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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Feb 08. 2022

파괴적인 성장의 한계

책, <성장의 한계>



성장의 한계
(도넬라 H. 메도즈, 데니스 L. 메도즈, 요르겐 랜더스 /
갈라파고스 / 1판 4쇄 / 2014.02.20)

- 파괴적인 성장의 한계 -



스마트폰의 평균 사용주기는 어떻게 될까? 2.7년이다. 스마트폰 제조 회사들은 매년 새로운 모델과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놓는다. 획기적인 기능이 추가되기도 하지만, 비슷한 기능에 디자인만 조금 바뀐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기업은 매년 새 제품 출시를 반복한다. 이 스마트폰은 이게 좋아요, 이런 기능이 있어요 등 단서를 달며 소비자 구매를 촉구한다. 불과 1년 전에 나온 스마트폰 모델은 순식간에 낡은 것 취급받는다. 실제로 기능에 이상도 없고, 아직 오래 쓸 수 있음에도 말이다.


시장에서 소비자 구매를 촉구하는 건 스마트폰 제조사뿐만이 아니다. 통신사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할인 상품과 결합 상품을 내놓으며 소비자를 유치하려고 한다. 2년 약정을 걸어 할인된 요금제를 제공하고, 2년이 끝날 즈음이 되면 최신 스마트폰으로 교체하라며 구매를 촉구한다. 새 제품을 거의 동일한 요금을 주며 구매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비자는 결단을 내린다. 까짓 거 새거 쓰자. 올해 2월은 내 스마크폰 약정이 끝나는 달이다. 내가 이용하는 통신사는 귀신같이 전화를 해서 최신 갤럭시 z플립으로 바꾸라고 전화를 했다. 기존 요금 그대로 할인된 요금으로 살 수 있다면서. 나는 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책, <성장의 한계>는 지구의 한계를 초과하는 성장에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월드 3'이라는 컴퓨터 모형을 통해 지금의 형태로 계소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말해준다. 처음 <성장의 한계>가 나온 건 1972년이다. 로마클럽 위임 하에 지구 미래 예측 사업, '인류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 보고서였다. 그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성장주의가 곧 인류와 지구를 파멸로 이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장지상주의 정책을 지지한다. 성장이 끊임없이 자신들을 잘살게 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정부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처방책으로 성장을 찾는다. 선진국에서는 성장이 고용과 경제 성장, 기술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 후진국에서는 성장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공급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와 기업의 지도자들은 점점 더 많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이런 까닭으로 성장은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지지하고 환영해야 할 대의로 여겨졌다.(p.44~45)


인간 경제가 발생시키는 쓰레기와 오염 물질 처리량이 현재의 증가율로 계속 증가해나간다면 지구는 앞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p.47)


성장은 달콤하다. 앞으로 더 나아가는 진보의 의미가 담겨 있고, 발전과도 연관된다. 성장은 일부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밑천이 고갈된다면 어떻게 될까?


시장에서 성장이란 물질의 풍요로움을 말한다. 여기서 물질은 우리 삶과 밀접한 서비스, 집, 음식물 등이다. 사람들은 더 물질의 풍요를 이루기 위해 더 많은 식량과 더 좋은 서비스, 더 안락하고, 크고 넓은 집을 원한다. 식량을 더 얻기 위해서 경작지를 넓혀가고, 더 깊이 땅을 판다. 또 더 나은 서비스를 주기 위해 더 나은 상품을 만든다.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지구에 이를 충족할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 나무, 공기, 물고기, 동물, 석탄, 석유, 천연가스, 풀, 열매, 광물, 열기, 햇빛. 이 모든 건 지구가 수십억 년 동안 쌓아온 중요한 자원이다. 인간에게 더 풍요를 가져다주기 위해선 이것들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도 이것들은 고갈되지 않았다. 처음 <성장의 한계>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정확한 매장량을 측정하지 못했다. 그저 충정했을 뿐이었다. 때문에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과 20년이 지나 상황이 기하급수적으로 변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급증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더 빠르고, 더 많은 자원이 채취됐다.


