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일요일인 오늘 아침 기상시간은 3시였다. 창문 밖 시커먼 어둠을 바라보며 뛸 준비를 했다. 훈련 계획상 4시간 45분을 뛰어야 하는 날이었다. 약 30분간 준비하고 3시 반부터 8시 15분까지 달렸다. '청소년기라면 성장 호르몬이 샘솟는 새벽 시간에 왜 일어나냐'고? 이미 키 클 나이는 한참 지났다만...
약 5년 전부터 격주 토요일마다 몇몇 성당 교우분들과 함께 바닷가길이나 산길을 2시간 정도 걷고 있다. 워킹이 끝나면 시원한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게 바로 워킹의 진짜 목적이 아닐까도 싶다. 집에 돌아오면 오후 서너 시다. 매주 일요일은 성당에 가기 위해 아침 9시에 집을 나선다. 일요일 오후에는 장을 보고 청소를 하거나 때로는 성당 행사가 있기도 하다.
토요 워킹이 없는 날에는 토요일 오전을 이용해서 장거리 달리기를 했다. 하지만 토요 워킹이 있는 주에는 성당 가기 전 일요일 아침밖에 시간이 없었다. 대회가 다가오면서 매주 약 30분씩 달리는 시간을 늘렸다. 전에는 일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나도 전혀 문제없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기상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4시에 일어나서 3시간 반 동안 뛰었다. 2주 후에는 3시 30분에 일어나서 4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다시 2주 후인 오늘은 3시에 일어나서 4시간 45분을 뛰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문제는 추위였다. 새벽 시간에는 섭씨 5도까지 떨어졌다. 바람까지 세게 부는 날의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다. 머리에는 헤드램프를 켜고, 반팔 티셔츠 위에 윈드재킷을 입고 장갑을 끼고 달렸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 시리기 시작했다. 손을 꼭 쥐어 벙어리 장갑처럼 만든 다음 윈드재킷의 소매 안에 집어넣었다. 손이 훨씬 덜 시렸다.
호주에 오기 전 한국의 신도시 산본에서, 요즘은 러닝 크루라고 불리는 마라톤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6시에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20km를 뛰었다. 한겨울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하의 날씨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혹시 얼었을지도 모르는 인도를 조심하며 2시간을 뛰었다. 그러고 나면 뒷목에는 으레 고드름이 달려있게 마련이었다.
예전에는 고드름이 달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뛰었는데, 지금은 섭씨 5도밖에 안 되는데도 뼛속 깊이 시리다는 느낌이 든다. 20대에 강원도 철원군 민간인통제선 안쪽에서 군복무하며 길옆 철조망에 붙은 '위험-지뢰' 푯말을 보며 바짝 올랐던 '군기'가 빠진 탓일까? 달리는 동안 새벽 추위에 눈이 시려 눈물이 나오고, 코에서는 맑은 콧물이 연신 흘렀다.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했다. 제정신이 맞나 싶다.
개그맨 출신 방송인이자 사업가인 고명환 씨가 쓴 책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 7조 원대 중국 부자 한룽그룹 류한 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여러 범죄에 연루되어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그가 사형집행 전에 남긴 말이었다. "인생은 모든 게 절망인 것을, 그렇게 모질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물처럼 흐르며 살아도 될 것을." 나는 달리며 그렇게 사는 것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