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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팔청춘 Jul 10. 2022

기업 자선의 불편한 진실

책,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왜 기업은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
(마이클 에드워즈/ 다시 봄/ 1판 1쇄/ 2013.09.24)

- 기업 자선의 불편한 진실 -



소위 대가 없이 자신의 돈을 기부하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 '자선가'라고 한다. 대표적인 자선 사업가로 알려진 건 빌 게이츠다. 그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재산의 상당 부분을 기부하고, 말라리아나 에이즈 퇴치를 위해 힘쓰고 있다.


해당 활동은 충분히 칭찬받고 박수받을 일이다. 재산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 재산을 선뜻 다른 사람을 위해 쓰기란 쉬운 게 아니다. 이러한 행동은 실제 효과도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를 받아 치료받은 사람이 있고, 에이즈 치료를 받은 사람이 있다. 그들에겐 빌 게이츠의 자선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전부일까?


책, <기업은 왜 세상을 구할 수 없는가?>는 자선으로 알려진 박애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이것이 왜 세상을 구할 수 없는지를 다룬다.


박애 자본주의나 박애 사업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효율성을 비영리사업에 접목하려는 시도다. 말라리아나 에이즈를 퇴치하는 등 비영리에서 하는 일에 기업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원봉사자에게 현금을 지원해 활동을 독려한다던지, 그 독려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방식은 기업 안에서만 효과가 있고, 시민사화나 비영리 쪽에 도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선의의 뜻을 가지고 있던 자원봉사자에게 돈을 주게 되면, 어느 순간 선의가 사라지고 돈을 주지 않으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또한 단순히 많은 사람에게 주는 것만 추구하면 그 문제가 발생한 원인이 아닌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에만 집중하게 된다. 즉, 문제 원인은 제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 난 곳에 후시딘만 바르는 꼴이 된다.


그런 점에서 박애 자본주의로 행해지는 활동, 예를 들어 싼 값에 말라리아 약을 공급하거나 백신을 공급하는 일은 진정한 의미의 박애가 아니라, 오히려 꼭 필요한 시장을 확보하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싼 값으로 약을 공급한 덕분에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자의적인 칭찬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진정한 박애를 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을 확보해 이득을 취하는 전형적인 자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한 것이다.


오히려 문제의 원인은 기업 자신에게 있다. 자신의 문제를 바꾸지 않으면서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하는 건 자위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인 박애는 시민사회나 비영리 진영에서 행하고 있다. 영리가 비영리의 활동을 지원할 수는 있을지라도, 영리가 비영리가 하던 일을 더 잘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책을 읽으면서 기업이 자신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이라는 말에 크게 동의했다. 나 역시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많은 문제의 원인은 기업에 있다. 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반드시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것이다. 멀고 험난한 일이겠지만, 사회가 변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될 일인 것 같다.


밑줄

- 박애 운동에 새로운 접근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권유 속에는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오래된 질문들'을 사기와 아첨 속에 파묻어버리는 위험한 시도가 도사리고 있다. 중요한 질문이란 바로 근본적인 사회변화 사회변혁의 문제, 민주주의 대 금권주의 문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이 아닌 대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협력하는 사람들의 자발성 문제다.(p.9)


- 박애 사업과 기업적인 사고를 접목하는 현상을 내가 '사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간략하게 말하면 이렇다. 기업적인 사고는 사회를 변혁하는 데 필요한 더 깊은 변화를 외면하게 만들고, 의사결정을 적절하지 않은 손익계산서의 문제로 축소하며, 기업적 사고를 박애 사업과 시민사회로 확장할 때 소요되는 비용과 교환 조건을 무시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p.10)


- 기업이 사회변혁을 위해 보탬이 되고 싶다면, 부를 창출하는 '제대로 작동하는 시장경제'를 배제하지 않으며(물론 우리가 추구하는 시장경제는 전체 인구에 골고루 부를 분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술혁신을 촉진해야 한다. 기업이 이런 질서 속에 터를 잡고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면 사회에 상당히 긍정적인 충격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은 일자리와 소득의 양과 질을 개선하고, 좋은 기업 시민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세금을 내고, 규제를 준수하며, 독점하지 않고, 정치권에 로비하지 않아야 한다.(p.11)


- 기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유용한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 점은 우리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위험하며, 오만함의 극치다.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일은 민주적인 지휘자가 이끄는 다양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할 수 있는 일이지, 단조로운 운율을 끊임없이 연주하는 관악기 연주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업적 사고는 자신들이 사회 영역에 미치는 혜택을 과장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시민사회의 핵심적인 과업에 대한 변화 요구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도록 만들며 시민사회와 정부의 변화 가능성을 희석시킨다.(p.13)


