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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Mar 28. 2022

녹색에 감춰진 진실

책, <위장 환경주의>


위장 환경주의
(카트린 하르트만/  에코리브르/ 초판 2쇄/ 2019.11.15)
- 녹색에 감춰진 진실-


2021년 10월 7일, 스타벅스 코리아 본사 앞에서 트럭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발단은 '리유저블 데이' 행사였다. 해당 행사는 고객이 매장에서 제조 음료를 주문하면, 일회용 컵 대신 리유저블 컵에 주는 행사였다. 세계 커피의 날(10월 1일)을 맞아 진행했다. 일회용이 아닌 다회용 컵에 준다는 것에서 일회용을 줄인다는 명분이 있었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소비자들은 줄은 섰고, 직원들은 트럭에 올랐다.


성공적인 행사가 시위로 번진 이유는 본사의 행사 준비 미흡 때문이었다. 행사가 진행된 뒤,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앱을 통해 사이렌 오더를 하고, 매장에서 직접 주문한 뒤 줄을 섰다. 음료가 나온 시간은 주문한 뒤 40분이 지나서였다. 직원들이 느린 걸까. 아니다. 아무리 음료를 만들어도, 주문 건수가 더 많았다. 대기 음료 650잔. 쉬지 않고, 몇 시간을 만들기만 해도 못 만들 양이다. 소비자의 폭발적 반응을 예상 못한 본사의 실책이었다.


내가 주문한 음료가 40분 뒤에 나오는데 좋아할 소비자는 없다. 불만 목소리는 매장 직원들에게 향했고, 직원들은 불만을 들으며 음료를 만들어야 했다. 가장 힘든 건 직원들이었을 터다.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면 모두 알겠지만, 바쁜 와중에 불만을 들으면 그만큼 지체되고 지체된 만큼 새로운 소비자가 와서 불만을 쏟아 낸다. 아메리카노처럼 간단한 음료면 금방 만들겠지만, 복잡한 레시피 음료를 주문하면 시간은 점점 지체된다. 폭발적 반응만큼, 폭발점 불만을 들은 매장 직원들은 스타벅스가 한국에 진출한 이후 처음으로 겪은 파트너 단체행동이었다. 노조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행동이다. 그만큼 불만이 쌓였던 것이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직면한 또 한 가지 문제는 리유저블 컵이 고작 20회 정도만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일회용품을 전적으로 대체하지 못하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생각하면, 오히려 일회용을 쓰는 것보다 환경피해를 더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행사는 소비자 반응을 예측하지 못한 본사의 판단 미스, 행사를 감당할 인력이 갖춰지지 않은 점, 판단 미스와 인력 상황을 제대로 보지 않고 무작정 진행한 오판으로 발생한 사고다. 그리고 친환경이 아님에도 마치 친환경인 듯 행사한 그린워싱, 즉 '위장 환경주의'다.


책, <위장 환경주의>는 기업이 친환경, 녹색이라고 칭하며 감춘 진실을 말하는 책이다. 나아가 해당 경영을 할 수밖에 없고, 신봉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책에 나온 사례에는 지속가능 경영을 잘한다고 여겨지는 기업이 다수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네슬레와 유니레버가 있다.


네슬레의 캡슐 커피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부터 오늘날까지 판매한 캡슐 커피는 30억 개에서 100억 개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네슬레는 네스프레스라는 상품으로 총매출액의 4퍼센트, 그러니까 800억 유로의 매상을 올렸다. 네스프레소는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생필품 대기업들이 취급하는 커피 판매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p.14)


네스프레소는 이곳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2000명의 농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며 220만 달러 -클루니가 받는 광고 출연료 2600만 달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하다-를 커피 협력 회사 건설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쓰레기만 배출하는 캡슐 커피가 개발 원조를 하고, 세계에서 가장 문제 많은 식품 대기업이 인권을 위해 일하는 단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p.23)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캡슐 커피를 이용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네슬레 매출 중 캡슐 커피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간편하게 캡슐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맛 좋은 아메리카노가 나온다. 시간도 절약되고, 업무 중 각성을 위해서도 커피가 필요하기에 자주 이용한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커피를 이용한 뒤, 내게 남겨진 건 더 이상 쓸 수 없는 알루미늄 캡슐이다. 나는 이걸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로 버렸다. 내가 버린 캡슐이 재활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재활용하는지도 모른다. 네슬레 직원이 직접 쓰레기 장을 뒤져 캡슐을 찾진 않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얼마나 재활용이 될까. 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버린 나조차 모르는데, 네슬레라고 해서 이걸 어떻게 알까.


