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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corn and Whisky May 13. 2024

The Phantom of the Open

Perils of Life & Golf

[예전에 타 플랫폼에 이미 게시했던 글이라 현 시점에 봤을 때 시기상 맥락이 살짝 어색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인물 모리스 플릿크로프트를 정말 실감 나게 잘 연기한 마크 라이런스 경

골프만큼이나 기이한 스포츠는 드물죠.
진입장벽이 워낙 높기도 하거니와 입문 전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저게 뭐가 저리 재밌다고 난리들일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그런 스포츠입니다.
하지만 입문하게 되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죠.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이 스포츠가 뭐길래 수백년간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요?

골프 탄생 이후 초창기 모습을 시각화 한 그림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공을 10개는 족히 넘는 여러 종류의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코딱지 만한 구멍에 누가 가장 적은 타수를 기록하며 넣느냐를 가리는 이 스포츠는 어쩌면 너무나도 단순한, 심지어 하찮아 보이는 규칙에도 불구 막상 해보면 미칠 듯이 어렵고 사람 바보 만들기 십상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외에도 이 스포츠가 가진 매력과 의미를 잘 나타내는 영화를 2023년도 마지막 포스팅 주제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원제 , 한글로는 <브리티시 오픈의 유령>으로 개봉한 2021년작이며 현재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The Phantom of the Open>, 오페라의 유령을 패러디한 익살스러운 제목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지되는 작품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며 모리스 플릿크로프트 (Maurice Flitcroft)라는 영국 아저씨의 골퍼로서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 전제는 이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도 크고 낙천적이며 희망찬 삶을 살아가고 있던 모리스 아저씨는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 후 슬하에 아들 셋을 두고 -어찌 보면 흔하고 평범한 영국 노동계급의 삶을 살아가던 중, 재직 중이던 shipyard (우리로 따지면 중공업소나 제철소 같은)에 대한 공영화가 추진되며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봉착하며 내일모레 나이 50이 되는 상황에서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나이 47세에 불어닥친 실직 위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낙담할 수도 있고 가장 쉽고 빠른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했겠죠. 하지만 우리 모리스 아저씨는 달랐습니다.

그러던 중 집에서 TV를 시청하다가 우연히 The Open (a.k.a. -브리티시 오픈) 1975년도 대회 최종라운드 중계를 보게 되죠.
운명에 이끌리 듯 우리의 모리스 아저씨는 결심합니다. 남은 여생 골프 선수가 되어 The Open에서 우승을 차지하겠노라고...
남다른 발상이죠.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서 밝혀지 듯 모리스는 정말 낙천적인 사람입니다.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성공하지 못할지언정 시도는 해보았으니 그 자체로도 값진 경험이다라고 굳게 믿는 캐릭터이고 이러한 신념을 본인뿐 아니라 아들들에게도 아낌없이 설파하고 꿈을 좇으라 독려하죠.

여기서 잠깐!
모리스 아저씨의 목표가 일반인이 보기에는 얼마나 무모한 꿈인지 그 context를 설명 드리자면 The Open / 브리티시 오픈은 메이저 골프 대회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고 코스의 난이도도 높아 정통성 측면에서도 널리 인정을 받는 대회이며 프로 골퍼들에게는 꿈의 무대와 같습니다.

골프계에서 정통성과 history에 있어서는 Top인 The Open

비교를 하자면 어느 날 40대 중후반 아저씨가 우연히 TV에서 축구 경기 중계를 보고는 "와 저거 재밌겠다! 나도 출전해서 내년 월드컵 우승해야지!"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때는 1970년대 중반. 아직 시스템과 서류가 전산화 되기 훨씬 이전입니다. 어찌보면 타고난 시대적 운도 따라 준거죠. 인프라가 이렇다 보니 모리스 아저씨는 어찌어찌 해서 얼떨결에 1976년도 The Open 대회에 출전 선수로 등록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고서는 약 1년여간 나름의 맹훈련을 거치죠. 책을 읽고, 시청각 교육 자료와 실습으로 이루어진 철저한 독학 시스템으로....

동네 해변가에서 연습을 하는 모리스 아저씨... 몇 년 전 어떤 아저씨가 부산 해변에서 골프 연습 하는 사진인가 영상이 올라와서 논란이 되었던 것 같은데...

나름의 맹훈련을 거친 후, 드디어 1976년도 The Open에 출전하는 모리스 아저씨.
세 아들 중 두 쌍둥이를 캐디로 이끌고 나섭니다. 첫 홀부터 아들이 채를 차에 두고 내린 바람에 위기를 맞이하지만 우리의 모리스 아저씨는 당황하지 않습니다.
꿋꿋하게 본인만의 플레이를 이어 나가지요.

"저 인간 뭐지?" 하는 시선 속에서도 그러거나 말거나 위풍당당 개썅마이웨이로 전진하는 모리스 아저씨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참담 했지요.
모리스 플릿크로프트의 최종 스코어는 121타. 오늘날까지 The Open 최악의 스코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121타라는 스코어, 아마추어 치고는 절대 나쁜 스코어가 아닙니다.
심지어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필드 라운딩에서, 그것도 The Open이라는 최상급 메이저 대회에서 애누리나 컨시드 없이 (아마추어 골퍼들이 스피디 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끔 배려 차원에서 마련된 장치들입니다) 저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입니다.
(참고로 저는 첫 라운딩, 흔히들 말하는 '머리 올리는' 라운딩에서 123타를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동반자들이 많이 배려해 줘서...)

