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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Jul 09. 2018

뭣이 중헌디?

4주 차 마라톤 훈련을 마치고

재작년쯤에 선과 악, 토속신앙과 종교, 꿈과 현실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영화 '곡성'을 재미있게 관람했다. 경찰관 역의 곽도원, 무속인 역의 황정민, 낯선 외지인 역의 쿠니무라 준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악령에 쓰인 딸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 김환희의 활약은 압권이었다. 영화를 본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걸쭉한 사투리의 대사 '뭣이 중헌디'는 내 맘속에 새겨져 있다. 


그동안 MapMyRun이라는 아이폰 앱을 사용해서 마라톤 연습기록을 관리해왔다. 훈련이 끝난 후 거리, 시간, 속도 등을 검토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더욱이 훈련 도중에 매 1 km 마다 속도를 알려주기 때문에 내 페이스를 가늠하고 총거리를 알 수 있어 참 유용했다. 그런데 종종 GPS 인식 오류 때문인지, 얼토당토않은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비슷한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데도 1 킬로미터당 속도가 황당하게도 갑자기 4분에서 7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구글로 찾아보니 다른 사용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앱 리뷰를 검토해보니, Strava라는 앱이 GPS 오류 없이 정확한 기록을 제공함을 알 수 있었다. 당장 Strava 앱을 다운로드하여 설치했다. 


이제는 훈련을 하면서 앱을 테스트해볼 차례이다.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팔뚝에 차고 앱의 Start 버튼을 누른 후 달리기 시작했다. 앱의 스크린에는 1초, 2초, 3초, 이렇게 시간이 잘 표시되었다. 근데 이상하다. 1 km 쯤 뛴 것 같은데, 앱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지난번에 쓰던 앱은 1 km마다 기록을 소리로 알려주었는데, 이 앱은 소리로 알려주지 않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한참을 더 뛰었으니 충분히 1 km는 지났고 2 km도 거의 다 되었을 것 같은데 아무런 소리도 없으니 참 답답하다. 온통 신경이 앱에 쓰인다. 3~4 km 쯤뛰었을까? 


어느 순간 내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한디?' 분명 중요한 것은 달리기 자체이다. 하지만 나는 달리기보다 앱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달리기 자체보다 달리기를 도와주는 곁다리인 앱에 집중했던 것이었다. 마치 처음에 시작할 때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전혀 엉뚱한 비 본질적인 것에 집착했던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일에 있어서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나 본질보다는 도구에 집착하기 쉽다.  


그것을 알아채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40 분쯤 지나자 앱에도 거리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뭣이 중헌디?' 다시 한번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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