성장이 반드시 지구를 붕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붕괴는 오직 지구의 한정된 자원들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져서 지나친 성장이 일어난 탓에 지구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만 발생한다. 1972년에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은 여전히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 이하인 것 같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선택 방안들을 검토하는 동안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1972년에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었다.(p.16)


성장을 살피기 위해 한 가지만 확인하자. 한 국가가 매년 10%의 경제 성장률을 보인다면, 그 국가의 경제 규모가 2배가 되는 건 몇 년 뒤일까? 10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틀렸다. 답은 7년이다. 이는 복리고 계산되기 때문이다. 처음 경제 규모가 10이었다고 생각하면, 그에 10% 성장 수치는 11이다. 매년 10%의 성장은 성장 최종 규모에서 또 10%가 성장한다는 뜻이다. 10에서 11로, 11에서 12.1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면 7년 뒤에 경제 규모가 두 배가 된다.


경제 성장뿐만 아니라 인구도 마찬가지다. 한 가정에서 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치자. 그 자녀가 성장해 또다시 2명의 자녀를 낳았다고 치자. 그렇다면 탄생한 아이는 총 네 명이 된다. 두 명의 자녀가 각각 두 명의 자녀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 인구 역시 매년 10% 씩 증가할 경우, 7년 뒤에 인구가 두 배가 된다는 뜻이다. 처음 10명의 인구일 때는 자원을 10만 채취해도 됐지만, 인구가 매년 10% 증가한다면, 7년 뒤엔 두 배의 자원을 채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구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지금도 상승 중이다. 인간은 급증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채취해야 한다. 그 결과는 지구의 한계 직면이다.


지금까지 식량 생산과 광물이나 에너지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스스로 그렇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인구와 경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면서 더 많은 식량과 광물, 에너지를 요구했고 그 수요를 감당할 만큼 생산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염 물질과 폐기물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도 그것들이 양의 순환 고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경제가 사용한 물질과 에너지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p.73)


이러한 성장은 지구와 인류 모두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다. 지구가 수십억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자원을 인류는 불과 수십~수백 년 만에 무자비하게 꺼내 썼다. 급격한 변화는 통증을 만든다. 석탄과 석유를 태우는 량은 날이 갈수록 많아졌고, 그에 따라 공기 중에 뿌려지는 이산화탄소 농도도 더욱 짙어졌다.


인류 자체가 처음에 질 좋은 자원을 채취하려고 한다. 그래야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원은 채취할수록 더 질 낮은 자원을 내놓게 된다. 자원의 질이 떨어질수록 그것을 가공하고 채취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쓰게 된다. 덕분에 인류는 더욱 많은 소비를 하게 되고, 한계에 봉착한 지구를 더욱 파고 파낸다. 그 결과 어느새 더 이상 파낼 자원이 없어진다. 지구는 오랜 시간 자원을 쌓고, 생태계를 구축한 만큼 스스로 자생하고, 독소를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한계를 초과한 파괴는 이를 더는 불가능하게 만든다.


기하급수적으로 성정하는 경제는 자원을 고갈시키고 각종 폐기물들을 방출하며 땅에서 더 이상 재생 가능한 자원을 생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이 한정된 자연환경 안에서 계속 진행될수록 점점 확대되는 경제는 강한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압박은 더 이상 사회가 성장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한동안 점점 더 심해진다. 자연환경은 그에 따라 경제에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대수층이 줄어들면서 물을 길어 올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점점 더 많아지고 따라서 새로 경작지 1헥타르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계속 늘어난다. (중략) 말하자면, 이러한 신호와 압력들은 지구의 자원 기반과 폐기물 처리 능력을 약화시키는 생태발자국의 증가를 멈추게 하려는 자연의 노력이다. (p.239)