첫 대회를 마친 시점이 영화의 딱 중반부 정도 됩니다.
나머지 자세한 줄거리는 굳이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이 영화가 부각 시키는 골프라는 스포츠의 매력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모리스 플릿크로프트가 The Open에 출전한 해가 1976년도, 그의 나이 40대 후반부를 달려가고 있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씀 드렸듯이 아마추어로서는 양호한 (저보다도 우수한) 스코어를 기록합니다.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러한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고 성별이나 나이에 따른 핸디캡이 타 스포츠만큼 크게 작용하지 않죠.
부모자식간에 동반 라운딩을 하며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심지어는 한창의 나이인 자식이 환갑을 넘긴 부모에게 패배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저도 아직 환갑을 넘기신 저희 부모님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 타이거 우즈와 그의 아들 찰리 우즈... 찰리의 최근 성장세를 보면 그의 미래가 매우 기대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골프는 한 번 배워 놓으면 노년까지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운동이고 단순히 힘과 근육이 아닌 멘탈로 승부해야 하는 게임이기에 어떤 면에처는 오히려 노년층 플레이어가 더욱 유리한 게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골프의 또 다른 매력은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겠지만 골프는 더더욱 '대화'의 스포츠라는 점입니다.

PGA 투어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김주형 선수. 유창한 영어 실력 덕에 유난히 캐디와 소통을 잘하기로도 유명하죠.

단순히 플레이를 하면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넘어 대화가 필수인 경기가 바로 골프입니다.
캐디들과는 물론이고 아마추어들의 경우 함께 라운딩을 하는 동반자와 대화를 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이 되어주기도 하죠.
각기 다른 세대의 가족 구성원들이 함께 하기에 좋고 특히 비즈니스와 관련하여 골프 접대가 많이 이루어지는 점도 이러한 이유가 주요 한다 볼 수 있겠지요.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브리티시 오픈의 유령>은 골프의 매력 외에도 어떠한 메세지를 담고 있었던 것일까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제가 느끼기에는 가족, 사랑, 꿈, 희망, 그리고 이를 망라하는 의(義)가 아닐까 싶습니다.

끝까지 본인을 믿고 지지해 준 가족이 있었기에 꿈을 이룬 모리스 아저씨
가족 구성원 중 특히 모리스와 아내 진(Jean)의 유대관계는 정말 감명 깊게 다가옵니다. 그들은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예외 없이 지지해 주는 사이로 묘사되기 때문이지요.

거침 없이 꿈을 향해 달려가라는 서로에 대한 격려와 신뢰.
이 끈끈한 가족애와 서로에 대한 '의리'가 골프를 제외하면 본 영화의 가장 핵심 주제입니다.
매우 클리셰 하면서도 어찌보면 실리만을 추구하는 오늘날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다소 낭만적인 가치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잠깐 시야를 넓혀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국가가 소멸 위기에 놓일만큼 출산률이 위험한 저점을 기록하고 있다고들 하죠.
표면적인 이유야 많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실리에 대한 추구만이 남고 낭만이나 '의'의 가치가 점차 사라져 가는 이 세상에서 굳이 아이를 낳고 키워서 좋을게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출산이 가장 꺼려지는 것 같습니다.
견리망의 (見利忘義).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23년도 올해의 사자성어입니다.
'이익을 좇다 의를 잊다.'
이보다 우리 사회를 더 잘 나타내는 말이 있을까요? 단순 정치에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견리망의' 교수신문 선정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견리망의'라는 이 사자성어와 <브리티시 오픈의 유령>에서 모리스 플릿크로프트가 보여준 그의 가치관과 골프 인생은 서로 상반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리스 플릿크로프트와 그의 골프 인생은 실리를 따진 결과물이 아닌 낭만 그 자체였고 '의'로 인해 이룰 수 있는 업적이었으며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던져 주는 메세지와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 눈 앞에 있는 이익만을 좇기 보다는 가끔은 '의'를 생각하고, 옳은 일을 좇고, 다소 낭만적인 꿈과 희망을 좇을 수 있기를 바라는... 그것이 용인되는 사회가 되어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골프 또한 엄연히 경쟁을 하는 스포츠이긴 합니다만 그 어느 종목보다 '의', 즉 매너와 에티켓을 중시하는 게임입니다.
이는 단순히 경기 규칙, 옷차림 등 표면적인 것을 넘어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의미하죠. 아무리 스코어가 중요하더라도 절대 '의'를 저버리지는 않는 선에서 경기를 하는 것이 골프의 참된 목표이자 매력입니다. 그러한 게임이기에 오붓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스포츠인 것이지요.

골프의 인기가 여러 세대, 특히 젊은 층으로까지 확대 되며 골프의 이러한 핵심 가치보다 의류, 아이템, 인증샷 등 그저 또다른 "FLEX"의 장이 되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중장년층의 목소리가 그저 '꼰대의 잔소리'로 다가오지 않고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의'를 중시하는 스포츠인 골프

영화에서 모리스가 첫 대회를 121타로 마치던 순간 관중(갤러리)의 야유가 아닌 환호와 박수갈채가 터지는 장면, 나중에 알고보니 모리스를 기념하는 대회가 미국에서 생겨났고 모리스가 생각보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장면 등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꼭 잘해야만 인정 받는 세상이 아니라 꿈과 희망 또한 인정 받고 응원 받을 수 있는 '의로운' 세상에 대한 묘사이니까요.

글을 쓰다보니 또 이야기가 겉잡을 수 없니 확장 됐네요...
2023년 한해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든 해였지만 그만큼 더욱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는 해가 될 듯 합니다.
그런 해였다 보니 이런 따뜻한 격려가 담긴 영화에 좀 더 마음이 갔고 확대 해석까지 하기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독자 분들도 2023년 마지막 날 허심탄회하게 술 한잔과 함께 환호와 박수 속에 날려 보내시고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2024년을 맞이 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Till nex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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