- 기업이 최고라는 철학은 여전히 강력하게 우리를 유혹한다. 이 철학은 사회변화의 혼란을 제거하는 새로운 마법의 탄환이면서, 세상의 진보를 위해 감수해야 했던 희생을 하지 않아도 자신과 남에게 이로운 새로운 길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한다. 매력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위험한 신기루이기도 하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더욱 협력하는 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소비를 통해 지구의 희소 자원을 보존할 수 있을까? 경제성장을 통해 뿌리 깊은 가난과 억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전쟁을 통해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 수 있을까?(p.14)


- 새로운 대출을 제공하고, 씨앗이나 학교, 의약품을 만들어서 나눠주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달리트나 불리는 불가촉천민이 땅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인도의 계급제도와 싸울 약은 없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HIV를 퇴치하는 데 필요한 공중보건 시스템을 정착시킬 기술도 없으며, 폭력과 불안을 조장하는 종교 간, 사회집단 간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재편하는 시장도 없다. 이는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박애 자본주의가 말라리아를 퇴치하는 백신을 생산하는 데는 뛰어날지 모르지만 우리를 수렁에 빠뜨리는 탐욕과 공포, 가난, 불평등, 부패, 형편없는 정치, 개인 소외 같은 것을 퇴치하는 백신은 만들지 못한다.(p.32)


- 역사가 증명하듯이 아무리 경제성장이 지속되어도 불평등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깊게 뿌리내린 탐욕과 부패, 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 혐오, 갈등은 소득이나 자산이 늘어난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p.35)


- 박애 자본주의가 사회변화의 문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들지 않는 한, 기존의 권력과 불평등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복제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크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대출, 의약품, 도구, 교육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p.35)


- 전 세계적 가난과 불평등, 폭력은 분명히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분배해야 하고, 전 지구적 진보의 열매를 동등하게 맛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체제와 구조, 가치, 관계도 바꿔야 한다. 길게 보면 이와 같은 변화의 결과는 더 나은 상품과 서비스를 빈곤층에 제공함으로써 얻는 결과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하지만 박애 자본가 중에서 자신들에게 큰 혜택을 제공한 시스템을 변혁하는데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다.(p.35~36)


- 사회문제의 몇몇 증상을 좀 더 효과적으로 완화하지만 부조리한 사회 구조는 고스란히 유지하는 접근 방식과, 사회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을 직접 공격하고 그런 문제를 만들어내는 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노력하는 접근 방식이 있다. 어떤 접근 방식을 선택하겠는가?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큰 접근 방식은 후자다. 물론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많은 우회로가 존재하지만 말이다.(p.40~41)


- 시민권 운동은 데이터로 측정할 수 없고, 경쟁을 통해 운영되지도 않으며, 매출을 높여주지도 않고, 매일 혜택을 받는 사람의 수를 측정해 영향력을 가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민권 운동은 세상을 완전히 바꿨다. 진정한 사회변화는 이처럼 대대적인 민주화운동이 심화될 때, 또 불리한 대우를 받던 집단이 정치와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힘을 얻을 때 일어난다.(p.42)


- 사회운동가를 사회적 기업가로 대체하면, 집단행동을 자산을 축적하는 행동으로 대체하면, 정치를 기술로 대체하면, 상호성을 개인주의로 대체하면, 협력을 경쟁으로 대체하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선택이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회변화를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분명히 적절하지 않다. 기업적 사고와 사회변혁은 전적으로 다른 논리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p.43)


- 시민사회와 시장은 같은 질문에 다른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으로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박애 자본가들의 관심사일 뿐 시민사회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시장을 기반으로 한 해법을 내놓더라도 그 영향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p.43)


- 혁명적인 사상이라면, 가난과 박해처럼 뿌리 깊은 역학 관계를 바꿀 만한 파괴력이 있는지 검증해보는 시험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p.43)


- 박애 자본가들은 기업들이 사회적 환경적 목표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 시장의 힘을 통해 자신들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증대함으로써, 평범한 비영리 프로젝트나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결코 따라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애 자본가들은 한편으로 비영리 단체들 역시 시장을 활용하고 기업적 사고를 적용함으로써, 그들의 일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충분한 수입을 확보하고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가지 아이디어는 다양한 비율로 배합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한 복잡한 양상을 포착하기 위한 새로운 단어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사회적 기업, 혼합 가치, 벤처 박애 사업, CSR, TBL, 사회적 투자, 사회혁신"과 같은 말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p.48)


