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락 과목이 없어야 한다. 적당한 양이 고르게 투입되어야만 한다.
나는 프로복싱 아시아 챔피언이다. 체육관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아시아 챔피언이 되기까지 약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중간중간에 부상 때문에 운동을 쉰 적도, 아예 그만둔 적도 있지만 모든 기간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 포함되기 때문에 하나의 기간으로 묶었다. 10년 동안 온전히 내 시간과 마음을 쏟은 건 아니지만, 발 한 쪽을 복싱이란 세계에 걸친 채 살아왔다. 결과적으론 챔피언이 되어, 미련 없이 링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10년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내가 어떻게 챔피언이 될 수 있었을까. 더 나아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챔피언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성실함? 절제력? 타고난 재능? 이 모든 걸 딱 세 가지로 압축하려 한다. 노력, 재능, 운. 이 삼박자의 조합. 조건은 세 가지지만, 그 세 가지가 수레바퀴 굴러가듯 정확한 타이밍에 균등하게 굴러가야 한다. 무엇 하나만 특출나게 뛰어난다고 해도, 결국은 균형이 안 맞아서 앞으로 나아가긴커녕 한 쪽으로 기울어 쓰러지고 만다.
첫 번째, 노력. 모든 성공에 이 요소를 빼고 말할 수 있을까? 김밥으로 치면 밥이고, 샌드위치로 치면 빵이다. 성공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노력을 바탕으로 그 위에 어떤 재료들을 올리느냐에 따라 성공의 종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노력한다고 다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챔피언이 된 사람들은 다 노력을 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반드시 투입되어야 할 요소다. 참으로 안타까운 건, 노력만으론 안 된다는 것이다. 밥과 빵처럼 다음 재료를 올릴 기본 단계일 뿐이다. 당신이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젠 재능과 운으로 싸워볼 만한 자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재능. 복싱은 재능의 비중이 꽤 크다. 예체능을 보면 모든 분야가 거의 재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능의 비중이 매우 크다. 복싱도 같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듯이, 복싱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이 플러스라면, 잘하는 것은 제곱근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백날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재능이 없다는 것은 곧 방법의 핵심을 모른 다는 것이다. 이런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점프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방법은 따로 있다. 사고의 전환, 기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을 빨리 깨우치는 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방법에 대한 눈썰미가 있는 것이 곧 재능이다. 노력을 바탕으로 이 눈썰미까지 가졌다면, 이제 당신은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사람이다. 진인사대천명.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남은 건 하늘의 뜻, 운이다.
마지막, 운. 당신은 재능도 있고, 노력까지 한다. 그럼 무조건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아니다. 타이밍도 맞아떨어져야 한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부상을 입을 수도, 혹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자신의 성공을 방해하는 요소가 왜 하필 이 중요한 순간에만 나타나는가. 운이라고 해서 운이 좋아서 특별한 상황이 연출되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자기의 노력과 재능을 뽐낼 수 있게 아무 일 없는 것도 운이다. 많은 노력과 좋은 실력을 갖춘 선수들도 부상 혹은 컨디션 난조로 좋지 않은 결과의 쓴맛을 본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한테 말한다. 항상 부상 조심하라고. 시합 전엔 컨디션 관리에 모든 걸 쏟아부으라고. 부상 없이 좋은 컨디션으로 링 위에 올라간다는 것만 해도 이미 50% 이상은 좋은 조건이다.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이 당연한 게 자주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중요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 세 가지가 팀을 이루듯 같은 박자에 같은 리듬으로 굴러가야 한다. 노력을 많이 한다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운이 좋다고 챔피언이 되는 게 아니다. 셋 중에 하나 혹은 두 개만 특출날 필요도 없다. 시험으로 치면 과락이 없어야 한다. 80점까지도 아니다. 평균 60점만 넣으면 되지만, 40점 이하의 요소가 없어야 한다. 적당한 양이 고르게 투입되어야만 챔피언이라는 결과가 산출된다.
이론적으론 그렇고,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떤 조건을 얼마나 맞추었을까. 나를 예시로 들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얘기하려 한다. -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