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영화 리뷰 포스팅을 했던게 작년 12월 31일이더군요....
최대한 한 달에 한 번씩은 포스팅을 해야겠다 다짐했건만... 어느덧 새해 첫 분기가 소멸 되어 가고 있는 삼일절날 드디어 다시 글을 올립니다.
사실 다음 글은 어느 영화를 가지고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얘기해야겠다!라고 나름 구상까지 해놓은지는 오래입니다만 변명을 하자면 개인 신변에도 변화가 찾아온 1분기었기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 처음 블로그 시작할 당시 절대 숙제처럼 임하지 말자, 30분 이상 쓰지 말자라고 다짐했지만 막상 시작을 하고 나니 그래도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겨 쉽사리 훌훌 써내려 가는 것이 아직은 무리인 듯 합니다.
실제로 최근 몇 개 포스팅 모두 (스카치 위스키 지도 건 제외) 대략 최소 한시간 씩은 소요 되었던 것 같네요.
어쨌거나...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 다루고자 하는 영화는 <Nomadland>입니다.
2020년 작품으로 2021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까지 굵직한 상은 모두 싹쓸이 해버린 대단한 작품이죠.
2021년도 아카데미 시상식. 가운데 감독 Chole Zhao 부터 좌측 Frances Macdormund 배우님 외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찍은 기념샷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 수 있었을까 궁금해 하다가 뒤늦게, 정확히는 올해 초에서야 이 작품을 드디어 보게 되었습니다.
납득이 되더군요.
제시카 브루더라는 미국의 기자가 집필한 동명의 논픽션 책을 영화한 작품이고 큰 틀에서 보면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여파로부터 살아 남아 생존하고 있는 이들을 조명함으로서 미국의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함께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영화의 줄거리를 보자면 미국 네바다 주 엠파이어라는 도시에 대형 석고 제조 회사가 있었으나 망하게 되고, 이에 대한 여파로 엠파이어 도시 마저 사실상 유령도시가 됩니다. 지역을 먹여 살리던 기업이 증발해 버리니 지역도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죠. 2011년 7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종의 지역 번호, 또는 우편번호와 같은 지역의 고유번호 개념인 zip code가 엠파이에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곳, 엠파이어에 남편과 거주하던 펀(Fern)이라는 60대 여성 또한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로 이 지역을 떠나 중고 밴 하나를 몰고 미국 방방곡곡 떠돌아 다니게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Fern의 여정을 쫓으며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여기서 잠시 언어학적인 이야기를 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집.
영어로 집을 칭하는 단어는 여러가지가 있죠. 그거야 한국어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영어의 경우 단어에 따라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차이가 좀 더 뚜렸한 듯 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흔히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집 하면 house(하우스)로 먼저 배우죠.
제 생각에 이 house라는 단어는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가장 가깝습니다. 다소 객관적이고 dry 한 느낌이죠.
그 다음으로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는 집을 지칭하는 단어는 바로 home(홈)입니다.
Home은 house 보다는 확실히 좀 더 따뜻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단순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더해 가정, 고향, 더 멀리 나아가서는 근간 혹은 뿌리로까지 해석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집을 지칭하는 영단어는 바로 property(프라퍼티)입니다.
직역하면 자산 혹은 재산이죠. 즉, 집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재산에 해당 되지만 가장 사용되는 의미 중 하나는 부동산 차원에서의 집입니다.
미드나 영화를 보실 때 "get off my property" 즉, 내 집에서 썩 꺼져!라는 의미로 쓰이는 이 대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듯이 말이죠.
따라서 property는 앞선 두 단어 보다 물질에 가깝고 지켜야 하는 무언가라는 뉘앙스가 더 셉니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집을 지칭하는 영단어들과 그 의미를 논한 것은 이 주제 자체가 바로 <Nomadland> 영화의 핵심 테마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과연 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고, 영화 결말에서 감독 나름의 견해를 내비치고 막을 내립니다.
주인공 Fern에게 본인의 밴은 앞서 언급한 집의 의미 모두에 해당하겠죠.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자산이자, 나름의 가정이고 안식처입니다.
