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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유신 Scott Park Jun 25. 2018

세 번째 장거리 연습

질문, 뿌리, 언덕 그리고 도둑놈 심보에 대하여

지난 주말에 세 번째 20 km 장거리 달거리 연습을 했다. 질문의 위대함, 뿌리가 얕은 나무, 급경사 언덕 올라가는 방법, 도둑놈 심보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하나하나 풀어본다.

  


#1 질문의 위대함 


내가 마라톤을 시작한 지 약 15년쯤 지났다. 그동안 오른쪽 발목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뛸 때마다 왼쪽 발목의 바깥쪽 부분에서 약간의 불편함 또는 피로감을 느꼈다. 통증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의사를 만나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오른쪽 손잡이라서, 왼쪽 발이 덜 발달되어서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겨왔다. 


지난주에 새로 달리기 클럽에 가입하여 첫날 훈련이 끝난 후에 코치에게 내 왼쪽 발목의 증상에 대해 물어봤다. 그 코치는 종아리 근육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서 평상시나 달리기 할 때 바깥 종아리 근육을 주먹이나 유리병 등을 이용해서 풀어주라고 조언했다. 


너무 간단한 처방이었기에 반신반의하면서 바깥 종아리 근육을 풀어줬다. 그러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동안 달리기 하면서 느꼈던 왼쪽 발목의 불편함 또는 피로감이 현저히 줄었다. 


이럴 수가. 15년 동안 느낀 불편함이 1분 미만의 질문으로 해결되다니. 


문제를 무시하지 말자. 문제가 있으면 물을지어다. 문제를 문제로 받아들이고 고수에게 물어보자. 


#2  뿌리가 얕은 나무

 

내가 달리기 연습을 하는 코스는 국립공원에 인접해있다. 코스 주변으로 유칼립투스 나무가 많이 있다. 10 m 넘는 나무가 많다. 20-30 m 쯤 되는 나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뛰다 보니 길 옆으로 한 아름 두께의 큰 나무가 뿌리가 뽑혀 있는 채로 누워있었다. 나무의 줄기는 커지고 잎은 풍성했으나, 뿌리는 땅속에 깊이 박히지 않은 모양이다. 일주일 전쯤에 몰아친 세찬 비바람에 넘어갔나 보다. 


겉에 보이는 모습에만 치중해서 크고 화려한 외양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를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주고 있다. 내 삶을 되돌아본다. 


#3 급경사 언덕 올라가는 방법 


지난 주말에는 사정이 있어 아침이나 낮에 훈련을 하지 못하고, 어둑해질 무렵 달리기를 시작했다. 30분쯤 달렸을까? 주위가 캄캄해졌다. 그래서 헤드 랜턴을 켜고 달렸다.

 

달리기 연습 코스 중에 급경사 언덕이 있다. 낮에 그 언덕을 올려다보면 급경사에 위축이 된다. 근데 헤드 랜턴을 켜고 달리니 멀리 있는 언덕 정상은 보이지 않고 바로 앞의 한발 한 발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발 한발 올라가다 보니 그리 힘들지 않고도 금방 언덕 정상에 설 수 있었다.

 

우리가 살며 느끼는 어려움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 어려움에 압도되어 위축되면 더 힘들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더라도, 하늘에서 끝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것은 한발 한발 내딛는 것일 뿐. 출구가 보이지 않아도, 땅에 부딪쳐 죽을 것 같더라도.

 

#4 도둑놈 심보 

훈련의 초반부는 1 km를 6분 정도의 속도로 뛰었다. 이어 몸이 완전히 풀린 5 km 이후에는 5분 30초의 속도로 달렸다. 발이 가볍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15 km를 지나고 나니 1 km 달리는 속도가 5분대에서 6분대로 떨어졌다. 마음은 충분히 5분대 중반에서 뛸 수 있다고 자랑질을 했지만, 몸은 장거리 달리기에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하긴 단지 두 번의 장거리 훈련을 마치고 나서,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몸은 정직하므로. 마라톤은 정직한 운동이므로.


마음과 몸의 괴리를 생각한다. 마음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쌓아감으로써 이전 글에 썼던 브라질의 리마 선수를 조금씩 닮아 가기를 소망한다. 



- 달린 거리: 18.13 km

- 시간: 1h 47m 1s

- 평균속도 : 5m 54s / km

- 일시 : 2018년 6월 24일 4: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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