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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Apr 14. 2022

기업이 집중해야 할 것

책,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
(마저리 켈리/ 이소출판사/ 초판 1쇄/ 2003.10.25)

- 기업이 집중해야 할 것 -


기업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강력한 건 주주일 것이다. 주주는 기업의 주인 된 권리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가지고, 경영진의 주요 결정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기업의 주인이기 때문에 기업 경영은 주주를 최우선 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ESG가 큰 화두인 지금, 가장 중요한 건 G(지배구조)다. 개인적으론 G를 지배구조가 아닌 거버넌스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주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만큼 지배구조 측면에서 한번 보자.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주주'라고 한다. 주주는 기업의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식은 기업의 주인 된 권리로 해석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기업이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과연 주주가 진짜 기업의 주인이고, 기업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해야 할 사람들일까?


의문이 드는 이유는 주식은 언제든 사고팔 수 있다는 점이고, 주주들이 결코 기업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는 주주 우선주의가 나타난 배경과 그것의 문제점, 대안점을 다루는 책이다.


이야기가 길지만, 기업은 세상을 금융 렌즈로 바라본다. 금융 렌즈 상에서는 매출과 순이익 외에 요소들은 -로 표시된다. 즉 종업원에게 들어가는 비용마저도 -로 표시된다. 그런 관점은 종업원의 수를 줄이거나, 그들에게 최대의 효율을 내도록 요구하는 업무 환경으로 내몰게 한다. 또한 대차대조표 상에서 비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때문에 기업이 만드는 사회적, 환경적 비용은 담지 않는다.


어떤 기업이 '잘 나간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곧 그 기업의 주주가 잘 나간다는 뜻이다. 공장 폐쇄로 지역 경제가 황폐해질 수도 있다. 종업원들이 엄청난 노동 강도에 허덕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회사, 요즘 잘 나가."(p.31~32)


참 아이러니하다. 기업의 매출과 이익을 만드는 건 종업원인데 그 매출을 올리는 주체들이 -로 표시된다. 게다가 그들이 만드는 환경과 사회 비용은 철저히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한 이유는 기업들이 주주에게 집중했기 때문이고, 대차대조표 상에 나타나는 매출과 순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업이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이 기업을 바라보는 렌즈가 금융이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가 등장한다. 그것은 금융상의 렌즈로, 이를 통해 기업은 주주들에게 귀속되는 숫자를 게임 전반의 종결 지점으로 파악한다. 재무제표는 자산 소유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렌즈로, 존재의 위대한 사슬이라는 렌즈가 그랬듯이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일그러뜨린다.(p.59)


종업원들은 대차 대조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에서 그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평민들이 영국 상원 명부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사방팔방 두리번거리며 자기 소유의 가치 있는 것(자신들)이라면 무엇이든 기록하려 드는 기업이 어쩐 일인지 종업원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종업원은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회계 용어상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그 말이 사실이 되려면, 정리 해고는 불요불급한 지출 요인의 제거가 아니라 자산의 대량 파괴로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p.64)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기업 사회에서 진정한 지배력은 주식 시장에 있다. 왜냐하면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질 경우, 경영진은 물론 이사진들까지도 기업 인수 과정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은 다시, 한 글자로 된 비인격적인 명령 —'더!'—의 지배를 받는다. '모든 이이게 더'가 아니라 '주주들에게 더'. 이 말은 필요할 경우 '종업원에게는 덜' 그리고 '지역 사회에는 덜'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식 시장, 이사회장 그리고 법정에서 이음새 하나 없이 단단하게 결합된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하는 셈이다. 주주 제일은 기업이라는 우주의 중심인 것이다.(p.118)


주주들이 기업의 주식을 사는 이유는 그 기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 한편, 주주들은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에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 경영진을 내쫓을 수도 있으며, 이사진을 결정할 수 있다. 기업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주를 거스르는 순간, 쫓겨나게 된다.


