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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Aug 05. 2020

당신은 이국땅에서 길을 잃었다.

누구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2016년 4월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가족과 함께 터키와 그리스로 해외여행을 갔다. 그리스 여행 중에 가장 긴 일정을 잡은 곳은 산토리니(Σαντορίνη) 섬이었다. 온통 새하얀 집들 위에 파란 돔이 얹혀 있고 옆으로 아름다운 에게해가 펼쳐져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싶었다. 

  

아테네를 출발한 페리는 산토리니섬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 있는 한 렌터카 업체를 골라 흥정을 한 후에 차를 빌렸다. 길 찾기가 쉽다는 렌터카 업체 직원의 말만 믿고, 조그만 지도 한 장에 의지해서 차를 몰았다. 숙소가 있는 동네 이메로비글리(Το Ημεροβίγλι) 까지는 문제없이 잘 도착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숙소 주소에 도로명만 있고 번지수가 없다. 도로를 끝에서 끝까지 가도 숙소는 나타나지 않았다. 차를 길 가에 세워 놓고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모른단다. 한참을 걸어 다른 가게를 찾았는데 역시 모른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렌터카를 빌리지 말고 그냥 숙소 주인한테 픽업을 부탁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골목길 안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라면"이라고 한국어로 쓴 표시가 눈에 띄었다. 그렇지 않아도 MSG가 듬뿍 들어간 라면 맛이 그리웠는데 반가웠다. 그런데 다른 나라 라면은 많은 데, 막상 한국 라면은 눈에 띄지 않아서 실망이었다. 


슈퍼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삼백 미터만 가면 길가에 숙소 표지판이 걸려 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단다. 나는 다시 한번 차를 천천히 몰고 다른 식구들은 숙소 표지판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근데 이삼백 미터를 훨씬 지나 오백 미터쯤을 가도 숙소 표지판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다시 그 슈퍼로 돌아가서 직원에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직접 숙소 주인과 전화를 했다. 원래는 숙소 표지판이 있는데 지금은 비수기라서 손을 보느라 떼어 놓았단다. 숙소 찾아 삼만리 끝에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당신은 이국땅에서 길을 잃었다. 누구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가?


간단하다. 휴대폰을 꺼낸다. 구글 통역 앱을 실행한다. 그 나라 언어를 선택한다. 길가는 현지인을 붙잡는다. 나는 한국어로 말한다. 구글 통역 앱이 그 나라 말로 유창하게 떠들 것이다. 그 현지인이 휴대폰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대답을 한다. 앱에서 다시 한국어로 통역해서 들려준다. 길을 찾을 때까지 이렇게 계속 대화를 한다. 참, 쉽지요?


아이티(IT) 분야에서는 항상 백업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수 없게도 마침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간단하다. 길가는 현지인을 붙잡는다. 우선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그를 간절히 바라본다. 가려는 곳의 현지 지명을 보여준다. 지도가 있으면 더 좋다. 말은 안 통해도 괜찮다. 바디 랭귀지가 있으니까. 틀림없이 당신은 길을 찾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고 싶은 목적지는 있는 데 길을 잃었을 때 혹은 어디로 가고 싶은 지 모를 때에 휴대폰을 꺼내 실행할 수 있는 앱이 있다면 어떨까? 나는 사람의 언어로, 신은 신의 언어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통역 앱 말이다. 이런 앱이 나온다면 순식간에 앱 다운로드 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그 앱이 나오기 전까지는 뭐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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