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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Oct 29. 2020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 한 점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가족 해외여행을 하기로 했다. 나와 아내, 만 8살의 딸 그리고 만 4살의 아들. 고민 끝에 큰 맘먹고 유럽으로 정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이렇게 세 나라를 골랐다. 기간은 열흘. 아들이 어린 나이라서 나중에 커서 이 여행을 기억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냥 가기로 했다.


첫 번째 여행한 도시는 프랑스의 파리였다. 예술의 도시, 패션의 도시, 프랑스 요리의 도시. 텔레비전에서 수도 없이 봤던 조명이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를 떠올렸다. 그러나 여기저기 담배꽁초들이 버려진 지저분한 거리들이 이어졌다. 지하철역에 들어가면 어두침침하고 음습한 분위기에 지하의 특유한 쿰쿰한 냄새가 났다. 점심시간에 들어간 레스토랑에서는 주문을 하기까지 15분 넘게 웨이터를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등장한 웨이터는 그날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네스 북에 불친절하기 기록이 있다면 당연 일등 감이었다.


파리에 왔으니 루브르 박물관은 꼭 방문하기로 했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는 명성답게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20미터가 넘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밀로의 비너스와 함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책에서 많이 봤지만 두 눈으로 직접 진품을 본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루브르 박물관은 정말 넓었다. 


다리가 아파올 무렵 사람들이 유난히 많이 모여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바로 모나리자 작품 앞이었다. 작품 앞에는 관람객들이 빼곡하게 빈 공간이 없이 여러 줄로 서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옆 사람과 거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촘촘히 서 있었다. 맨 뒤에 섰다. 아주 천천히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작품을 향해 다가갔다. 


한참을 기다려 거의 앞부분까지 다가갔다. 작품 앞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통제선이 설치되어 있었다. 모나리자 작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기가 작았다. 나의 위치를 좌우로 바꿔봐도 여전히 모나리자는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만 4살의 아들은 키가 작아서 어른들에 가려 그림을 볼 수가 없었다. 아들을 안아 들어 올려서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주려고 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을까? 통제선 안 옆쪽에서 관람객들을 보고 있던 키가 훤칠한 경비가 다가와서 아들을 들어 올리더니 통제선 안쪽에서 그림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해줬다. 가슴이 따뜻하게 차 올랐다.


모나리자가 기억에 떠오를 때면 항상 그 작품보다도 친절을 베푼 그 경비 분이 먼저 생각난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이미 희미할 때로 희미해져서 전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따뜻한 마음만은 항상 내 맘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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