금융의 렌즈로 주주가 된 주주들,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경영진. 이 구조에서는 주주들에게 더 큰 이익을 주기 위한 결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건 그 기업에 속한 종업원들이다. 기업 의사결정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게 종업원임에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ESG는 기업을 바라보는 렌즈가 금융에서 환경, 사회, 거버넌스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과 주주가 기업에게 마땅히 요구해야 되는 게 무엇인지 렌즈가 바뀐다면 기업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ESG가 정책, 법적으로 더욱 강화됐으면 좋겠다.


기업이 주주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주주자본주의냐, 종업원과 환경, 사회까지 고려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냐. 두 자본주의 중 나를 위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주주 자본주의의 발생과정과 모습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물론 저자가 조금 극단적인 면이 있어 보여서 그 점은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밑줄

- 그렇다면 사람들이 보이는 너무나 비상한 신의에 보답해서, 주주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잘것없다. 자신들이 설치한 파이프라인에 기업의 유일한 목표가 거기에 깔때기를 얹어 부를 쏟아붓는 것이라고 주주들이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이처럼 쥐꼬리만 한 기여도 덕분이다.(p.31)


-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생산적인 리스크를 낳는 것은 기업가와 최초의 벤처 투자자들로, 진정한 투자 자금으로 진정한 부를 낳는 데 기여하는 것도 이들이다. 이렇게 생겨난 주식을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또는 만 번째로 사는 사람들도 물론 리스크를 떠안는다. 그러나, 여기서 리스크는 마치 도박꾼처럼 자기들끼리 속고 속이는 투기꾼들의 리스크다. 이러한 리스크는 기업과 하등의 관계도 없다. 예외는 한 가지, 공개 기업이 필요에 의해 도박판에 새로운 칩을 공급할 때뿐이다. 이렇게 칩은 다시 영원 속으로 던져진다.(p.31)


- 어떤 기업이 '잘 나간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곧 그 기업의 주주가 잘 나간다는 뜻이다. 공장 폐쇄로 지역 경제가 황폐해질 수도 있다. 종업원들이 엄청난 노동 강도에 허덕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회사, 요즘 잘 나가."(p.31~32)


- 종업원들의 월급이 늘어나는 것으로 기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사람들은 없다.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종업원들의 행복은 기업의 불행이다. 여기서 무의식적인 편견이 드러난다. 종업원들은 기업의 진정한 일부분이 아니라 나는 것이다. 종업원들은 자신들이 창출한 부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고, 경영에 대한 발언권도 없으며, 이사회 의결권도 없다. 기업 사회에서 그들은 시민이 아닌 신민이다.(p.32)


- 우리는 이를 시장의 자연적 법칙이라 생각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는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기업 지배 구조의 결과다. 진정한 시장에서는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으려 애쓰고 스스로 벌어들인 것을 갖는다. 그런데 기업 구조에서는 한 집단이 벌어들인 것을 다른 집단이 갖는다.(p.32)


- 단 한마디 말. 그러나 드러나지 않은 분쟁의 씨앗, 왜 종업원들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부자들은 날이 갈수록 부유해지는 걸까? 기업이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왜 기업들은 재산세는 감면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300년 묵은 숲은 못 베어 내서 안달일까? 기업이 만들어지길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밀물이 들면 안 뜨는 배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기업이 하는 일은 오히려 댐의 수문과 비슷하다. 안쪽의 수위는 올리고, 바깥쪽의 수위는 내린다.(p.33)


- 기업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가 등장한다. 그것은 금융상의 렌즈로, 이를 통해 기업은 주주들에게 귀속되는 숫자를 게임 전반의 종결 지점으로 파악한다. 재무제표는 자산 소유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렌즈로, 존재의 위대한 사슬이라는 렌즈가 그랬듯이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일그러뜨린다.(p.59)


