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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Apr 30. 2016

[박유신의 호주 이야기 19] 정리해고후 새로운 출발

“자연의 대순환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없다. 그저 거쳐가야 할 단계가 있을 뿐이다. 이 이치를 깨달을 때 우리 마음은 자유로워지며, 역경의 시기를 받아들이게 되고, 영광의 순간에 도취되어 그 순간이 영원할것으로 착각하지 않게 된다. 역경의 시기도, 영광의 순간도 다 지나간다.”
–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 중에서  


언제까지나 정리해고의 충격에서 헤매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두 아이의 아빠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므로. 나 자신에게 당당해야 하므로.


이전 회사에서 지원해준 CareerTransition Service는 별도의 전문회사를 통해 구직활동의 처음부터 끝까지에 대한 교육과 코칭은 물론 사무실 공간과 컴퓨터, 휴게 시설을 제공했다. 또한 구직자 10명 정도를 한 팀으로 구성해서 매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각자의 진행상황과 배운 점을 공유토록 함으로써, 구직자간 서로의 사기를 북돋우게 하였다.

 

제일 먼저 내가 향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지 고민했다. 그 동안 배운 IT분야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비영리기관인 NPO (Non-ProfitOrganisation) 에서 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연봉은 이전 직장보다 훨씬 낮아지겠지만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시드니 내의 NPO 목록을 추린 후에 이메일과 전화로 내 소개를 하고 내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서 할 만할 일이 있는 지 문의를 했다. 무턱대고 만나자고 약속을 잡아 실제로 미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접촉한 NPO들에서는 나에게 적합한 하나도 포지션이 없었다. 


그래서 그 동안 계속 몸담았던 금융계에 나와있는 IT 포지션을 인터넷으로 찾아 지원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호주 내 약 80-90%의 오픈 포지션은 헤드헌터나 온라인상의 지원이 아닌 오프라인상의 인맥에 의해 채용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주 직장사회는 실제로는 많이 폐쇄된 사회임을 실감했다. 그 후 인터넷에서 오픈된 포지션을 찾으면 인사담당자 또는 매니저를 알아내어 전화와 이메일로 직접 연락을 했다. 하지만 답변이 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많지는 않았지만 면접기회도 주어졌다. 그러나 내 경력이over-qualified하다는 이유로 또는 호주 내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쓴 고배를 마셨다. 


본격적으로 구직활동을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는 동안 약 100군데에 이력서를 냈다.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다 만나면서 커피도 지겹게 마셨다. 그러는 동안 이전에 다녔던 한국 회사 사장님의 배려로 약 2개월간의 컨설팅 업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NPO와 금융계 둘 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에 맞닥뜨리면서, 잡 오퍼소식을 기다리다가 별 소득 없이 지나가는 하루 하루가 고통스러웠다. 넉넉히 받은 퇴직 보상금 덕분에 아직까지는 경제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이런 실직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심리적으로 큰 압박감을 느꼈다.


플랜 B를 고민해야만 했다. 기존 구직활동을 지속하되, 그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기로 했다. 지게차 운전 연수를 받고 면허를 딴 다음 지원을 했다. 견습 전기 기술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알아봤다. 스마트폰 수리하는 자리도 알아봤다. 주말마다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쇼핑몰 청소를 2시간 동안 했다. 아는 분의 도움으로 주중에는 홈 청소를 했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덕분으로 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딜 수 있었다. 가족의 지지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아내는 가끔씩 싫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변함없는 격려와 신뢰를 보여줬고, 아이들도 비뚤어지지 않고 잘 커줬다. 전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은 내가 퇴직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도움을 베풀었다. 지인의 소개를 통하거나 또는 무작정 전화해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친절하게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도와주려고 애썼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아이가 다니던 학원 원장님은 학원비를 절반이나 할인해주셨다. 청소를 하면서 마음 수양도 되었다. 또한 그 입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알던 모르던 많은 블루 칼라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전 직장에서 나온 지 1년이 지나고 있었다. 기회는 우연한 곳에서 왔다. 아들은 호주에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켓 클럽에 가입했다. 크리켓은 호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이다. 아들은 야구를 하고 싶어했으나 야구 클럽을 찾을 수 없어 대신 야구와 비슷한 크리켓을 하기로 결정했었던 것이다. 그 크리켓 클럽에 함께 있는 어떤 멤버의 아빠 추천으로 호주 유수의 통신회사 프로젝트 매니저 자리에 대한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크리켓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적극적으로 스코어링을 자원해서 열심히 하고 (주말마다 열리는 아이들 크리켓 클럽 경기는 매 경기마다 양 팀 선수들의 부모 중에 각각 한 명씩 자원해서 배팅, 볼링, 수비 등의 각 개인별 팀별 기록을 집계한다)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심판 자격도 따서 경기가 있을 때 심판으로서 적극 참여하는 것이 그 아빠에게 인상적이었나 보다. 여러 번의 인터뷰를 거친 후에, 마침내 잡 오퍼를 받게 되었다. 


만약 내가 크리켓 클럽 스코어링이나 심판 활동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 인터뷰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 대학교졸업식 축사에서 얘기한 “connecting the dots”가 떠오른다. 

Again,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future.

그 동안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이 글 앞에서 인용한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 책에 나와 있듯이 역경의 시기도 영광의 순간도 다 지나가게 마련이다.이 경험을 통해 좀 더 겸손해지고 좀 더 감사하고 좀 더 신께 가까이 가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현재 직장에서 근무한 지 벌써 만 2년이 지났다. 얼마전에 회사를 떠나는 동료와 맥주 한 잔 했는데,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나의 모습이 기억에남을 거라는 말을 그로부터 들었다. 아울러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음을 잊지 않고,그것을 갚기 위해 오늘도 내가 할 일을 찾아 기쁜 마음으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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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지막으로 “박유신의 호주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블로그 글을 쓰면서 행복했습니다. 블로그 글을 시작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중간 중간에 힘나는 격려와 귀중한 조언을 주신 박이언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블로그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 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 글이 외국에서 특히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또는 앞으로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저의 추가적인 도움이나 조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제 이메일 Wamoon@gmail.com 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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