- 너무나 많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는 것이 한 발짝 나가는 대신 두 발짝 뒤로 물러서기 위한 수단, 한쪽 손으로 베풀면서 다른 손으로는 갈취하는 수단을 사용되고 있다. 어쨌든 기업이 세상을 구하고 싶다면, 운영 과정에서 그것을 실천할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좋은 기업시민으로서 세금을 충실히 납부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이용하고 해를 입히는 상품을 생산하지 말고,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고, 노동자들에게 다양한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지 말고, 공익을 위해 시장에 적용되는 규제를 준수하고, 독점이나 시장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그만두면 된다. 이로써 다른 기업들과 함께 번영할 수 있으며, 부를 널리 공유할 수 있다.(p.71)


- 정부가 시민들을 더 책임 있게 통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세금을 적게 내려고 애쓰는 이들의 행위는, 기업들이 저지르는 가장 나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핵심 문제에는 눈감으면서 박애 자본주의를 외쳐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겉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적용하지 않는 기업들의 일관성 없는 태도는, 사회변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의 영향력을 크게 줄일 것이다.(p.73)


- 인도에서 에이즈를 관리하기 위해 게이츠 재단이 2억 5,800만 달러를 쏟아부어(게이츠 재단이 주장하는 금액이다) 실행한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목표도 전혀 성취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접근 방식으로 인해 인도 정부 산하 에이즈 관리국 NACO이 인수인계를 받지도 못했다. 이 사업을 추진한 경영진 15명 중 10명이 기업인 출신이었다. 매킨지 앤드 컴퍼니에서 온 CEO는 사회변화를 위한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소비자'처럼 인식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세일즈' 하듯이 접근했다. 성노동자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매음굴에 눈부신 밴을 타고 들어가는 바람에 사람들은 경찰이 출동한 줄 알고 겁을 먹고 도망갔다. 의사소통도 영어로 해서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 없었고, 이전에 자원봉사자들이 하던 일에 일당을 지급하는 바람에 돈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 일에 다시는 자원하지 않도록 만들어버렸다. 너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프로그램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질은 급격하게 저하되었다.(p.85)


- 기부자가 기업에서와 같이 성공의 지표로서 속도, 규모, 숫자에 집착하면 결핵과 말라리아가 더 저항력을 갖게 될 때 새로운 의약품은 무용지물이 된다. 녹색혁명은 오히려 농민들과 그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며, 학교에 학생들을 많이 모을수록 교사, 책상, 교재가 부실해진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넘기기 쉽다. 탄자니아의 교육자 라케쉬 라자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끔은 아이들을 학교에 무조건 구겨 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p.85)


- 사회적 기업이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추를 옮기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입되는 가치의 타락을 막아줄 마법의 공식은 없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와 에밀리아로마냐 두 지역에서 사회적 기업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사회적 기업 '핵심 권력'에는 약한 영향을 미치는 반면 '개인의 자율성'이라고 정의되는 '소비자 권익'에는 강한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사회적 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활동에 대한 기대와 거의 차이가 없다. 이처럼 시장을 기반으로 한 활동은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는 핵심 장벽을 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인 사람들의 '집단행동'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p.95)


- 사회적 임무와 시장 사이에서 유연하게 균형을 맞추며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는 만큼 많지 않다. 임무를 바꾸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 원래 추구하던 가치가 퇴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결국 사회변혁에 더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혹시라도 사회적 기업이 성공해 일정한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한다고 해도 그런 기업가들은 결국 전통적인 투자자들에게 인수되며, 그 순간 사회적 임무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벤 앤드 제리, 더 바디샵, 앤드 워 모두 2005년 인수 합병되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사회 프로그램을 몽땅 폐기했다.(p.96)


- 기업들은 빈곤층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으로 '상품'을 팔아도 수익을 낼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할 것이다. 그런 상품들은 환경이나 건강처럼 인류에 보편적인 '상품'이기 때문이다. 시장은 수요가 존재하는 한 마법을 발휘할 수 있으며, 더욱이 생명을 구하는 백신이나 의약품, 지구 온난화에 맞서는 제품이라면 부적절한 수요가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p.99)


- 나 역시 비영리단체에서 수익을 높여야 하거나 사업 계획, 시장 테스트, 정확한 재정 예측이 필요할 때면 이런 기업들의 자료를 매우 유용하게 활용한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가운데 업무를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부분 팔 것도 거래할 것도 없으며, 시장과 무관하게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다양한 경로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 상황은 오히려 행운일 수 있다. 자신들의 사회적 임무를 훼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p.114)


- 물론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도, 누군가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활동에는 급여를 준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상업적 매출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박애 자본가들이 기부금, 보조금, 회원들의 후원금에 의지하는 것을 비영리단체의 취약성이라고 폄하하지만, 이는 지지자와 대중과 이들 단체를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며 오히려 조직이 가지는 힘의 원천이 된다. 그처럼 폭넓게 분산된 원천에서 운영비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순간 처할 수밖에 없는 난국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된다.(p.114)


