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기회
어떤 영화를 보고, 의미를 알고 나서야 사랑에 빠지는 일이 있기도 한 걸까. <애프터썬>을 처음 봤을 때는 무슨 영화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내용이 어려운 영화는 아닌데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감이 안 잡혔다. 그러다가 이런저런 해석을 찾아보고, 여러 번 보고 나서야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게 됐다. 어쩌면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애정이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우울하고 푸른 분위기에 이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캘럼의 정신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건 영화 해석을 찾아보지 않아도 자명하고(나는 처음에 캘럼이 불치병에 걸렸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왜 캘럼이 그토록 슬퍼보이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제목 <애프터썬>은 선크림이라는 뜻인데, 영국에서 선크림을 사본 적은 없지만 애프터썬이라는 단어를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도 보통 선크림을 얘기할 땐 선블록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으니까.. 그래서 제목의 뜻을 알면서도 선크림이 아니라 '해가 지고 난 후'의 의미로 혼자 받아들였다. 그게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의미이기도 하고.
영국이 전반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긴 하지만 리버풀은 특히 구름낀 날이 많다. 구름이 단순히 많은 것도 아니고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낀 날이 흔하다.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내는데, 며칠 있다 보면 푸른 하늘을 전혀 볼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해지곤 한다. 우리 가족의 오랜 지인이자 친구인 캐리는 다들 런던에서 살고 싶어하는 이유가 날씨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리버풀에 유학온 이래 처음으로 런던에 놀러갔을 때 나는 푸른 하늘을 보고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리버풀에 친구가 있는데도 아웃의 괴롭힘으로 한동안 시달렸던 데다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해서 리버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캐리네 집에서 머물면서 오랜만에 가족의 따듯함을 느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에서 느껴야 하는 외로움과 한국에서 가져온 우울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캘럼은 영국 중에서도 에딘버러 출신이라고 영화에 나오는데, 영국에 살다 보면 날씨로 인한 영국인들의 우울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 우울은 캘럼의 우울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럼에도 영국에 살다보니 괜히 캘럼을 한층 더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학교 폭력을 겪은 이후로 우울을 그림자처럼 달고 살았던 내가 캘럼에게 공감한 건 당연했다. 캘럼의 과거는 영화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고, 캘럼과 딸 소피의 대화에서 짧게 언급될 뿐이다. 캘럼은 고향인 에딘버러에 정착하지 못하고 런던에 내려오려고 한다고 소피에게 말하지만 아마도 캘럼은 런던에 가지 않았..아니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뿌리를 둔 장소에 연결고리를 느끼지 못하는 심정을 어째서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의 노원구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곳에 애틋함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쪽은 가본지도 오래됐다. 나의 성장기를 보낸 그 곳은 사교육의 온상이자 학창시절 공부한 기억밖에 없는 곳이었다. 설상가상 내가 정을 붙인 몇 안되는 장소인,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영화관은 이제 프랜차이즈 영화관으로 바뀌었다.
반면 항상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캘럼이 딸 소피와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겪었을 고뇌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나 혼자 살기에도 벅찬 사람이었고 엄마는 우리 남매를 키우는 게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서 자녀를 가질 생각은 중학교 때부터 없었다. 나보다 심한 우울증을 가진 캘럼이 어쩌다 딸을 갖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영화 내내 소피가 자신처럼 우울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캘럼의 심정이 눈에 보일 것 같았다. 캘럼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물리적인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여러 분야를 시도했던 사람이고 아직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좋아서 그렇게 떠돌이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캘럼이 누구보다도 정착을 원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락밴드 퀸의 Under Pressure가 연주되는 순간이다. 노래 가사는 자막으로 번역되는 일이 흔치 않은데 유독 이 영화의 이 장면만은 노래가사가 번역된 자막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는 노래 가사가 그 장면과 지독하게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를 알면서도 그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다시는 이 곡을 같은 귀로 들을 수 없게 됐다.
Can we give ourselves one more chance?
우리는 우리에게 기회를 한번 더 줄 수 없을까?
Why can't we give love that one more chance?
왜 우리는 사랑에 기회를 한번 더 주지 못하는 걸까?
Why can't w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give love...
왜 우리는 사랑에게, 사랑에게, 사랑에게, 사랑에게, 사랑에게..
Cause love's such an old-fashioned word and love dares you to care for the people on the edge of the night
왜냐하면 사랑은 유행이 지난 단어고 사랑은 우리가 밤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게 하니까
and love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caring about ourselves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우리를 돌보는 방식을 바꾸게 하니까
This is our last dance
이게 우리의 마지막 몸부림이야
This is our last dance
이게 우리의 마지막 몸부림이야
This is ourselves
이게 우리 자신이야
이 음악이 나올 때 어둠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캘럼에게 성인이 된 소피가 다가가 안아주고 다시 멀어지는 장면은 따듯하면서도 처연하고 슬픈 장면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소피가 캘럼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했다. 튀르키예를 캘럼과 함께 여행했던 어린 소피는 캘럼을 구원하기엔 너무 어렸고, 성인이 된 소피는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보며 과거를 돌아보지만 아직도 캘럼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해야만이 구원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유학 기간 이 영화를 여러 번 떠올렸지만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는데도 차마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마 타지 생활을 하면서 나는 마침내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실체에 다가섰고, 캘럼의 우울을 온전히 목격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이 영화를 보면 캘럼의 우울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하면서도 다시 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Under Pressure가 흘러나오는 순간 캘럼이 춤을 추는 장면을 두고 혹자는 소피의 상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오랫동안 곱씹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항상 가혹했다. 성취감을 느껴본 기억이 드물고, 무언가를 해내고 나서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곤 했다. 내 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안쓰러워 했다. 유학을 가겠다는 청천벽력같은 발표를 하고 나서 내 주변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며 유학을 갈 결심을 한 것과 실천에 옮긴 것을 대단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개발자로서의 생존을 위해 유학을 선택했을 뿐이고, 유학 준비는 하다보니 된 거였다. 유학을 떠날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졌어도 됐을텐데. 알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게 두번째 기회를 잘 주지 못했다.
큐레이터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나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이제 다시는 사람에게 정을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속상해하며 살짝 질책하기도 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은데 내가 상처받는 게 두려워 인간관계를 시작부터 거부하겠다고 선언해버렸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공부한 덕분에 내가 인간관계에서만큼은 병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고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드는 에너지가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아 받아야 하는 불이익보다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서 친구는 나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네가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았으니 그런 반응을 하는 게 당연했다고. 사실 큐레이터와 다시 친구로 지내기로 마음먹은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그게 프레디 머큐리가 말하고 싶어했던, 사랑에 두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었을까.
유학생활이 끝나고, 내가 얻은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나는 나 자신에게 두번째 기회를 줄 수 있을까. 캘럼은 자신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지 못했는데, 캘럼이 할 수 있었다면 영화가 어떻게 끝났을지 아직도 궁금하다.
*<애프터썬>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