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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이나 뛰었는데 고작 37 km라고?

by 박유신 Scott Park

대회가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실제 코스에서 대회 당일과 똑같은 장비와 복장으로 시뮬레이션을 하는 날이다. 물론 실제로 82km를 모두 달리는 건 아니고, 약 40-45km를 6시간 정도 달리는 계획이었다. 챗 코치(ChatGPT)에 따르면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한다. 그 이상 달리면 부상 위험이 높아지고 회복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게 AI 선생님의 진단이다.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켜서 출발지점까지 이동했다. 대회 출발 시각인 아침 7시에 맞췄다. 하지만 대회 코스에서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웹사이트에 나와 있는 코스를 봐도, 구글맵을 켜서 봐도 도무지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오리무중이었다.


마침 그때 딱 봐도 나처럼 시뮬레이션 러닝을 하러 나온 듯한 두 명의 러너가 러닝 베스트를 메고 내 쪽으로 뛰어왔다. '아, 저 분들을 따라가면 되겠다!' 그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속도에 맞춰 달렸는데 '어? 좀 빠른데...'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들이 갈림길에서 코스를 확인하기 위해 멈춰 섰을 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웬걸, 그들은 SUM 30 코스를 뛰고 있다는 게 아닌가! 이 대회는 30km, 50km, 82km 세 종목으로 운영된다. 내 스마트폰의 구글맵을 열어 확인하니 내가 가려던 SUM 80 코스와 정반대 방향으로 와버렸다. 강북으로 가야 하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이었다. 계곡 아래로 뛰어 내려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허탈한 마음으로 반대로 돌아나왔다. 첫 번째 교훈: 무작정 따라가기 금물.


이제 제대로 된 코스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갈림길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갈림길마다 러닝 베스트 앞쪽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맵으로 코스를 확인했다. 그리고 웹사이트의 SUM 80 코스와 비교해가며 올바른 길을 선택했다. 이런 짓을 한 시간 정도 했을까?


문득 스트라바 앱을 이용하면 한 번에 코스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빙고! 나의 현재 위치와 대회 코스를 한 번에 볼 수 있었다. 유레카!


오늘 기온을 확인했더니 아침에 섭씨 7도였다. '이 정도 기온이면 굳이 장갑을 챙기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맨손으로 달렸다. 평지에서는 괜찮았다. 하지만 내리막 코스가 계속 이어지면서 나무가 훨씬 울창해졌고, 체감 기온이 확 떨어진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손이 점점 시려왔다. '대회 당일엔 꼭 장갑을 챙겨야겠다.' 두 번째 교훈: 날씨 예보와 체감 온도는 다르다.


긴 오르막을 한참 동안 한 발 한 발 올라갔다.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축구장 두 개 정도 되어 보였다. 작은 나무들에 둘러싸이고 전후좌우 하늘에 감싸 안긴 이 공간에는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이곳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대회 신청한 보람이 있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82km 울트라 마라톤은 하루 종일 걸리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하면 완주할 수 없다. 약 5시간을 뛰고 나서 경치 좋은 곳에 앉아 양말을 벗고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딸내미가 사다 준 콩가루 인절미는 이 세상 맛이 아니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요리보다 훨씬 맛있었다. 역시 운동하고 나서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 최고다.


오늘은 거리보다는 시간을 목표로 해서 뛰었다. 계획한 6시간을 모두 뛰었다. 6시간이면 45km 정도는 뛸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고작 37km였다. 점심시간 20분을 감안하더라도 내가 평소 연습하던 코스보다 오르막길의 경사가 훨씬 심했다. 길도 잘 닦인 임도가 아니라 좁은 오솔길에 나무뿌리와 돌멩이가 있어 노면이 울퉁불퉁했다. 때로는 진창길도 있었다.


발톱에는 '훈장'이 걸렸다. 발톱 색깔이 거무스름해졌다. 예전에 한창 풀코스를 뛸 때는 한두 번 발톱이 까맣게 죽더니 아예 빠져버렸었다. 이번엔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행이다. 발톱아, 3주만 더 버텨다오.


복싱 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한 말이 떠올랐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대회 완주 목표를 10시간에서 12시간으로 조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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