마트에서 만난 지인의 딸이 "아줌마 homeless에요?"라고 물으니 자신은 절대 homeless가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던 대목에서도 Fern이 본인의 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영화 후반부 밴이 고장나게 되어 카센터에 방문을 하는 장면에서 차라리 팔고 다른 차를 구매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직원의 제안에 Fern은 절대 그럴 수 없다면 손사래 치죠.
물론 금전적으로 넉넉하지 못 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어쨌거나 이 밴은 Fern의 애착이 묻어나는 '집'이기 때문에 쉽사리 팔아 넘길 수가 없었던 것이죠.
미국 전역을 횡단하며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는 (주로 장년층의) 동료들과의 추억이 깃든 공간인 셈인거죠.
그 와중에 제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Fern과 친구들이 RV / 캠핑카 쇼에 우연히 들르게 되어 호화 캠핑카를 시승하며 행복해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각자 본인들의 밴이 너무나도 소중하면서도 집과 마찬가지로 역시 업그레이드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긴 자산인 것이죠.
그렇기에 가질 수 없는 (적어도 당장은) 차를 보며 감탄하고 신나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 생활을 하는 영화 내 등장인물 그 누구도 이런 초호화 밴을 가진 사람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경제불황의 여파로 남은 재산을 긁어 모아 겨우겨우 마련한 밴이지만 그 마저도 등급이 사실은 낮다는 슬픈 아이러니...
영화의 주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Fern이 밴 수리비도 얻을 겸 오랜만에 언니 집을 방문해 있을 때 나옵니다.
부동산 중개인인 형부와 그의 또다른 중개인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중개인 동료들은 2008년도에 부동산 투자를 더 해놓을 걸 그랬다며 후회를 하죠.
부동산은 결국 오르게 되어 있다는 멘트와 함께....
2008 ~ 2009년은 마침 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터진 시기이기도 하죠.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폭제 중 하나의 역할을 했던 이 사건은 등한시 된채 중개인들은 그저 부동산 투자를 더 해놨어야 한다며, 집을 지극히 property로 접근하며 대화를 나누죠.
이 대화를 듣던 Fern은 발끈하며 본인은 도대체 왜 이렇게 온 세상이 그동안 모은 재산을 다 털어서 거기에다 대출까지 받아가며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며 형부와 그의 동료들에게 돌려까기를 시전하죠.
꼭... 미국의 얘기만은 아닌 듯한 대사죠...? 모든 재산을 끌어모아 거기에 대출까지 더해 부동산을 어떻게든 사야만 한다고 부추기는 세상....
저희가 살고 있는 세상 아닌가요?
이후 Fern은 언니로부터 결국 밴 수리비를 얻게 되고, 이곳 저곳 떠돌다 썸남에 집에도 잠시 정착할 뻔 하고,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본인의 진짜 home으로 돌아갑니다.
Empire, Nevada.
본인의 남편의 흔적과 그와의 추억이 잔뜩 깃들어 있는 곳.
경제적인 상황 외에도 어쩌면 Fern은 남편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home을 견디다 못 해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선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원래의 본인의 '가정'을 어루만지고 마지막으로 눈과 가슴속에 담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Fern의 뒷모습을 비추며.
집, home에 대한 생각을 마지막까지도 참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배우의 연기는 물론 더할나위 없이 영화에 깊이를 더하죠.
다른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맥도먼드 배우의 연기는 처절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내뿜는 듯 하여 어떤 면에서는 독보적이고 그래서 더 훌륭한 듯 하고, 그 포텐이 Nomadland에서 터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게 되었겠지요.
경제적인 대혼돈 속 진정한 집의 부재 속에 처절하게, 그리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완벽하게 연기한 맥도먼드 배우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냅니다.
어떤 면에서는 많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할테니까요.
Property를 쫓다 home의 의미와 가치는 퇴색 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을 하게 만드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럼,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포스팅 하겠습니다.
Till next time...
대한독립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