인구와 자본 설비를 위해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는 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구에서 추출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물질은 다 쓰고 나면 재생되거나 아니면 쓰레기나 오염 물질이 된다. 에너지는 다 쓰고 나면 여기저기 쓸모없는 열로 방출된다.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은 지구에서 추출된 자원에서 시작해서 경제 하부 체계를 거쳐 다시 지구의 처리장으로 가서 쓰레기와 오염 물질로 끝난다. (중략) 지구가 사람들과 경제, 지구의 재생과 조절 과정에서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p.107~108)


이런 한계에 직면했음에도 인류가 계속 이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대표적 이유는 피드백 지체다. 시스템 의사결정자들은 시스템 한계가 왔다는 것을 즉시 얻지 못하고, 또 즉시 믿지 않는다. 믿더라도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이는 성장주의와 맞물려 더욱 지체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성장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을 말하지 않는 정치인은 쉽게 선택받을 수 없고, 성장을 말하지 않는 기업은 소비자, 투자자로부터 외면받는다. 게다가 기존 자원을 사용하던 걸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바꾸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사용을 중지하게 된다. 이 모든 게 자연의 신호를 보고도 행동까지 지체되는 이유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오존층'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오존층에 대한 내용을 처음 접했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초록색 보호막에 큰 구멍이 뻥 뚫린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지구를 지키는 보호막인 오존층에 구멍이 뚫린 사진이었다. 오존층의 보호 없이 햇빛을 바로 쐴 경우 피부암에 걸리는 등 몸에 이상이 생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존에 구멍을 뚫은 건 인간이었다. 냉장고, 에어컨, 스프레이, 발포제 등에 주로 쓰던 CFCs(프레온 가스)가 그 주범이다. 인체에 무해하고, 냄새가 없다는 점에서 널리 쓰였다. 시간이 지나 오존층 구멍이 발견되고, 그 원인으로 CFCs가 지목됐다. 처음에는 이에 거부를 했지만, 결국 이를 인정하게 됐고, 점차적으로 사용이 중단됐다. 처음 원인으로 지적되고, 실제 사용이 중지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17년이다. 17년 사이에 꾸준히 프레온 가스는 사용됐고, 오존층의 구멍은 넓어졌다. 결과적으로 사용이 중단됐지만, 지체된 시간만큼 파괴는 지속됐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오존층은 피드백 지체의 사례이기도 하지만, 지구와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다는 사례로 보이기도 하다. 프레온 가스 사용이 중단된 뒤, 남극 위에 뚫린 오존층 구멍은 규모가 조금씩 작아졌다.


기술과 시장은 장기적으로 공동선을 위해 적절하게 규제되고 활용된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엄청나게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세계가 CFCs 없이 살기로 결정하자 기술은 수십 년에 걸쳐 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기술의 창조력과 기업가 정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장 없이 만족스럽고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p.351)


기술과 시장은 대개 인간 사회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술과 시장의 주 목표가 성장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성장을 구가할 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주 목표가 공평과 지속 가능성이라면 또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기여한다.(p.360)


인류는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과 시장의 성장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기술의 발전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지구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시장이 필수다. 물론 기술과 시장만으론 할 수 없다, 기술과 시장, 다른 공동체의 노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실제 저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월드 3에 지금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어떻게 되는지 책에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그 내용을 모두 담을 순 없지만, 2100년이 되면 인류의 수명, 소비재 사용, 지구의 한계 등이 모두 땅으로 꺼져 버린다. 저자들의 월드 3 모형이 비관적이었던 걸까? 아니다. 저자들은 오히려 낙관적인 전망만을 월드 3에 넣었고, 그 결과로써도 파국이었다. 현실은 그보다 더하다.


