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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Mar 02. 2016

[박유신의 호주 이야기 14] 영어 굴욕


영어가 달랐다. 한국 지사에 있으면서 전화 회의와 대면회의를 했을 때와 호주에 오고 나서의 회의는 확연히 달랐다. 그때는 내가 한국지사 직원임을 배려해서 상대방이 가능하면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호주에 오고 나니 그들의 배려는 없었다. 그냥 본인들이 평소 말하는 대로 입도 잘 벌리지 않고 날라가는 발음으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내 영어실력이 확 줄어든 느낌이었다.  


회사 동료 중에 영국 남부 시골 출신이 있었다. 그의 발음과 억양은 정말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제대로 된 영어도 정신을 집중해야 알아듣는데, 그의 강한 사투리 영어는 나를 곤욕스럽게 했다. 심지어 호주 출신 임원 한 명은 회의에서 그에게 “어느 나라 말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제발 영어로 다시 얘기하라”고 농담반 진담반의 조롱을 날리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좀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지금 시드니에서 일하고 있어. 더 이상 한국지사 직원이 아니야. 여기 영어에 익숙해져야 해” 


띵~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맞다. 아직도 내가 영어에 대해서 상대방의 배려를 기대하고 있었구나. 이제는 대등하게 링 안에서 싸우는 거구나. 더 이상 링 밖에서 배려 받으며 있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은 그 이후 내가 영어 공부를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의지를 다시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호주 사람들은 속어인 슬랭을 많이 쓴다. 미국 원어민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 한번은 회의할 때 동료 한 명이 “Flat out like a lizard drinking” 이라고 얘기했다. Flat out은 그렇다 치고 Lizard? Drinking?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씩 웃으며 “엄청 바쁘다”는 뜻의 호주 슬랭이라고 얘기해준다. 


“No worries”라는 말은 하루에 최소 서너 번 이상 듣는다. 미국식 영어의 “You are welcome.” “It’s ok.”의 뜻이다. G’Day는 굳다이라고 발음하고 hello라고 해석한다. 굳데이가 아니다. Data 도 데이터가 아니다. 다타이다. 이 단어를 들을 때마다 머리 속에서 ‘어떻게 다 타라는 거지?’라는 질문이 맴돈다. 


영어 굴욕은 기차역에서도 일어났다. 기차역에서 표를 사기 위해 행선지를 불러줬다. 근데 못 알아 들었는 지 다시 한 번 더 행선지를 얘기했다. 이번에도 못 알아들었다. 한번 더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표를 건네줬다. 내 영어실력의 수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호주에는 아메리카노가 없다?!


커피를 마시고 싶어 회사 근처 카페에 갔다. 벽에 걸려있는 메뉴판을 봤는 데 암만 쳐다봐도 아메리카노가 보이지 않는다. 호주에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으면 롱 블랙(long black)을 주문해야 한다. 라테와 비슷한 플랫화이트(flatwhite)라는 커피가 있다. 플랫화이트는 거품의 양과 스팀우유의 양이 라테보다 약간 작다. 그래서 라테보다 조금 강한 맛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어느 날인가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가 마시고 싶어서 메뉴판에 있는 마키아토를 주문했다. 근데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살짝 올린 커피가 조그만 잔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작지만 강하고 진한 커피를 경험했다.     


회사 안에서 그리고 회사 밖에서도 영어 굴욕을 당하며 호주에서의 첫 한 달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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