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의 역사
웹소설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등장한 소설의 변화된 유통 형태로 웹 공간 안에서 생산, 소비, 유통되는 소설을 총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웹소설은 소설의 내용적 특성과는 상관없이 매체의 특성과 유통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데요. 따라서 웹소설은 장르문학의 동의어가 아니며 순수문학의 대척점에 있는 무엇인가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웹소설과 장르문학이 같은 개념으로 다뤄지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웹소설 대부분이 장르소설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18년에 발표한 <웹소설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웹소설 대부분은 장르소설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장르소설이 주를 이루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웹소설의 발전과정에 대해 알아보려면 우선 한국 사회에서 장르문학과 순문학이 갈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웹소설의 주류가 장르문학이 된 이유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특이하게도 순수문학(순문학) 위주로 문학 시장이 성장하였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순수문학이란 통속문학 · 대중문학에 대해서, 불순한 동기를 갖지 않고 보다 순수한 예술적 감흥(感興)을 추구하는 문학을 구별해서 가리키는데요. 즉 이 범주에 속하지 않는 모든 문학의 형태는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어 왔습니다.
해외의 경우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그리 강하지 않은 반면, 국내의 경우 주류인 순수문학에 속하지 않은, 무언가 부정적이고 통속적인 의미의 문학으로 저평가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왜 순수문학이 주류로 성장하였을까요. 이는 한국의 굴곡진 근현대사와 관련이 깊습니다. 길고도 어두웠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찾아온 이념의 시대는 민족을 남과 분으로 분리시켰고, 6·25전쟁이라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픔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죠. 전쟁 이후 반공이 사회의 주요 가치로 다뤄지면서 오랜 군사 독재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침묵을 강요받았고,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서부터 민주화가 이뤄졌던 1990년대 초반까지의 공통점을 뽑자면 바로 억압의 시대였다는 점입니다. 자연스레 정치적으로 억압된 민중과 문단은 자유를 갈망했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꿈꿔왔고, 군사독재의 시대에는 민주화를 꿈꾸었습니다. 이에 따라 시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장 인물. 그리고 자유와 민주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문단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이렇듯 역동적으로 변화하던 근현대 한국 사회에서 사회참여나 이념에 대한 고민 없이 환상적이고 현실과는 유리된듯한 내용과 소재를 다루는 장르문학은 단지 철이 없고 현실 도피적인 장난으로만 여겨졌습니다.
장르문화가 주류문학의 철저한 외면 속에 내부적으로 성장할 동력을 얻지 못하는 사이. 일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개인 컴퓨터의 보급이죠. 새로운 기기의 등장은 이를 살 수 있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했습니다. 각종 컴퓨터 부품과 디지털 기기를 판매하는 용산과 세운상가의 등장은 시대적으로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당시 용산과 세운상가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1998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자국 문화의 보호와 국민감정에 반한다는 이유로 일본의 대중문화를 법으로 규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용산과 세운상가에서는 일본의 문화가 디지털 게임과 테이프, CD 등에 담겨 비밀리에 거래됐습니다.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발전된 일본의 서브컬쳐 문화는 가히 문화 충격이라 할 만했습니다. 일본의 문화에 빠르게 심취한 얼리어답터들은 국가의 눈을 피해 일본의 콘텐츠를 은밀하게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장르문학이라는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천리안, 하이텔과 같은 PC통신의 보급은 일대 혁명의 단초였습니다. 위치와 상관없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공론장이 생기자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의 서브컬쳐를 향유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졌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자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교류를 넓혔습니다.
이는 기존의 순수문학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재미를 선사하는 장르문학에 대한 관심과 인기로 이어졌습니다. 마치 트위터나 페이스북 초창기에 얼리어답터들이 새로운 문화 충격에 빠져 하나의 놀이처럼 여겼던 것과 같죠. 주류의 공식에서 벗어나 비주류들만의 독자적인 규범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PC통신은 소수 얼리어답터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대중적인 인기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습니다.