월드 3 모형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낙관적인 상황만을 전제한다.(p.341)


지속 가능성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은 지속 가능한 사회란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라고 정의한 것이다.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 물질적,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리 내다볼 줄 알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슬기로운 사회를 말한다.(p.387)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인류가 함께 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의 책임은 선진국, 개발도상국, 국가, 개인 어느 하나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의 책임이다. 지구를 밟고 있는 이상, 지구에서 나오는 자원을 쓰는 이상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저자들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꿈꾸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진실을 말하고, 배우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할 때 지속 가능성 혁명이 일어나고, 지구가 인류가 지속 가능할 수 있다.


개인, 기업, 정부, NGO 모두가 나서서 자신들의 무지와 실패에 대해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고, 서로 협력할 때 비로소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너무 어려운 걸 알기에 저자들이 '지속가능성 혁명'이라고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최근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RE100이 화제였다. RE100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안타까웠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후보가 해당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그랬다. 국가 지도자가 모든 걸 알 지는 못하겠지만, 최소 그 후보 주변에 그런 걸 알려주는 사람조차 없었던 것 같아서 그랬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과정에서라도 공론화가 됐고, 시민들에게 그런 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줬을 것 같아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배우는 습관과 배우는 자유를 모두 잃었다. 오늘날 정치 체계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직 소수의 사람만을 지도자로 선정하고 그들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재빠르게 그들을 소환한다. 이러한 괴팍한 체계는 일반 사람들의 지도력과 지도자들의 배우는 능력을 둘 다 훼손한다. (p.425)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 그들 대다수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지속 가능성 혁명은 가정에서 지역 사회, 나라,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어떤 차원에서든 각 개인이 한 사람의 배우는 지도자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p.425)


<성자의 한계>를 읽기 전 <도넛 경제학>을 먼저 읽었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두 책이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론 성장의 한계의 내용을 경제학으로 풀어낸 게 도넛 경제학 아닌가 싶었다. 1972년에 나온 내용이 경제학으로 이름 붙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참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고, 더디게 변하는 것 같다.


이 더디고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야겠다. 일에 있어서도 기업에게 조금 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말하도록 하고, 그것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하거나, 개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내 생각을 더욱 확신하면서도, 이게 과연 언제쯤 가능할까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밑줄

- 성장이 반드시 지구를 붕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붕괴는 오직 지구의 한정된 자원들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져서 지나친 성장이 일어난 탓에 지구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만 발생한다. 1972년에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은 여전히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 이하인 것 같았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여러 가지 선택 방안들을 검토하는 동안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1972년에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었다.(p.16)


- 개인이든 지구근 그 규모에 상관없이 그것의 지속 가능한 한계를 벗어나게 만드는 원인은 늘 세 가지이다. 첫째 원인은 성장, 가속, 급격한 변화이다. 둘째 원인은 어떤 한계나 장벽 형태로 나타난다. 시스템은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더 이상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셋째 원인은 시스템이 적정 한계를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생각과 행동이 지체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인은 어떤 시스템이든 반드시 그 자체의 적정 한계를 벗어나게 한다. (p.36)


- 시스템적 관점이 세계를 바라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유익한 정보를 주는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고 뜻밖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 (중략) 어떤 시스템의 한계 초과는 (1) 급격한 변화, (2) 그 변화의 한계, (3) 그 한계들을 인식하고 변화를 조절하는 대응에서의 오류와 지연이 서로 얽혀서 발생한다. 지구의 상태를 그 순서에 따라 바라본다면 먼저 지구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는 원동력이 등장하고 이어서 그 변화를 가로막는 지구의 한계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는 그 한계들을 깨닫고 거기에 반응한다. (p.41)


- 사람들은 성장지상주의 정책을 지지한다. 성장이 끊임없이 자신들을 잘살게 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정부들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처방책으로 성장을 찾는다. 선진국에서는 성장이 고용과 경제 성장, 기술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 후진국에서는 성장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환경을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공급하려면 성장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와 기업의 지도자들은 점점 더 많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이런 까닭으로 성장은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지지하고 환영해야 할 대의로 여겨졌다.(p.44~45)