네스프레소는 "긍정의 컵(cup)"을 "지속성에 대한 비전"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를테면 그들은 2020년까지 알루미늄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자 하며 "회수율"을 100퍼센트까지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실제로 알루미늄은 재활용할 경우,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생산할 때 필요한 에너지의 5퍼센트만 필요하다. 그러나 네스프레소는 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처리와 수거를 오로지 고객에게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고객에게 커피 캡슐을 노란색 자루에 넣거나, 노란색 통에 넣거나, 혹은 재활용 수거 통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네스프레소가 캡슐의 재활용 비용을 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통이 아닌 재활용 통에 들어가는 캡슐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네스프레소가 재활용 알루미늄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p.15~16)


저자는 유니레버도 비판한다. 대표적 비판 요소는 종려유(팜유)다. 팜유가 안 들어가는 생필품은 사실 거의 없다. 대표적 제품은 라면이다. 예전에 어떤 책을 읽고, 팜유가 들어가지 않은 라면이 있는지 찾아봤다. 마트에 있는 라면을 전부 다 찾아봤지만, 안 들어간 제품은 딱 한 개였다. 제품은 건면 제품이었다. 기름으로 튀기지 않기 때문에 팜유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 외 기름에 면을 튀긴 제품에는 모두 팜유가 포함됐다.


팜유의 대표 생산지는 인도네시아다. 팜유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열대우림을 의도적으로 방화하고, 팜유 생산지로 만든다. 열대우림은 여러 나무가 뒤섞여 있다. 그런 곳을 의도적인 방화를 통해 없애고, 팜유 하나만을 경작하는 단일 경작지로 만드는 것이다. 없어진 열대우림만큼 팜유 경작지가 되어 다량의 팜유를 생산할 수 있다.


의도적 방화는 분명 문제가 있다. 열대우림을 방화하면서 생산하는 기름을 좋다고 할 사람은 없다. 기업은 힘을 모아 우리가 공급받는 팜유는 괜찮다고 인증해주는 기관을 만든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팜유 산업협의체(RSPO)'다. 이 인증을 받으면,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 팜유가 생산됐고, 공급받았다고 인증받는 것이다. 이 협의체 구성원 대다수는 기업이고, 환경 NGO WWF가 그나마 포함됐다. 이런 팜유를 공급받는 곳은 유니레버와 네슬레, P&G 등이다.


RSPO 인증을 받은 팜유를 공급받은 기업들은 우리의 공급처는 지속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저나는 방화가 없다는 환경에서 의도적인 방화가 있었으며, 생산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있었다. 소작농들은 기업에게 경작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구입하고, 관련 부자재를 기업에게 대출받아 구입한다. 그 과정에서 이자를 내야 하고, 원금을 갚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소작농에게 떨어지는 돈은 생계를 겨우 유지할 정도다.


지속 가능한 종려유를 위한 원탁회의는 지난 13년 동안 숲의 대대적인 파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이 원탁회의는 녹색의 망토를 두르고 있을 뿐이다. 세계산림감시에 따르면, 원탁회의를 결성한 후 인도네시아의 숲은 더 많이 훼손되었다. 2015년에는 7,350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이는 2004년(5,000제곱킬로미터)에 비해 25퍼센트 늘어난 수치다. 한편 2012년에는 약 1만 제곱킬로미터나 벌채했다. 정부가 2011년 중요한 숲과 이탄 지역의 개간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모라토리움을 발표했는데도 말이다.(p107)


팩트는 이러하다. 요컨대 노동자와 농부가 그렇듯 인정사정없이 착취당하지 않는다면, 종려유는 세상에서 가장 싸지도 않고 갈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위한 빵'에 따르면, 오늘날 이런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식민지 시대보다 낮다고 한다. 이렇듯 극단적으로 낮은 임금은 회사를 신속하게 팽창하게 하고, 투자자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 정상을 벗아 난 수익을 안겨준다. 종려유가 인간에게 복지와 일자리를 제공하고 가난도 물리친다는 말은 이렇듯 지저분한 산업이 하는 최고로 엄청난 거짓말이다. 종려유 산업은 가난을 유발할 뿐 아니라, 가난으로부터 먹고산다. 이 산업에는 가난이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원자재인 것이다.(p.111)


