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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Jul 02. 2020

마라톤을 하며 배운 것

마라톤을 시작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6번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했다. 한국에서 다섯 번, 호주에서 한 번이다.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암 치유에 도움을 받고자 함이었다. 체온을 일도만 높여도 많은 암세포들이 죽는다는 내용을 책에서 접하고 난 이후였다. 달리기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고 체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인 운동이었다. 


처음 마라톤을 시작할 때는 5km도 힘들었다. 근데 처음 5km를 목표로 정하고 연습하니 익숙해졌다. 그다음으로 10km를 목표로 잡았다. 처음에는 역시 힘들었다. 그러나 익숙해졌다. 다시 하프 마라톤 거리인 20km에 도전했다.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었다. 그다음은 42.195 km 풀코스 거리였다. 혼자 연습하는 것은 무리였다.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서 여러 선배님들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배웠다. 엄두가 안나는 힘든 목표가 생길 때 이를 잘게 나누어 여러 개 마일스톤을 정하고 노력하면 처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음을 배웠다. 


마라톤은 흔히 혼자서 하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혼자 달리는 게 아니다. 마라톤 대회에는 거리에서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그들의 응원과 박수소리를 들으면 힘이 난다. 대회 이전에 연습할 때도 가족들, 동호회 사람들, 연습하면서 마주치는 동료 달림이들이 있다. 마라톤은 함께 하는 운동이다. 


마라톤을 할 때 30km가 넘으면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한계에 부닥친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숨이 차 온다. 더 이상 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는 그냥 달린다. 마음속으로 1km만 더 가자고 외친다. 그러면 어느 순간 1km를 모두 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시 1km만 더 가자.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40km 표지를 보게 된다. 나머지 2km야 금방이다. 다시 힘이 난다. 죽을 만큼 힘들더라도 그냥 한발 한발 달리면 되는 것이다.  


흔히 마라톤과 인생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둘 다 생명에서 죽음까지의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똑같다. 하지만 마라톤은 함께 똑같은 곳에서 출발해서 똑같은 목적지를 향해 뛴다. 인생은 각자 다른 곳, 다른 시간에 출발해서 다른 목표에 도착한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빨리 뛴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다른 사람을 쫓아 똑같은 목표를 위해 뛰려고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 나의 페이스로 뛰면 되는 것이다.  


달리기의 즐거움. 뛰기 시작해서 10분 정도 지나면 얼굴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달리기를 마치고 샤워할 때의 기분이 참 좋다. 달리기 후에 먹는 맥주의 맛은 이 세상 맛이 아니다. 달리며 햇살, 바람, 구름을 느끼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오늘은 달리기를 하지 말까 하는 각종 핑곗거리가 있다. 날씨가 추워서, 비가 와서, 몸이 안 좋아서. 근데 모두 핑곗거리다.  처음 마라톤 대회에 나갔을 때 놀랐다. 머리가 희끗한 80대의 할아버지, 두 팔이 없는 사람, 10대로 보이는 어린애들이 눈에 띄었다. 반성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못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는 거다. 인생도 마찬가지.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건강한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다. 달리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자연에게 모두 감사하다. 앞으로 100 km 울트라 마라톤,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도전하려고 한다. 언젠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달리고 대화하고 인증샷도 찍고 싶다. 죽을 때까지 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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