- 성장이 몇 가지 문제들을 풀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성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략) 지구는 한정된 공간이다. 인구, 자동차, 주택, 공장을 포함해서 물질적인 성장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성장의 한계가 적어도 직접적으로 사람이나 자동차, 주택, 공장들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성장의 한계란 일정 기간 동안 처리할 수 있는 양의 한계를 말한다. 즉 사람, 자동차, 주택, 공장이 자기 기능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와 물질이 제공되기는 하지만 무한정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인류가 지구의 생산력과 흡수력을 초과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원(농작물, 곡식, 나무, 물고기)을 뽑아 쓰고 폐기물(온실가스, 유독 물질)을 방출할 수 있을 정도의 성장률의 한계를 말한다.(p.46)


- 인간 경제가 발생시키는 쓰레기와 오염 물질 처리량이 현재의 증가율로 계속 증가해나간다면 지구는 앞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p.47)


- 양의 순환 고리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증가가 바라던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선순환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악순환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양의 순환 고리는 빵이 부풀 때 효모균이 늘어나는 것이나 은행 계좌의 이자가 불어나는 것과 같이 기하급수적 증가를 초래한다. 이러한 증가들은 우리 삶에 유용하다. 반면에 농작물을 해치는 해충의 증가나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증가와 같이 인간의 삶에 유해한 양의 순환 고리도 있다. (p.71)


- 지금까지 식량 생산과 광물이나 에너지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스스로 그렇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인구와 경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면서 더 많은 식량과 광물, 에너지를 요구했고 그 수요를 감당할 만큼 생산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염 물질과 폐기물이 그렇게 많이 늘어난 것도 그것들이 양의 순환 고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경제가 사용한 물질과 에너지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p.73)


- 가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하다. 이 말은 틀림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 구조화된 경제 체계에서 성장이 가난을 끝내지 못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현재의 성장 방식은 가난을 영속화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더 벌어지게 만든다. (p.91)


- 가난을 영속화하는 이런 구조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자기 자본을 더 쉽게 저축하고 투자하고 늘릴 수 있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부자 나라는 시장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통제하고 신기술을 구매하고 자원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성장으로 그들이 보유한 자본은 더욱 크게 늘어났다. 부자 나라는 대게 국민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인구로부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박탈하지 않고도 비교적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 인구 증가율이 낮으면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더 많은 산출물을 할당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인구 증가에 따른 보건과 교육 문제에는 신경을 덜 써도 된다.(p.95~96)


- 가난한 나라에서는 자본이 증가해도 인구가 함께 늘어나면서 불경기를 맞는다. 재투자될 수 있는 산출물은 학교와 병원을 짓는 데 들어가고 서민들의 기본 필수품 소비 충족을 위해 쓰이기 쉽다. 잉여 산출물들은 당장 필요한 데 쓰느라 산업 투자를 위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경제 성장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p.96)


- 인구와 자본 설비를 위해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는 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지구에서 추출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물질은 다 쓰고 나면 재생되거나 아니면 쓰레기나 오염 물질이 된다. 에너지는 다 쓰고 나면 여기저기 쓸모없는 열로 방출된다. 물질과 에너지의 흐름은 지구에서 추출된 자원에서 시작해서 경제 하부 체계를 거쳐 다시 지구의 처리장으로 가서 쓰레기와 오염 물질로 끝난다. (중략) 지구가 사람들과 경제, 지구의 재생과 조절 과정에서 피해를 입지 않으면서 자원을 생산하고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p.107~108)


- 사람들은 사 먹을 식량이 모자라서 굶주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식량을 사 먹을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굶주리는 것이다. 비용을 많이 들여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것으로는 그들을 도울 수 없다.(p.125~126)


- 어떤 사람들은 핵에너지가 세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핵에너지는 아직까지 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반면에 앞의 두 방식(에너지 효율성, 태양광 에너지)은 훨씬 더 현실적으로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다.(p.168)