- 언뜻 생각해봐도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평등과 정의를 확산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말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돈과 이기심에 뿌리를 둔 철학이 어떻게 사랑으로 운영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어쨌든 시장이란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목표와는 거의 무관한 효율성이라는 한정된 정의 아래서 상품과 서비스를 쉽게 거래하도록 설계된 공간이다.(p.123)


- 경쟁은 상황을 더 나쁘게 몰아간다. 경쟁은 비영리단체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의 핵심 분야를 효율화하도록 압박하고, 가장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는 회피하도록 하며, 도달하기 어려운 문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그리고 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경쟁이 얼마나 타당한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는 이와 비슷한 시장의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여성의 권리는 시민의 권리나 정치적 권리와 경쟁하는가? 에이즈 환자들을 후원하는 것은 공립학교 개혁과 경쟁하는가? 자원 소방대와 자원 응급구조대가 서로 경쟁하는가? 순록 보호운동과 사슴보호운동이 경쟁하는가? 노숙자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그룹과 가정폭력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그룹이 경쟁하는가? 부인회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주는 단체와 경쟁하는가? 만약 경쟁이 있다면, 누가 혜택을 보는가?(p.133)


- 시민사회의 모든 과정은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이는 기업이 포용하기에는 매우 어수선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실제로 저소득층과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는 벤처 박애 사업과 사회적 기업의 목록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대상으로 허가나 목적으로 하거나 주제로 삼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그들과 함께하거나 그들이 이끄는 회사는 없다. 상황이 이런 데도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다른 사람이 쓰게 해야 할까?(p.136)


- 사회변혁은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들과 덜 가진 사람들이 맺는 관계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함께 바뀌어야 일어난다.(p.136)


- 박애 자본가들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시장의 실패'와 '경제적 인센티브의 결여'에 있다고 보고, 이를 수정하면 문제는 해결된다고 본다. 반면에 시민사회는 사회문제에서 인종주의, 성 차별, 동성애 차별, 인권의 남용과 같은 불의가 횡행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공격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 거론하는 이런 단어들은 새로운 박애 자본주의 재단의 전략적 계획에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단어 사용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들이 자신들의 로비에 대해서는 눈감으면서, 시민권이나 여성권 투쟁 같은 과거의 성공에 중심에 있던 저항과 치열한 집단행동은 혐오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p.140)


-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말하듯이 시민그룹에게 돈은 투입하는데 의미가 있을 뿐, '위대함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또한 시민행동에 대한 투자 대비 '사회적 수익률'을 수량화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엄밀하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박애 자본가들은 프로젝트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혜택, 예컨대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고용, 거주와 같은 요인만 측정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p.146)


- 시애틀의 소셜벤처파트너스 인터내셔널의 창립자 폴 슈메이커는 이렇게 말한다. "비영리 부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수익을 좇는 시장이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손대지 않는 사회적 문제에 돈이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비영리 부문은 그런 방식의 '효율성에 맞춰' 설계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두 부문을 같은 효율성 공식에 끼워 맞추지 않습니다."(p.146)


- 박애 자본가들은 소위 '사회적 자본시장'에 효율성과 영향력이라는 공통적인 공식에 따라 투자를 배분하면, 비영리단체들이 서로 자원을 얻기 위해 경쟁하고 효율적인 조직과 비효율적인 조직이 차별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이 어디에 기부할지 결정할 때, 예컨대 런던의 가이드스타 인터내셔널과 뉴 필랜스로피 캐피털 같은 사이트에 저장되고 축적된 데이터를 반드시 참고하라고 강조한다. 물론 이런 웹사이트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분야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할 수 있다. 문제는 표준화된 공식을 이용해 다양한 조직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면, 이는 다른 조직의 희생을 대가로 몇몇 조직에 자원을 몰아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p.148)


- 물론 작은 승리도 승리다. HIV/에이즈 백신은 실제로 매우 큰 승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가 직면한 문제의 규모와 복잡성에 비하면, 시민사회와 정부의 기여에 비하면, 기업이 남의 문제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때 이룰 성과에 비하면, 박애 자본주의는 사소한 변화에 불과하다.(p.163)


- 기업은 남을 고치려고 노력하기보다 먼저 기업 내부의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변하는 것이 사회에 훨씬 더 기여하는 길이다. 이것은 기업과 시장이 사회변화와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제도에서나 마찬가지로 기업이 할 수 있는 기여는 사회문제 전반이 아니라 일부분을 차지하는 문제와 활동의 하위 집합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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