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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현민 Sep 16. 2021

나이 서른에, 첫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1)

나는 내 자신을 낭떠러지 끝으로 몰았다.

2021년 9월 16일 내 나이 서른, 지금 직장이 내 첫 사회생활이다. (사실 29살 4월에 일을 시작했다.)


나이 서른에, 첫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기나긴 내 삶의 여정을 설명해야 한다. 나이 서른에 첫 직장을 다닌다고 하면 보통 대기업을 위한 취업 준비, 국가고시 등과 같은 긴 시간이 필요한 시험, 학자가 되기 위한 대학원 진학 등 준비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난 아니다. 비록 대학원 진학에 공부를 마치긴 했지만, 전공을 살리지도 않았을뿐더러 전공을 살리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도 아니었다. 단지 남들 다 하니까 나도 해보고 싶었을 뿐, 혹은 남들보단 조금이라도 차별화된 경험을 갖기 위해서? 결론적으론 내 삶의 큰 변화를 가지진 못 했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학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의기소침해지진 않는다. +장기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무튼, 뭐 하느라 이렇게 사회생활이 늦었냐하면 바로 운동 때문이다. 나는 프로 복싱 선수였다. 남들이 생각하는 전업으로 먹고살기 위해 하는 복싱 선수가 아니라, 그냥 단지 내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취미긴 한데 인생에서의 비중을 많이 둔 취미로써의 복싱 선수. 복싱 선수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꽉꽉 채워졌다. 미래에 얘기가 나올 때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으며 별로 욕심도, 관심도 없다곤 말했었다. 내 머릿속엔 오직 복싱 선수로서 받는 관심, 그리고 한 번씩 있는 시합에서의 승리하는 것 딱 그 두 가지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면서 흘러가는 내 시간의 속도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 내가 어리긴 어렸었나 보다. 내 첫 사회생활의 시작은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다 시작하게 되었고, 하면서 현실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만일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그 좁은 곳에서 나름 소소한 만족을 갖고 살고 있었겠지.


운동을 그만두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내 스스로 약속했던 것은 절대적인 시간 2년을 무조건 버티자였다. 적은 급여, 좋지 않은 근무 환경 등과 같은 소소한 문제는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불합리한 일과 같은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따위가 있어도 일단 무조건 버티고 보자였다.(각오가 그랬다는 거지 급여나 근무환경 등 전혀 낮거나 나쁘지 않다.) 이것저것 따지고, 일을 가려 하다 보면 계속해서 가려 하게 될 것 같았고, 내가 아는 내가 살아온 삶은 내가 무언가를 가려가면서 할만한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내세웠던 무기는 근면성실이었다. 누구는 무식함이라고도 하고 나는 오기와 근성 그리고 악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 자신을 낭떠러지 끝으로 몰았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사실, 이거 아니어도 다른 길이 있긴 했다. 근데 그렇게 따지면 어느 한곳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매번 핑계 대며 이리저리 옮겨대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싶진 않았다. 삼촌이 말씀하셨다. 생존에 있어선 간절함이 제일 큰 동기라고. 실력을 이기는 것이 간절함이라고 그러셨다. 내 스스로 간절함을 만들려면, 내 스스로 낭떠러지 끝으로 몰았어야만 했다. 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정말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그게 최면이자 어떻게 보면 사실이기도 했다.


운동하면서도 느꼈던 것이 있다. '스타는 낭떠러지 끝에서 탄생한다.' 플랜B, 플랜C가 있다면 극한의 상황에서 방향키를 돌릴 것이다. 바로 코앞에 성공이 있었을 수도 모르는 그 순간에 말이다. 진짜 스타가 되려면, 진짜 성공을 하려면 그 어떤 핑계도 필요 없다. 그 어떤 상황도 감내하며 해결 방법을 찾아 해결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모두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스타가 될 자격이 주어질 뿐이다. 이 자격을 받은 사람들끼리에서도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이 경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은 고꾸라진다. 그리곤 그들은 자신이 스타가 되지 못했던 이유를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만들어낸다.


신입사원은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다. 분명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지속성이 있어야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지 반짝하는 것은 말 그대로 반짝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빛나려면 '계속' 빛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일단 빛나는 것은 제쳐두고 지속성에 초점을 맞췄다. 사람도 사계절을 봐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고 한다. 사회생활도 그렇지 않을까. 이번에 들어온 신입사원의 능력이 좋든 안 좋든, 그와 내가 함께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을 해볼만한 시기는 2년은 지난 시점이 아닐까. 2년 정도면 그래도 다양한 일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을 다 겪고 이겨내고 각 상황에 맞는 방법들을 고안해낸 사람들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초년생의 가장 큰 스펙은 어딘가에서 2년을 버텨내는 것이다.


현재 1년하고도 6개월을 바라보고 있다. 어쨌든 나 역시도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결국엔 잘 버텼고, 버틸 것이다. 이 바닥에서 나의 능력치는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칭찬해 주고 싶은 것은 나의 능력치가 아니라 나의 무식함으로 표현될 수 있는 오기와 근성이자 악, 그리고 근면성실이다. 나에겐 그것이 제일 자부심이 있다. 내가 원하는 첫 스펙에 가까워지고 있다.


누구는 말한다. "야 너 대학까지 나와서 왜 그런 곳에서 일해." 또는 "야 너 챔피언 아니냐 왜 그 길로 안 가고 다른 일해?" -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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