아버리는 바람에 정확한 보고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징계를 받는 사람은 억울한 면은 없겠으나,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의 큰 타격을 받는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런것을 통해서 군 간부의 기준을 세우고, 상위 계급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변별력을 갖추는 것도 좋다고 할수 있지만, 시스템을 위한 규정이 아닌 사람을 위한 규정이라면 처벌을 받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의적인 기준, 즉 평균치에 따라 조직을 설계하고 연구를 수행하면서 우리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허상적 이상과 비교하도록 내몰고 있다. 이 책의 주요 전제는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개개인과 관련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라면 평균을 쓸모가 없다. 평균적인 두뇌 역시 없다.
아이를 기르면서 생각을 하게된다. 우리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걸음도 늦게 걸었고, 말도 많이 늦고 있다. 이제 거의 40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이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은 어디에서 온것일까? 아이를 기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누구는 5살이 다 되어서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의사, 판사 직업 가지고 잘 산다.” “걸음마를 5살때까지 못했는데 지금은 운동선수를 하고 있다"등 다양한 예시가 있는데 맞는말인것 같다. 말을 언제 해야 한다는 기준은 평균일뿐이며, 언제 걸어야 한다는것 또한 평균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균에서 벗어난 예를 잘 알고 있으며, 그 예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너무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데이터가 되어버리는 평균이라는 데이터..
그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도 그의 행동맥락을 파악해 그가 동료들과의 관계를 다지고 업무 능력을 대폭 향상시키도록 격려해주면서 부서 내의숨겨진 보석을 발견하게 될수도 있다.
그렇다, 개개인성을 인정해야 한다. 나에게 개개인성을 인정하지 못하도록 만드는것이 무엇일까? 군의 시스템때문인가? 아마도 그런것 같다. 왜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개개인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내가 힘들어 진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성향을 정확히 전부 파악해야 하고, 그것들을 분석해야하는 수고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군의 시스템은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한 시스템이다. 어떤것이 옳은것인지 알고 있지만 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것이 군에서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이런생각으로는 군은 전쟁이나 전투에서 승리할수 없다. 안타깝다.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 소대원들의 성향을 하나하나 파악해보고 면담을 좀 해봐야 겠다. 그리고 개개인성을 인정하고 도와주도록 노력해야 겠다.
일자리마다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했다. 내가 인생반전을 맞을수 있었던 것은 처음엔 직관에 따라, 그 뒤엔 의식적 결심에 따라 개개인성의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필자는 일자리 마다 진득하게 붙어 있지 못했다고 했는데, 나는 이런 현상이 개인성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곳에 집중하거나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자주 그만두는 그런 성향말이다. 아주 볼품없는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생각역시 위험한 생각인것이다. 이것이 평균주의의 폐혜인것 아닐까? 그리고 필자는 자신의 인생이 바뀌게 된것이 개개인성의 원칙을 따랐는데, 처음엔 직관적으로 따랐다가 그 뒤에는 의식적 결심에 따라 그 원칙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그 부분을 열심히 이야기 할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책을 쓰게된 동기는 이런 원칙을 당신과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에서다. 부디 당신이 이 원칙을 활용해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개인적 삶에서 성취도를 끌어올릴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개념을 배울때 가장 어려운 일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것이 아니라 옛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도 당신을 평균의 횡포로 부터 환전히 해방시키는 것이다.
개개인에 투자하기로 정하면그 개개인들은 충성심과 의욕과 열의를 갖게 된다.
그런것 같다. 우리 용사들에게 평균주의가 아니라 개개인적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이야기를들어주고 그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서 해결해준다면 나에겐 더 가까워 지는 사람이 되는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나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 꽃>에서의 표현처럼 개개인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특성을 살려줌으로서 그들은 나에게 충성심과 열의를 갖게 된다. 개개인에게 투자를 한다는것은 개개인을 사랑하고 그들이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까탈스러움이 있다. 그들이 잘하고 못하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개개인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일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좋아질까? 군의 지휘관들이 원하는것이 개개인에게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방안을 찾아서 전투력 상승에 활용하라는것 이난가? 내 시간과 노력.. 이것을
이책의 결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이 났다. 이책의 결론은 지금의 우리 평균주의가 잘못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의 전반적인 발전이 더디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균의주가아니라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면 혁신적이고 생산성이 높은 인재들을 회사에서 활용할수 있기 때문에 더욱 높은 생산성으로 더 많은 이익을 가지고 갈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직원들의 개개인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말이다. 이 개개인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세가지의 원칙이 있는데 첫째, 들쭉날쭉의 원칙, 둘째, 맥락의 원칙, 셋째, 경로의원칙이다.
들쭉날쭉의 원칙은 절대로 평균적인 인간은 없다는것이다. 어떤 직무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기위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능력이 있겠지만 한 사람의 능력을 그래프로 나타내 평균을 낸다면 정반대의 능력을 가진사람과 같은 평균값을 가진다는 이야기 이다.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이야기 인가? 평균이 같다고 해서 두 사람의 능력이 같다고 볼수는 없다는 이야기 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모든것을 평균점수로 구분해서 사람들을 평가 한다.
기 타
이 책은 체인지 그라운드 팀인 고영성, 신영준 박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두분이 말씀하시기에는 쉬운책이고, 이책을 읽어 보면 천재가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아닌것 같다. 아니 많이 알게되었고, 생각은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읽기는 쉬웠지만 중심을 캐치해 내기 조금 힘들었고, 책을 두번 읽은 지금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2번은 더 읽어야 할것 같다. 따라서 그렇게 책을 씹어 먹지 않아서 그런지 천재가 되지는 않았다. 난 원래 천재는 아니니까. (^^)
하지만 몇가지는 생각하게 되었다. 평균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를 그리고 우리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구나.. 라는 생각, 이제 30개월이 갖넘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저 아이에게 많은것을 바라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은 덤으로 해보는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토드 로즈라는 사람으로 어릴적에는 학교에서 문제아 라고 소문나고 구제불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는데, 자신만의 방법으로 공부해서 하버드 교육학 전공 교수가 된다. 이 로즈 교수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개개인 모두가 공부를 잘 할수 있는 환경이나 속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평가를 할수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기업에서 평균적으로 사람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각 원칙을 이야기 하면서 들쭉 날쭉의 원칙으로 코스트코를 예를든 이야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우리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엔 불가능하다. 이미 테일러주의에 파묻혀 사는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내가 의사결정권자나 인사채용담당 관리자가 된다면 다시한번 이 책을 읽어버고 내가 적용할 부분이 어떤것인지 도출해볼 생각은 있다. 이책은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