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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Feb 26. 2016

[박유신의 호주이야기 10]호주의 문이 열리다가 닫히다

호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내 바램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내 매니저 (아시아태평양 IT 총괄 부사장)의 말에 한껏 고무되어 들뜬 기분이었다. 당연히 호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성사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한참을 기다릴 생각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진전 사항 없이 거의 일년의 시간이 지났다. 내 매니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었지만, 이렇다 할 진척이 없으니 실망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매니저간1:1회의에서, 나에게 호주  소프트웨어 개발조직을 맡는 것에 관심이 있는 지 의향을 묻는 것이 아닌가? 물론 나의 대답은 오브 코스 (Of course) 였다. 감사한 맘이 절로 들었다.  다음 번에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다.


그러나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따른 2008년말 글로벌 금융위기는 뜻하지 않게 나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본사의 사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않았던 K모 사모펀드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아시아 태평양 IT 조직을 개편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소프트웨어개발, 데이터 센터, 프로젝트 관리, 보안 등의 아시아 태평양IT 조직을 총괄 부사장이 관리하는 구조였는데, 이를 각 기능별로 나누어서 각각 글로벌 IT 조직에 바로 보고하는 구조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이른 바 글로벌 IT조직을 통해 효율화와 전문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직개편에 따라 내 매니저의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내 매니저가 지지하고 추진해왔던 나의 호주행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럴 수가…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독립기술이민 신청을 하는 수 밖에 없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나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호주 이민성에서 기술이민 정책 개혁조치를 발표했었다는 것이다. 영어점수기준을 확 높이고, 독립기술이민보다 후원기술이민을 더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사실상 비영어권 국가로부터의 이민희망자에 대해 독립기술이민의 문이 대폭 좁아진 것이었다.


계획했던 플랜 A (회사지원 이동)와 플랜 B (독립기술이민)가 모두 난관에 부딪혔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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