- 물질들을 다 쓴 뒤 분리해서 재활용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다. 자연에서 물질이 순환하는 방식처럼 인간 경제에서도 물질은 밀폐 순환(closde cycle)을 한다. 즉 자연에서는 한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이 또 다른 과정으로 투입된다. 특히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영역들, 토양의 경우는 자연이 버린 폐기물들을 분해해서 그 가운데 유용한 요소들을 분리해내고 그것들을 다시 살아 있는 생물들에게 되돌려준다. 오늘날 인간 경제도 마침내 재생 영역을 발전시키고 있다.(p.178)


- 재생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는 전체 물질의 흐름 가운데 가장 문제가 적은 최종 단계로 다뤄지고 있다. 어림잡아 소비자가 버리는 1톤의 쓰레기는 제조 단계에서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5톤의 쓰레기를 배출하며 제품의 재료가 되는 물질을 추출하는 과정(채굴, 양수, 벌채, 농사)에서 20톤의 쓰레기를 배출한다고 한다. 이러한 쓰레기의 방출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품의 수명을 늘리고 가급적 자원의 채굴을 줄이는 것이다.(p.178)


-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한 나라는 지구 상에 한 나라도 없다. 핵폐기물은 근본적으로 독성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생명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하다. 또한 잘못 이용될 경우에는 순식간에 테러의 도구로 바뀔 수도 있다. 자연적으로 핵폐기물을 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략) 또 다른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폐기물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합성해 만들어낸 화학 물질이다. 그것들은 예전에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이다. 따라서 자연에서 그런 물질들을 분해하고 무해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기체는 아무것도 없다.(p.191)


- 대체로 부자 나라 국민의 생태발자국은 가난한 나라 국민의 생태발자국보다 훨씬 더 크다. 말하자면 독일인 한 사람의 생태발자국은 모잠비크인 한 사람보다 10배나 더 크다. (중략) 세계가 전체적으로 한계를 초과하고 있다면 누군가 그것에 대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자원을 많이 낭비하는 부자 나라 사람에 그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점점 인구가 늘어나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책임이 있는가? 아니면 과거에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남용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책임인가? 지구에 관한 한 그 대답은 그들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p.206)


- 기하급수적으로 성정하는 경제는 자원을 고갈시키고 각종 폐기물들을 방출하며 땅에서 더 이상 재생 가능한 자원을 생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이 한정된 자연환경 안에서 계속 진행될수록 점점 확대되는 경제는 강한 압박을 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압박은 더 이상 사회가 성장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한동안 점점 더 심해진다. 자연환경은 그에 따라 경제에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대수층이 줄어들면서 물을 길어 올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점점 더 많아지고 따라서 새로 경작지 1헥타르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계속 늘어난다. (중략) 말하자면, 이러한 신호와 압력들은 지구의 자원 기반과 폐기물 처리 능력을 약화시키는 생태발자국의 증가를 멈추게 하려는 자연의 노력이다. (p.239)


- 한계 초과는 피드백의 지체에서 온다. 시스템의 의사 결정자들은 그 시스템이 한계를 초과했다는 정보를 즉시 얻지 못하거나, 얻더라도 즉시 믿지 않거나, 믿더라도 즉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한계 초과는 일정하게 고정된 자원이 점점 감소하면서 발생한다. (중략) 사람들이 줄어든 자원을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는 생각보다 비축된 자원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만 골몰한다면 한계 초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기존에 자원을 소비하던 타성 때문에 인간 사회는 자연이 보내는 한계 초과 신호를 더 늦게 받아들이게 된다. 즉, 인간 사회는 그러한 자연의 경고에 대응할 수 있는 시기를 점점 더 늦추게 된다.(p.275)


