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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산 등정이 동네 뒷산 산책으로 변하는 기적

by 박유신 Scott Park

처음 마라톤 풀코스 42 km를 도전했을 때가 떠오른다. 풀코스 완주가 마치 에베레스트 산 정상 등정처럼 느껴졌다. '일 년에 한두 명이 마라톤 뛰다가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던데', '나는 과연 살아서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마치 히말라야 원정대원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4시간 24분의 나쁘지 않은 기록으로 무사히 완주했다. 그 순간 나는 에드먼드 힐러리가 된 듯했다.


그 이후로 일 년에 한 번이나 두 번의 풀코스를 뛰었다. 두어 번의 풀코스 완주를 하고 났더니, 에베레스트 산이 한라산이나 설악산으로 느껴졌다. 아, 인간의 적응력이란.


82 km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고 나니, 42 km가 이제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느껴졌다. 주말에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점차 늘렸다. 대회가 2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난주에 3시간 30분을 달리고, 지난주에 4시간을, 이번 주는 4시간 30분을 달린다. 가장 오래 뛰었던 첫 번째 마라톤보다 더 긴 시간을 달린다.


총각시절에 패러글라이딩에 매료되었다. 동호회에 가입했다. 패러글라이딩을 배운 지 한 달쯤 되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혼자 패러글라이더를 타는 처녀비행 날이었다. 마음은 설레임 반 그리고 두려움 반이었다. 그런데 최장 시간인 4시간 30분을 달리는 시작할 때 마음은 설레임 90%와 두려움 10% 였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설레임이 훨씬 컸다.


평소 달리기 출퇴근할 때 오래된 핏빗 차지 2 모델로 속도를 측정했다.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1 km 당 평균 6분 정도 걸렸다. 빠르게 암산을 했다. '대회 거리가 80 km 가 좀 넘으니까, 이 속도라면 총 480분, 그러니까 8시간 조금 넘게 걸리겠네.' 아주 야무진 생각이었다.


4시간 30분 달리기는 실제 대회 코스와 비슷하게 도로는 조금만 포함하고 대부분 임도와 오솔길로 루트를 짰다. 그리고 누적상승고도를 알기 위해 아이폰의 스트라바 (Strava) 앱을 켰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핏빗의 버튼도 눌렸다. 스트라바 앱은 1 km 마다 얼마 걸렸는지 음성으로 알려줬다. 이런, 평지를 뛰는데 1 km당 7분에서 7분 30초가 걸렸다. 가파른 길은 8분이 훌쩍 넘었다. 전체 평균 속도는 7분 40초쯤 되었다.


핏빗으로 km당 6분이 나왔을 때 빠르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냥 믿고 싶었나 보다. '아, 약한 인간이여.' 그리고 '아, 거짓말쟁이 핏빗아.' 대회 완주 예상시간은 8시간에서 10시간 30분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것 역시 허황된 예측이었다.


매 주일마다 풀코스거리를 뛰다 보니 이제는 42 km 달리기가 동네 뒷산 산책으로 변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뛰었다. 한발 한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4시간 반을 뛰고 났는데도 '좀 더 뛸 수 있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해서 어떻게 4시간 넘게 뛰느냐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련다. '전혀 지루하지 않다. 코호흡에 집중하고 몸 구석구석을 느끼며, 길가의 나무, 하늘, 개울,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달리기에' 그리고 핏빗이 또 거짓말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출처: UnsplashMartin Jer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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