1997년 12월 3일에 발생한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은 장르문학에 있어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 만합니다. 경제 위기로 장르문학이 넘어지기는커녕 훨씬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장르문학 시장은 너무나 마이너한 영역이었습니다. 작가나 독자 모두 적었기에 무너지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죠. 오히려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환위기 당시 인기 있던 업종이 바로 비디오와 도서를 함께 보유한 종합 대여점이었습니다. 소자본으로도 개업이 가능했고,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의지는 높았으나 구제금융 상황으로 인해 경제 여건이 넉넉지 않은 이들에게는 풍족한 콘텐츠를 제공했으며, 직장에서 해고되어 갈 길이 없었던 이들이 하나둘 대여점을 개설하면서 종합 대여점이 전국에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퇴마록>과 <드래곤 라자>로 대표되는 한국형 판타지가 나오기 시작하였던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여러 한국형 무협과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 인기리에 출판되었고 새로운 독자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뿐 아니었죠. 당시 외환위기로 고통받던 10대와 20대에게 장르문학은 힘든 현실의 도피처이자 새로운 희망을 선사하는 안식처였습니다. 이처럼 당시 대여점의 주 구독자들이었던 10대와 20대들이 이제는 자본력을 갖춘 30대와 40대로 성장하면서 장르문학은 단순히 서브컬쳐가 아닌 자신들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문화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한편, 순수문학은 점점 더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었습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문학에 대한 진정성과 가치, 이념 등에 집착하면서 눈높이가 달라진 대중과는 갈수록 거리가 벌어졌죠.
2001년 <그놈은 멋있었다>를 시작으로 2002년 <늑대의 유혹>, 2003년 <도레미파솔라시도> 등 귀여니 소설의 등장은 인터넷 소설의 폭발적인 가능성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모티콘이 섞인 가벼운 문체. 그리고 평범한 소녀가 우연히 멋진 남성을 만나 사귀게 된다는 설정은 10대 소녀들에게 커다란 대리만족과 공감대를 선사하며 폭넓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가벼운 문체와 비슷한 내용의 반복으로 문학계의 평가는 높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잘 쓰이지 않았던 채팅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10대와 20대 여성의 공감을 형성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받아야 마땅하죠.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것은 물론 영화화까지 이어졌다는 점 역시 IP 확장의 한 사례로 인터넷 소설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 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웹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웹소설을 보는 주요 매체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폰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은 크기가 작으면서도 성능이 뛰어나죠. 이동하면서도 작은 화면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출퇴근하는 짧은 시간동안 작은 모바일 화면에서 보기 편하게 1편당 5,000자 내외의 단순하고, 사이다 전개 위주의 형식이 자리잡게 됩니다.
실제로 웹소설 전문사이트인 조아라와 문피아의 수익이 가파르게 상승한 시기를 살펴보면 스마트폰 보급률 상승과 겹치는데요. 한국 갤럽에 따르면 한국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은 2012년 62%, 2013년 73%, 2014년 80%, 2015년 84%, 2016년 89%로 상승하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93%로 4년째 답보 중인 상태입니다. 한국콘텐츠 진흥원이 밝힌 한국 웹소설 시장 규모 추이 역시 2013년 100억, 2014년 200억, 2015년 500억, 2016년 1,000억, 2017년 2,700억, 2018년 4,000억(추산)으로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귀여니의 등장으로 인터넷 소설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른 작가의 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인터넷 소설이 무료시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귀여니 역시 웹상에서의 구매가 아닌 오프라인 형태의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즉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출판해야지만 돈이 들어오는 구조였습니다. 거대 플랫폼의 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 그리고 조아라, 고무림, 로망띠끄 등 다양한 전문 사이트까지 수십만의 조회수를 이끈 작품들이 나타났지만, 유료 모델은 오직 오프라인 출간뿐이었습니다.
이런 시장에서 웹소설 연재 사이트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조아라와 문피아가 유료화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조아라가 먼저였습니다. 2008년 무료 성인 소설 연재 카테고리였던 ‘노블레스’에 정액제를 도입하여 유료화를 시도했고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어서 문피아가 2013년 ‘편당 결재’를 도입하면서 시장이 안정화되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문피아로 몰렸고, 시장이 성장하면서 웹소설을 읽는 사람도, 그리고 쓰겠다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유료화가 시장을 키웠습니다.
비로소 웹소설이. 수면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문헌>
한혜원, 정은혜, “한국 웹 기반 여성소설에 나타난 서사적 특성 연구”, 『한국문예창작학회』, 2015년
이융희, “디지털 매체 기반 장르문학 연구의 가능성”, 『한국언어문화학회』, 2020년
<참고기사>
이대희, "게임, 21세기 로큰롤인가 오타쿠 전유물인가", 프레시안, 2010.10.27
김용운, "스마트폰 몰입도 UP…'웹소설' 웹툰보다 더 재밌다", 이데일리, 2016.02.29
남혜현, "‘100원 웹소설’ 만든 문피아 김환철 “욕 많이 먹었다”", 바이라인네트워크, 2019.05.28
유승원, "‘장르문학,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텍스트릿 이융희 작가 영호남문학청년학교에서 강연 진행해", 뉴스페이퍼, 2019.12.02
김덕호, "[용산은 지금]①발길끊긴 전자상가...'용팔이'도 '호갱'도 떠났다, 이코노믹리뷰, 2020.07.25
이현지, "웹소설, 어쩌면 당신을 위한 이야기", 대학신문, 202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