이런 인증은 원자재의 축소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산량이 늘게 만든다. 이는 대기업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원자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수십억 달러의 확실한 수익을 얻도록 하고, 이로써 대기업의 힘을 더욱 막강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인증을 해주는 방식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독일 킬(Kiel) 대학의 해양연구소에서 실시한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 MSC 인증을 받은 물고기도 남획한 어장에서 잡았다고 한다. 벌목과 불법적 개간으로 획득한 나무가 FSC 인증을 받고, 책임 있는 대두 생산과 더 나은 목화 생산을 위해 원탁회의가 교부한 인증이 오히려 유전자 조작 종자를 사용할 수 있게끔 허락한다.(p.125~126)


네슬레와 유니레버의 사례를 가져온 건 이들이 지속가능 경영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기업들이기 때문이다. MSCI ESG 평가에 따르면, 네슬레와 유니레버는 모두 AA등급이다. 즉, ESG 경영에 있어서 리더(leader)라고 여겨지는 기업이다. 문제는 이런 리더 기업들조차 공급망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는 건 이들 기업이 공급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산업계에서 하는 얘길 들으면, 모든 것이 지속 가능하다는 말뿐입니다. 고기, 대두, 사탕무,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나아?"내가 물었다. 소나아는 미소를 지었다. "고기는 토착민의 피로부터 나와요. 그리고 단작은 땅을 파괴하죠.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숲에서 먹거리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켜왔어요. 이런 행동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죠. 하지만 갑자기 모두가 '지속 가능'이니 '녹색'이니 하는 말을 하고 있네요."(p.192)


앞서 스타벅스 코리아의 사례는 일반 소비자들도 쉽게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네슬레와 유니레버처럼 조금만 멀리 나가도 소비자가 알기 쉽지 않다. 일일이 찾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는 이상 어렵고,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이런 수고를 할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럴수록 녹색은 점점 더 짙게 칠해지고, 진실은 더욱 감춰진다.


결론은 뭘까. 기업이 없어져야 할까? 우리 모두가 스타벅스 코리아 시위처럼 모두가 나가서 시위를 해야 할까? 물론 필요하지만 온 국민이 여기에 힘을 쏟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의식을 계속 갖고,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기업에게 바뀌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 역시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비즈니스가 바뀌어야 한다. 비즈니스가 바뀌기 위해선, 기업 경영에서 일으키는 문제점이 뭔지 제대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 경영을 제일 잘한다는 기업들 조차 공급망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외 다른 기업들은 불 보듯 뻔하다. 문제점이 뭔지 정확히 바라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점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기업과 연관된 이해관계자를 직접 만나고, 그들이 실제 일하는 작업 환경에 가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인터뷰를 해서 듣고 개선점을 도출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조직의 문제점을 정확히 공표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기업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공급망 이해관계자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기업에 적절하게 글로써 전달하는 게 앞으로 내게 있어 필요한 역량이자 기술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하거나, 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을 쓴 게 다행이다 싶다.


"우리에게 멋진 삶이란 자동차나 좋은 집을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소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밟지만,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하죠. 그들은 땅을 착취하려 해요. 우리는 나무를 심고 더 좋은 공기를 위해 그것들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죠. 하지만 그들은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그 나무의 가치가 얼마일지 의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게 멋진 삶이란 우리 땅에서 자유롭게 살고, 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을 누리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우리 것이라는 보장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p.195)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바뀌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밑줄

- 네슬레의 캡슐 커피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2006년부터 오늘날까지 판매한 캡슐 커피는 30억 개에서 100억 개로 3배 넘게 증가했다. 네슬레는 네스프레스라는 상품으로 총매출액의 4퍼센트, 그러니까 800억 유로의 매상을 올렸다. 네스프레소는 전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생필품 대기업들이 취급하는 커피 판매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p.14)


