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은 서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팔청춘 Dec 10. 2021

별것 아닌 것으로 전달된다.
선의도, 불의도.

책, <별것 아닌 선의>


별것 아닌 것의 선의(이소영 / 어크로스 / 2021.05.14 초판)

-별것 아닌 것으로 전달된다. 선의도, 불의도 -

올해 1월 19일, 한겨레 신문 1면에 따뜻한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신문 1면은 신문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를 담는 지면이다. 그날, 한겨레가 주목한 건 세상을 따습게 하는 한 선행이었다.


1면에 실린 사진은 눈이 내리는 날, 어느 노숙자가 지나가던 행인에게 커피 한잔을 부탁한 것에서 시작한다. 행인은 그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었다. 부탁을 거절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하는 부탁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행인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와 끼고 있던 장갑, 거기에 현금 5만 원을 함께 건넸다.


출처 : 한겨레 신문, '[포토] "커피 한잔" 부탁한 노숙인에게 점퍼, 장갑까지 건넨 시민'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


사진기자는 해당 모습이 초현실적으로 따뜻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찍고 해당 신사를 찾았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진을 찍은 기자의 말처럼, 정말 단편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과, 자신의 프레임에 담을 수 있었던 기자가 부러웠다.


이러한 사진과 이야기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이 그만큼 차갑고 냉혹하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삶은 어려워지고, 도와줘야 함을 알지만 더욱 선뜻 나서기가 어려워진다. 그럴 때 누군가가 건넨 온기 하나가 주변을 더 따뜻하게 한다.


책 <별것 아닌 것의 선의>는 아주 작은 선의가 따뜻하게 느껴졌던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저자 본인이 겪은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세상에 엄청난 열기를 더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작고, 사소하고, 별것 없는 것일지언정 세상에 약간의 온기를 더하는 글이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어떤가를 잠시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온기가 아닌 한기를 준 일이었다. 온기에 관한 책을 읽고 한기부터 떠오르다니.


불과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 참치회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함께 아는 다른 친구로부터 오늘 반려묘를 떠나보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괜찮은가?" 말했고, 친구는 위로해봐 라고 했다. 함께 아는 다른 친구도 용돈 좀 보내보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기분도 풀어줄 겸 장난스럽게 돈을 보냈다. 이후 답장이 왔는데, 술 마시는데 정신이 팔려 답장을 못했다. 그게 서운하고 화가 났던 친구는 카톡으로 불만을 말했고, 나는 바로 전화를 해서 사과를 했다.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도 함께 아는 친구에게 "네가 오늘 여러 일이 있어서 민감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본인이 분위기를 망친 것 같다며, 내게 다시 사과했다.


이 일이 떠오른 이유는 아마 별것 아닌 것이 선의가 될 수도 있지만, 불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상대방을 위한 것이었다고 할지언정,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되지 않고선 선의 일지 불의 일지 알 수 없다. 또한, 내가 정말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저자가 오래도록 과거에 겪은 일들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선의는 의도하지 않았을 때 더욱 따뜻하게 다가오고, 불의도 내가 의도하지 않았을 때 더욱 차갑게 다가간다. 별것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나는 그런 적이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밑줄


- 의식을 잃은 어린 아들의 병상을 일주일째 뜯눈으로 지키며 젋은 부부의 몸과 마음은 생선가시 발리듯 뜯기어갔다는 사실을. 19p


- 이땅의 한 명이라도 더 매달 봉급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중략) 일하러 외지에 나가면 저렴하지만 안전한 숙소에서 자면 좋겠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만 한다. (중략)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100p)


- "맞아요. 이걸로 세상이 바뀌진 않아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거, 당연히 맞죠. 그렇게 되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요. 근데 그건 제가 지금 당장 어떻게 못해요. 오늘 한 명 더 먹고 입게 하는 데엔 뭐라도 하나 보탤 수 있으니까 일단 저는 한 명 더 먹이고 입힐래요." (102p)


- 나는 기쁘지 않았다. 거대한 간판 뒤에 가려진 부서진 판잣집들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은 어떤 삶들을 감추고 치움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구나. 비록 어려서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다. (134p)


- 관계의 밀도가 영원히 동일하지 않다고 해서 기억들이 휘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고마움은 고마움으로 영원히 남는다. (중략) 내 혈액 안에 이 순간 알알이 녹아 흐르는 '팔 쓸고 등 눌러준 약손들'과 '선생님 서랍 속 메디락' 처럼. (167p)


- 아릿한 추억이 아닌, 어딘가 박혀 있던 가시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176p)


-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엄정하고 깊어져야 하는지. 나 같은 초학이 망가지지 않기 위해 어떤 조심스러움을 가져야 할지도. (212p)


- P선생님이 강연의 뼈대를, K선생님이 강연의 심장을 담당한다면, 나는 청중의 졸음을 도맡을 듯했다. (234p)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이런 순간이 내게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