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세상에 가장 필요한 영화
오늘 이야기 해 볼 영화는 <콘클라베>입니다. 개봉 이후 작품성을 인정 받았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포함하여 여러 부문에 걸쳐 후보로 올랐으나 워낙 쟁쟁한 경쟁상대가 많았던 탓에 아쉽게도 각본상 딱 한 개 부문에서만 수상을 한 작품입니다. 다만, 다행히도 아카데미 시상식을 제외한 기타 영화 시상식에서는 제법 선전을 하기도 했죠.
지독하다면 지독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별세하시며 <콘클라베>는 국내에서 '역주행' 비슷한 현상을 겪게 됩니다. 그 탓에 상영관이 살짝 늘어나며 운좋게 저도 최근에서야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여운이 상당히 길게 남았고 요 근래 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울림이 강렬했습니다. 언뜻 보면 종교 영화이지만 <콘클라베>는 그 이상의 장르적 역량을 뽐내고 있고 신앙, 종교 차원에서의 메세지가 아닌,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메세지를 주는 영화입니다.
장르적 측면에서 먼저 보자면 정치극, 스릴러, 드라마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톤이 상당히 잔잔할것이라는 제 예상을 뒤엎고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의 긴장감과 박진감, 그리고 전체적인 템포를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편성 자체가 웅장하진 않지만 적은 수의 악기로 영화의 전반적인 텐션을 높여 주는 역할을 아주 잘해낸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는 저음 악기를 메인 선율로 사용한 점 (첼로로 추정), 강력한 비트와 악센트, 그리고 장조가 아닌 단조로 이루어진 선율의 구성이 함께 어우러지며 그 효과가 극대화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음악 외에는 새로운 등장인물을 영화에 투입 시키는 타이밍과 그 방식 또한 절묘하여 영화의 긴장감을 더해 줍니다. 교황의 자리를 원치 않으나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는 추기경, 노골적으로 교황의 자리를 탐내는 추기경, 중립적이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비리가 암시되는 추기경 등 각자 다른 의도와 성격과 사연을 가진 후보들이 교황청으로 속속 모여 들며 '자, 이제 본격적으로 교황 선출이 시작되겠군'이라고 생각을 하려는 찰나에 미지의 인물, 베니테즈 추기경이 등장합니다. 멕시코 출신인 그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추기경으로, 그의 안전과 교황청의 안정성 모두를 담보하기 위하여 사망한 전 교황으로부터 비밀리에 임명 됐다는 설정을 가지고 나타나죠. 이 때부터 베니테즈 추기경이 추후 스토리 전개에 있어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암시되고, 그것이 어떻게 드러날지 관객들로 하여금 상당한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또한,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유력한 교황 후보들간의 암투 역시 매우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벨리니 추기경의 '파벌'이 작전실로 이용하는 어두운 강당 scene이 등장할때면 영화에 상당한 무게감과 긴장감이 투여 되고는 합니다. 배경이 교황청으로 옮겨졌을 뿐, 매우 흔한 소재로 쓰이는 정치 세력들 간의 당파 싸움, 암투의 느낌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죠. 신을 위한 일을 하지만 추기경들 또한 결국 인간임을 나타내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암투와 긴장감은 어디서 이루어지고 고조되는 것일까요? 바로 굳게 닫혀 있는 '문' 너머입니다. 영화는 교황이 서거한 후 교황의 침실을 봉인하며 시작되죠. 그 이후 영화의 주요 스토리 전개는 모두 문 너머에서 이루어집니다. 앞서 언급한 강당을 비롯해서 실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역시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빛 하나 들지 않는 실내 공간에서 진행이 되죠.
고조 되었던 긴장감은 결국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실내가 개방되며, 봉인 되어 있던 문이 열리며, 비밀로 취급 되었던 정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하나둘씩 해소 되어갑니다.
영화에서 정말 결정적인 장면인 시스티나 성당 폭발 scene입니다. 어둠이 가득했던 시스티나 성당 외벽에 균열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빛이 들어오고, 이 사건을 필두로 하여 영화상 고조 되었던 갈등과 긴장감이 해소 되기 시작합니다. 폐쇄 되어 있던 공간이 억지고 개방 된 이후에야 '신의 메세지'인 벽화가 비로소 빛을 받고 선명하게 보이죠.
이러한 구조와 상징으로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해답은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두 장면에 있습니다.
'콘클라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앞서 주인공인 로렌스 추기경은 설교를 하는데 이 내용이 영화의 핵심 메세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죄는 바로 확신이다.' 확신이야 말로 선입견을 낳고, 소통의 부재를 야기하며 포용, 관용과 같은 개념을 말살 시킨다는 것이죠. 외부와 단절되어 굳게 닫혀 있는 문 너머의 실내 공간과 같습니다. 확신으로 말미암아 닫힌 문 경계 이내에 있는 것들만 진리가 되고, 그로 인해 조직과 휴머니즘은 쇠퇴하게 되죠.
이후 영화 말미에 베니테즈 추기경이 전달하는 연설은 앞선 로렌스 추기경의 연설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폭발 사건 이후 추기경들이 강당에 모여 설전을 벌이는데 이 장면을 가만 보고 있자면 사실 그 누구도 폭발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 진영의 테데스코 추기경은 이 사건의 배후에 이슬람 교도들이 있다고 확신하며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죠.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나는 예시인 셈입니다. 근거 없는 확신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필요한 갈등과 선입견.... 그러던 베니테즈 추기경은 갈등은 무의미하며 교회라 함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봐야 한다고 연설을 하죠.
오늘날 너무나도 필요한 메세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확신에 찬' 진영들이 대화를 거부하고, 양극으로 치닫는 현상을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콘클라베>가 주는 메세지야 말로 가슴 깊게 새겨야 하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상당히 빠르게 새로운 교황이 선출 되었습니다. 최초의 미국인 교황, 시카고 출신, 많은 이들이 평가하기를 트럼프와 대조되는 진보 성향의 가치관.... 영화 <콘클라베> 결말에 선출되는 교황과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이 분을 통해 <콘클라베>의 메세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속에서 조금이나마 실현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Till nex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