- 네스프레소는 "긍정의 컵(cup)"을 "지속성에 대한 비전"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를테면 그들은 2020년까지 알루미늄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고자 하며 "회수율"을 100퍼센트까지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실제로 알루미늄은 재활용할 경우,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생산할 때 필요한 에너지의 5퍼센트만 필요하다. 그러나 네스프레소는 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처리와 수거를 오로지 고객에게 떠맡기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고객에게 커피 캡슐을 노란색 자루에 넣거나, 노란색 통에 넣거나, 혹은 재활용 수거 통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네스프레소가 캡슐의 재활용 비용을 댄다는 것이다. 그러나 쓰레기통이 아닌 재활용 통에 들어가는 캡슐이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네스프레소가 재활용 알루미늄을 얼마나 사용했는지 역시 아무도 모른다.(p.15~16)


- 만약 네스프레소를 처음부터 시장에 출시하지 않았다면, 생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정당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물론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듯 지속적으로 발전한 소비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질문을 아예 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요컨대 그와 같은 우리를 반박하려 한다. 그리하여 엄청난 쓰레기를 배출하고, 지나치게 비싼 커피 시스템이 자원을 낭비하고 소농을 착취하는 것이다. 이런 커피 시스템은 생태적 고리를 외면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후에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p.17)


- 한때 해롭고 비열하다고 간주했던 모든 것이 오늘날에는 세계를 구원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오징어 스테이크, 엄청나게 많은 자동차, 포뮬러 원, 주식 펀드, 비행기 여행, 모피 옷, 에스파냐 남부에서 수입한 채소, 식물 연료, 종려유, 유전자 변형 대두, 석탄 화력발전소, 댐, 북극에서 채굴한 석유……. 이 모든 것을 오늘날 '지속 가능한;, '녹색의(환경 친화적)' 혹은 '책임감 있는' 제품으로 제공한다.(p.17~18)


- 네스프레소는 이곳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2000명의 농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며 220만 달러 -클루니가 받는 광고 출연료 2600만 달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푼돈에 불과하다-를 커피 협력 회사 건설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쓰레기만 배출하는 캡슐 커피가 개발 원조를 하고, 세계에서 가장 문제 많은 식품 대기업이 인권을 위해 일하는 단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p.23)


- 만일 대기업이 약간만 더 '향상된다면' 긍정적 결과가 폭넓게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은 유치한 이론과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다. 이런 이론은 어떤 구조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점차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에서 착취, 인권 침해, 환경 훼손 그리고 자연 파괴는 피할 수 없는 부수적 손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파괴와 훼손을 바탕으로 이득이 발생한다. 대기업이 노동권, 토지권과 인권(혹은 환경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더 많은 이윤이 남는다. 논리는 이렇듯 매우 간단하다. 만일 기업이 생태와 사회에 적합한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해 이윤을 올릴 수 있다면, 왜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려 하겠는가?(p.25~26)


- 자동차의 나라이자 경제 기적을 이룬 독일은 경제 성장을 하면서도 품을 죽이지 않고, 강물도 깨끗하고 하늘도 파랗게 유지하는 데 성공했을까? 레시니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 세상에 있는 소비 중심 도시의 맑은 하늘은 환경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부분 외향 화한 덕분이다. 결국 잘 사는 사회는 환경 발자국을 덜 남김으로써 이득을 본다. 환경을 훼손하는 발자국을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 가난한 나라에 떠안기는 까닭이다."(p.29)


- 재난 발생 초기부터 블랜차드는 BP를 반대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우리가 기름을 다 걷어낼 수 있었다고요. 배들은 이미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원치 않았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 환경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거죠. 늘 돈, 돈, 돈만 생각하는 것들이죠." 블랜차드는 말을 이었다. "아니,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왜 건설하느냐 이 말입니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멈추는지 모른다면, 애초부터 해저에 구멍을 뚫지 말았어야죠."(p.57)


- 클린 클로즈 캠페인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H&M 공급업체 32곳을 조사했는데, 이들은 H&M과 이른바 골드 파트너십 관계에 있었다. 이 대기업에서 특히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생산하는 공장을 선별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클린 클로즈 캠페인은 이들 공급처의 건물에서 안전에 미흡한 점 518가지. 화재에 취약한 점 836가지, 전기 안전상의 문제 650가지를 발견했다. 그런데 H&M은 2014년 지속 가능성 보고서와 웹사이트에 건물 안전 및 화재 안전과 관련한 모든 조치를 기한 내에 모두 시행했다고 선전했다.(p.71)