- 종업원들은 대차 대조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에서 그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평민들이 영국 상원 명부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사방팔방 두리번거리며 자기 소유의 가치 있는 것(자신들)이라면 무엇이든 기록하려 드는 기업이 어쩐 일인지 종업원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종업원은 우리 회사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회계 용어상으로는 사실이 아니다. 그 말이 사실이 되려면, 정리 해고는 불요불급한 지출 요인의 제거가 아니라 자산의 대량 파괴로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p.64)


- 회계상으로는 종업원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돈도 가치가 있고, 물건도 가치가 있으며, 아이디어(지적 재산)도 가치가 있고, 심지어 영업원처럼 뜬구름 잡는 것들도 가치가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종업원들의 가치는 마이너스다. 그들은 손익 계산서상의 비용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비용과 관련되는 목표는 언제나 단 한 가지, '절감'뿐이다.(p.64)


- 그 같은 결과는 지역 사회와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무제표에 구축된 두 번째 주요한 편견은 다음과 같다. 기업은 모든 가능한 이익을 지역 사회로부터 내부 화하고, 모든 가능한 비용을 지역 사회로 외부화해야 한다. 기업에 부과되는 비용은 손익 계산서에 나타나고, 순이익액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지역 사회에 부과되는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역 사회는 금융 렌즈의 시야 바깥에 있으므로, 기업의 세계관에서는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는다.(p.67)


-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기업 사회에서 진정한 지배력은 주식 시장에 있다. 왜냐하면 주가가 지나치게 떨어질 경우, 경영진은 물론 이사진들까지도 기업 인수 과정에서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은 다시, 한 글자로 된 비인격적인 명령 —'더!'—의 지배를 받는다. '모든 이이게 더'가 아니라 '주주들에게 더'. 이 말은 필요할 경우 '종업원에게는 덜' 그리고 '지역 사회에는 덜'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식 시장, 이사회장 그리고 법정에서 이음새 하나 없이 단단하게 결합된 단 하나의 목표만이 존재하는 셈이다. 주주 제일은 기업이라는 우주의 중심인 것이다.(p.118)


- 아이티 계약 노동자들은 디즈니 브랜드의 옷을 바느질하고 굶어 죽기 딱 좋을 정도의 임금(시간당 28센트)을 받고 있지만 —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여 이익(주주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최저 생활 임금을 지불해도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디즈니의 경우, 계약 임금을 두 배로 올리더라도 의복 생산 원가의 1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노동자들의 수입은 최소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p.123~124)


- 주주가 곧 기업이라는 관념은 물론 법적 허구다. 주주는 끝없이 수익을 획득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 허구다. 주주 개인이 아미루 관대하고 생산적이라 해도, 체제의 기본 성격상 주주는 수동적이고 부재중이며 많은 부분 비생산적인 투기자들의 집단으로 부를 추출해 내는 것을 유익한 목적으로 한다. 반면 기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사람의 공동체로 여러 물건을 생산하거나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주주와 기업을 등치 시키는 것은 명백한 허구, 보는 이의 가슴이 다 조여들 만큼 대담한 허구다.(p.161)


- 우리는 오늘날 기업의 환경오염, 저임금, 기업 복지를 서로 별개의 문제로 놓고 해결하려 한다. 그러한 문제들은 모두 —부유한 자들에게 더 많은 부를 안겨 주는 것이 유일한 최대의 과제라 고집하는— 빈주 차별이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다. 우리가 이러한 핵심 쟁점을 인식한다면, 제각각 분리된 노력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진 노력은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것이다.(p.179)


- 예컨대 우리는 과거 사람들이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원해서 한 일 아니냐"라고 묻거나, 변호사들이 성폭행 관련 재판에서 피해 여성에게 "혹시 즐기지 않았느냐"라고 묻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는" 언동이라며 맞섰다. 오늘날 경제학에서도 그처럼 피해자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마치 임금을 적게 받는 것은 교육을 적게 받았기 때문이므로 노동자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저임금은 교육 훈련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종업원들은 더 많은 가치가 있으며, 그들은 생산성에 비해 적절한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울 것이 아니라, 노동 부분에 돌아가야 할 몫을 제대로 챙겨 주지 않도록 설계된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p.182)