- 지난 수십 년 사이에 끊임없이 확장되는 산업 문화는 지구 상의 거의 모든 공동체에 스며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물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한계라는 말을 쓰지 않으며 기업인들은 그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문화는 기술력과 자유 시장의 작동, 경제 성장을 모든 문제, 심지어 성장이 초래한 문제들까지도 풀 수 있는 해법으로 무한히 신뢰함으로써 한계의 가능성을 부인하려고 한다.(p.317)


- 월드 3 모형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낙관적인 상황만을 전제한다.(p.341)


- 사회 내부의 목표가 자연을 개발하고 엘리트들을 부자로 만들고 장기적 관점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그 사회는 환경을 파괴하고 빈부 격차를 늘리고 단기 이익에 적합한 기술과 시장을 개발할 것이다. 요약하면, 그 사회는 붕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붕괴를 재촉하는 기술과 시장을 발전시킨다.(p.345)


- 우리는 결국 기술과 시장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것들은 단순히 도구일 뿐이다. 기술과 기상은 기껏해야 그것들을 창조한 인간의 관료 체계가 지닌 지혜나 안목, 절제, 동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들이 세상에 내놓는 결과물들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것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략) 한정된 지구에서 끊임없이 물질적 확장을 추구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목적은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알맞고 지속 가능한 목적을 위해 기술과 시장을 사용한다면 마침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p.351)


- 기술과 시장은 장기적으로 공동선을 위해 적절하게 규제되고 활용된다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데 엄청나게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세계가 CFCs 없이 살기로 결정하자 기술은 수십 년에 걸쳐 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기술의 창조력과 기업가 정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장 없이 만족스럽고 공평하고 지속 가능한 세계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p.351)


- 기술과 시장은 대개 인간 사회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술과 시장의 주 목표가 성장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성장을 구가할 수 있게 돕는다. 하지만 주 목표가 공평과 지속 가능성이라면 또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기여한다.(p.360)


- 시스템 공학 용어로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시스템 안에서 정보들을 연결하는 고리인 피드백 구조를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시스템 안에 함께 참여하는 각종 행위 요소들에 관한 데이터의 내용과 적시성, 그리고 그것들의 행동을 자극하거나 제한하는 생각, 목표, 동기, 비용, 피드백들의 구조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p.365~366)


- 사람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한계 초과의 구조적 원인들은 (중략) 인구 집단과 물질 자본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유발하는 양의 피드백 순환 고리들이 작동하도록 만든 원인들이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게 만드는 각종 규범, 목표, 기대, 압력, 동기, 비용 들이다. 그러한 구조적 원인들 때문에 돈보다 천연자원을 더 허투루 쓰게 되고 소득과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며 사람들이 스스로 무엇보다도 먼저 소비자와 생산자로 구분해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소비자와 생산자로 구분해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물질이나 금전의 많고 적음으로 서로의 신분을 나누고 남에게 더 많이 주거나 자기가 만족할 만큼만 소유하기보다 남도다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게 된다.(p.367)


- 지속 가능성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간단한 것은 지속 가능한 사회란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라고 정의한 것이다.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 물질적,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을 만큼 충분히 멀리 내다볼 줄 알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슬기로운 사회를 말한다.(p.387)


- 지속 가능성은 반드시 '제로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장만을 고집하는 사회는 그 목표에 제기되는 어떠한 의문도 거부하려고 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성장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p.389)


- 오늘날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배우는 습관과 배우는 자유를 모두 잃었다. 오늘날 정치 체계에서 유권자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이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직 소수의 사람만을 지도자로 선정하고 그들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재빠르게 그들을 소환한다. 이러한 괴팍한 체계는 일반 사람들의 지도력과 지도자들의 배우는 능력을 둘 다 훼손한다. (p.425)


-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서 진실을 말할 때가 왔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잘 알지 못한다. 그들 대다수는 그것이 왜 필요한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지속 가능성 혁명은 가정에서 지역 사회, 나라,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어떤 차원에서든 각 개인이 한 사람의 배우는 지도자로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p.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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