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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Apr 02. 2016

[박유신의 호주 이야기 18] 정리해고를 당하다

https://flic.kr/p/8QLb16


호주 시드니에서의새해가 밝았다. 약 6개월간을 보내면서 어느 정도 호주 회사와 사회에 적응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그런데 연초 호주 지사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호주 지사 사업이익의1/3이상을 차지하는 제일 큰 고객이 떨어져나갈 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혹시나했지만 그 이후 들려오는 소식은 계속 비관적이었다. 하반기 시작할 무렵에는 양사간 법정다툼까지 이어지며 이제는서로 넘어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다음해 초반부터 그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중지하는 것으로 결론이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호주 지사 사장이 미팅을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 전에도 나의 멘토로서 그와 미팅을 정기적으로했기에 부담 없이 그의 방에 들어섰다. 그런데 의외롭게도 인사담당 임원이 함께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 가운데 그가 꺼낸 말은 정리해고 통지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나에게 일어나다니믿어지지가 않았다. 회사 분위기가 안 좋았지만, 설마 나에게 이런 일이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이어서 정리해고 보상금과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CareerTransition 서비스 등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할 것 인가였다. 개인 물품은 며칠뒤에 회사를 방문해서 가져가기로 하고 회사를 휘적휘적 걸어 나왔다.

         

회사근처에 있는 공원까지 멍한 상태에서 걸어갔다.눈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들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나는 그 일상에서 격리된 느낌이었다.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어떻게 아내에게 말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분간 얘기하지않고 정상적으로 출퇴근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으나,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하기로 마음을 굳혔다.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지 묻는 아내에게 정리해고 소식을 전했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주었다.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맘껏 책을 읽고, 마음이 울적해지면 낚시대를 들고 바다로 나가면서 한 달을 보냈다.약 20년 전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 갖는 긴 휴가였다. 하지만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화가 났다. 나 자신에대해 실망스러웠다. 무기력해졌다. 호주 지사에서 정리해고를 단행해야만했던 상황을 탓했다. 내가 업무범위를 벗어나더라도 좀 더 오너십을 갖고over-commmunication 하지 않았던 것을 탓했다.          


그러나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 힘든 기간 동안 꼭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리해고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변함없는 신뢰와 격려는큰 힘이 되었다. 평소에는 별로 실감을 못하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거의 매일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며, 예전에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참석 못했던수 많은 행사들에 꼬박 꼬박 참여해서 아이들이 대견하게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었다. 또한 내경력의 전환점이 되었다. 지난 20년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고,내가 앞으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음 글은 가족 해외여행 때문에4월말 정도에 올릴 계획입니다.즐거운 여행을 통해 에너지 듬뿍 받은 상태에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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