- 다시 한번 제프 게이츠의 어법을 빌리자면, 우리는 부 창출의 폐쇄 회로를 열어젖히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 부를 부에만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능력에 배분하는 메커니즘에 더 큰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새로운 원칙들을 인식해야 한다. 첫째, 단 한 번 돈을 밀어 넣은 대가로 끝없이 점점 더 많은 부의 흐름을 누리는 것은 인공적이고, 귀족제 적이며, 부조리하다. 둘째, 그러한 부의 흐름은 부를 창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했던 것처럼, "부에 근거한 인공의 귀족제"는 반드시 "재능의 자연적 귀족제"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p.195)


- 자유 시장 이론은 연막을 피우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에 숨겨져 있는 그 무엇, 바로 권력 구조다. 문제는 우리가 강도 귀족들이 남긴, 그리고 귀족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아직 입법을 통해 그러한 핵심 구조에 효과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법을 집행하면서, 우리는 마치 성가신 나무가 끊임없이 자라는데도 뿌리는 제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잔가지만 하염없이 쳐내는 정원사 같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현재의 법은 특정한 징후에만 초점을 맞출 뿐, 잠복하고 있는 질병은 손대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그 질병은 바로 주주 제일이라 불리는 자유 시장의 부패로, 기업은 사적인 존재이므로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는 법 관념 때문에 불치병이 되고 말았다.(p.236)


- 어떤 문제가 법에 근거해 있거나 법에 원인이 있을 때, 그 해법은 법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날 주주 제일주의는 법에 명시되어 있다. 델라웨어 사법부의 예에서 보듯, 대부분의 대기업을 통제하는 것은 분명 법이다. 그리고 어떤 주에서든 주주 수익 극대화에 실패한 임원들은 송사를 당할 수 있고, CEO들은 해고를 당할 수 있다. 나아가 회사 자체가 적대적 인수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주주 제일주의가 뿌리내리게 하는 법적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법적 메커니즘에는 다른 법적 메커니즘으로만 대항할 수 있다.(p.256)


- 내적 지위를 얻을 자격이 있는 한 가지 집단은 종업원이다. 엘러먼은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는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이해 관계자 이론가들은 흔히 이렇게 묻는다. 누가 기업의 영향을 받는가? 그러나 앨러먼은 좀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진다. 누가 기업의 지배를 받는가? 그 답은 종업원이다. 엘러먼은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지만, 지배받는 것은 극소수"라면서,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미국의 행동에 영향을 받고 그들의 권리 또한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 말이 그들에게 미국 투표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p.260)


- 앨러먼의 지적처럼, 주주들은 기업을 지배할 CEO를 뽑지만, 정작 그에게 지배당하는 것은 주주들이 아니다. 행동을 감시당하고, 약물 검사를 받아야 하고, 전화 통화를 감청당하고, 이메일을 검열당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종업원들이다.(p.260)


- 종업원 대의제가 어떤 형태를 띠든, 궁극적으로 그것의 시행은 의무화되어야 한다. 현재는 노동조합을 통해 종업원의 의사가 선택적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부적절한 것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공화당원들에게는 투표권을 고정적으로 영원히 부여하면서, 민주당원에 대해서는 도시별로 조직되어 있는 당원에 한해서만 투표권을 주는 것과도 같다. 노동조합은 노동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과 같은 것으로서, 오늘날 기업을 일당 독재 국가처럼 운영하고 있는 금융 이익에 맞서 균형을 잡아 주는 존재로 파악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종업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종업원을, 투표권을 가진 기업의 시민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진정 민주적인 경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한 시스템은 또한 노동조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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