- 뭔가를 정말 자주 반복하면, 이것이 결국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예전부터 거짓말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작동했다. 패션 산업이 바다를 구한다는 이야기도 녹색 거짓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건져낸 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운동화는 아디다스가 매년 생산하는 제품(3억 개 이상) 중에서 0.5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H&M의 경우에는 재활용으로 만든 제품의 수가 더욱 적다. 다른 한편으로, 모두가 알고 있듯 진실은 매우 간단하다. 다시 말해 옷과 플라스틱을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고, 덜 버리면 바다를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현상과 섬유 산업이 생태계와 사회적 불평등에 미치는 피해를 멈출 수 있다. 아니, 적어도 아주 많이 줄일 수는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와 패션 사이에는 단 한 가지 분명한 관계가 있다. 요컨대 패션은 순간적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렇지 않다. 플라스틱은 500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컬렉션 사이사이에 출시하는 모든 신제품은 미래에 바다의 쓰레기가 된다.(p.72)


- 낭비를 모토로 내걸고 있는 자본주의적 성장주도 사회에서는 포기라는 게 없다. 즉 많이 버려야만 많이 구입하기 때문이다.(p.75)


- 미하엘 브라운가르트가 개발한 식용 비행기 좌석 커버는 비약적인 기술이라는 보도 이면에 정작 중요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항공 교통이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비행기 좌석 커버를 먹을 수 없다는 점을 감추는 게 아니라, 비행기를 타는 행동이야말로 인간이 움직이는 행동 가운데 기후를 가장 많이 훼손하고 자원을 가장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한다. 특이하게도 이 좌석 커버는 장거리 비행기인 에어버스 A380의 일등석에서 볼 수 있다.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타는 고객들이 -모순이 아닐 수 없는데- 하필이면 그린(Green) 좌석을 선택하는 셈이다.(p.78~79)


- 심지어 에코챌린지라는 앱도 있다. 이 앱을 통해 사람들은 일상에서 지속 가능하게 행동함으로써 점수를 모으고, 전 세계에 있는 다른 에코 도전자들과 함께 이를 측정할 수도 있다. 생태 발자국을 가장 적게 남기는 사람들이 이런 게임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게 참 바보 같기는 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기술적인 고가품을 구입하거나 사용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p.86)


- 지속 가능한 종려유를 위한 원탁회의는 지난 13년 동안 숲의 대대적인 파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 이 원탁회의는 녹색의 망토를 두르고 있을 뿐이다. 세계산림감시에 따르면, 원탁회의를 결성한 후 인도네시아의 숲은 더 많이 훼손되었다. 2015년에는 7,350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이는 2004년(5,000제곱킬로미터)에 비해 25퍼센트 늘어난 수치다. 한편 2012년에는 약 1만 제곱킬로미터나 벌채했다. 정부가 2011년 중요한 숲과 이탄 지역의 개간을 일시적으로 중지시키는 모라토리움을 발표했는데도 말이다.(p107)


- 팩트는 이러하다. 요컨대 노동자와 농부가 그렇듯 인정사정없이 착취당하지 않는다면, 종려유는 세상에서 가장 싸지도 않고 갈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위한 빵'에 따르면, 오늘날 이런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식민지 시대보다 낮다고 한다. 이렇듯 극단적으로 낮은 임금은 회사를 신속하게 팽창하게 하고, 투자자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 정상을 벗아 난 수익을 안겨준다. 종려유가 인간에게 복지와 일자리를 제공하고 가난도 물리친다는 말은 이렇듯 지저분한 산업이 하는 최고로 엄청난 거짓말이다. 종려유 산업은 가난을 유발할 뿐 아니라, 가난으로부터 먹고산다. 이 산업에는 가난이 가장 중요하고 지속적인 원자재인 것이다.(p.111)


