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유신 Scott Park Oct 28. 2020

내 이름으로 에세이 한 편 쓰기

내 이름은 박유신. 한자로 넉넉할 유, 믿을 신이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였다. 대만의 타이뻬이로 출장을 갔다. 회의 중간의 휴식시간에 대만 회사 직원들에게 화이트보드에 내 이름을 한자로 써서 보여줬다. 누군가 한 명이 유신이라는 이름을 중국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들려줬다. 그리고 좋은 뜻의 이름이라며 엄지를 척 올렸다.



초등학교(라고 쓰고 국민학교를 떠올린다)와 중학교 시절, 국어책에는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 관련된 희곡이 실려있었다. 배역을 정할 때 김유신 역할은 당연히 나의 몫이었다. 마치 김유신 장군이 된 것처럼 자부심에 차서  힘차게 대사를 외치곤 했다.


대학교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는 이렇게 나를 소개했었다. '과거 독재 정권의 시월 유신이 아니고, 고구려의 넓은 영토를 포기하고 쪼잔하게 한반도 안에서 통일을 한 김유신도 아니라고.' 치기 어린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직하니 이름 뒤에 직급이 붙었다. 박유신 사원. 4년간의 사원 시절을 마치고 승진을 했다. 이름은 부르지 않고 성에 직급을 붙이니까 박대리가 되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고 회사를 옮겨가면서 승진과 더불어 호칭도 바뀌어 갔다. 박팀장, 박이사 그리고 박상무.


호주에 오니 사장부터 사원까지 직급이나 직책이 없이 모두 이름만으로 불린다. 서양의 토론 문화가 발전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렇게 이름만으로 서로를 호칭하는 수평적 문화라는 것을 체감한다. 나는 내 영어 이름인 Scott 이라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인 이름은 그대로 박유신이다. 어쩌다 보험회사나 은행 직원과 통화할 때에는 상담원이 나를 '유신'이라고 부른다. 물론 영어식 발음으로. 



과연 이름대로 살아왔는지 자문을 해본다. 나에게 그리고 남에게 넉넉한 믿음을 줬는지. 

생을 마감하는 날 그랬다고 미소 지으며 떠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밀포드 트레킹 : 아, 이제 살았다  (Day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