- 이런 인증은 원자재의 축소를 위해 봉사하지 않으며, 오히려 생산량이 늘게 만든다. 이는 대기업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원자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수십억 달러의 확실한 수익을 얻도록 하고, 이로써 대기업의 힘을 더욱 막강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인증을 해주는 방식은 비판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독일 킬(Kiel) 대학의 해양연구소에서 실시한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 MSC 인증을 받은 물고기도 남획한 어장에서 잡았다고 한다. 벌목과 불법적 개간으로 획득한 나무가 FSC 인증을 받고, 책임 있는 대두 생산과 더 나은 목화 생산을 위해 원탁회의가 교부한 인증이 오히려 유전자 조작 종자를 사용할 수 있게끔 허락한다.(p.125~126)


- 기후, 환경, 건강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독일 정부는 남반구에 있는 나라에서 그 어떤 국가보다 인권 침해를 많이 저지르고 있으면서 이를 합법화하고 심지어 재정 지원까지 해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외양화 사회가 가진 본질적 요소에 해당한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독일의 하늘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고, 겉으로 보기에 환경과 기후를 보호하는 것 같은 기술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은 모조리 남반구로 전가한다.(p.167)


- 사실을 왜곡하고 단편적 사실만 과장해서 얘기하며 결정적으로 중요한 세부 사항은 숨기기. 바로 이런 방식으로 녹색 거짓말이 탄생하며, 산업은 그것을 과학적 증거라면서 세상에 발표한다. 현재 상태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른바 녹색 거짓 뉴스의 양산은 전통적 프로파간다를 대체했다. 한때 기후 변화를 거부했던 자들이 유행시킨 그 선전 말이다. 캐퍼 같은 사람은 지속 가능한 사업을 한다고 밝히는 육류 산업에서 진정 행운아다. 캐퍼가 지속 가능한 소고기를 위한 세계원탁회의의 외부 고문이자 감시자인 것은 그리 놀랍지도 않다.(p.187)


- "산업계에서 하는 얘길 들으면, 모든 것이 지속 가능하다는 말뿐입니다. 고기, 대두, 사탕무,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나아?"내가 물었다. 소나아는 미소를 지었다. "고기는 토착민의 피로부터 나와요. 그리고 단작은 땅을 파괴하죠. 우리는 수천 년 전부터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숲에서 먹거리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켜왔어요. 이런 행동에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죠. 하지만 갑자기 모두가 '지속 가능'이니 '녹색'이니 하는 말을 하고 있네요."(p.192)


- "우리에게 멋진 삶이란 자동차나 좋은 집을 소유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소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밟지만, 그들은 다른 생각을 하죠. 그들은 땅을 착취하려 해요. 우리는 나무를 심고 더 좋은 공기를 위해 그것들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죠. 하지만 그들은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그 나무의 가치가 얼마일지 의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게 멋진 삶이란 우리 땅에서 자유롭게 살고, 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을 누리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이 우리 것이라는 보장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p.195)


- 저녁에 지는 해가 초원, 나무 그리고 숲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새들이 지저귀지 않았더라면, 닭들이 꼬꼬댁거리지 않았더라면, 소들이 '음매'하고 울지 않고 돼지들이 꿀꿀거리지 않았더라면, 너무나 조용해서 풀과 잎사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파란 하늘 위에서 서로 술래잡기를 하던 구름이 만든 그늘로 인해 마치 항상 새롭고 비현실적인 그림 같은 경치가 드러났다. 큰부리새들이 지나갔다. 알록달록하고 커다란 부리가 있는 새들이 마치 하늘에 그려 넣은 만화 캐릭터 같았다. 이곳은 내가 본 지구 상의 땅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지역 중 하나였다. 정말 살고 싶은 곳이었다. 나중에 이스테비뉴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음식과 맥주를 먹고 마시며 기쁨과 희망을 서로 나눌 때, 나는 문득 깨달았다.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영위하는 멋진 삶이란 자본주의를 넘어 다른 편에 있다고 말이다.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느낄 수 있었다.(p.204)


-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가로 얻은 석유는 전 세계가 단 열흘 정도 소비할 수 있는 양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얻은 석유로 '포뮬러 1 자동차 경주'를 하고, 전 세계의 바다에 플라스틱을 버리고, 군대 투입을 위한 연료로 사용하고, 금방 출시된 제임스 블러튼의 CD를 굽는다.(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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