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이냐 터미네이터냐
목차에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작품이 인공지능이라는 뜻인 <에이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신기할 정도로 필모그래피에 굴곡이 없는 편인데, 영화 제작 편수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올타임 레전드 감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필버그의 작품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편이다. 어렸을 때 <쥬라기 공원> 시리즈로 유명했던데다 이름도 뭔가 sf 작가 느낌이어서 공상과학 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막상 씨네필이 되고 보니 스필버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감독이었다. 몇년 전에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드디어 뮤지컬 영화에도 도전했을 정도니까..
스필버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편인데, 유독 <에이아이>에 관해서는 특히 결말을 두고 감상평이 반으로 갈리곤 한다. 혹시 이 영화가 재개봉을 하진 않을까 싶어서 오랫동안 일부러 보지 않고 기다렸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스크린에 걸린 적이 없어서 결국 PC로 이 영화를 봐야 했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꽤 흥미롭게 봤는데, 사실 나도 결말을 보는 순간 ..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끝났어야 했나..?
이동진 평론가는 <에이아이>를 대단히 좋아하는 평론가고, 심지어 스필버그의 필모 가운데 최고작으로 꼽기도 한다. 해설을 들으니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납득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좋아지진 않았다. 여전히 나에게 <에이아이>의 결말은 개연성이 없어 보였으니까. 이 영화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던 도중 알게 된 희한한 사실이 있는데 MBTI의 T/F를 기준으로 T인 사람들은 <에이아이>의 결말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고 F인 사람들은 엉엉 울었을 만큼 좋았다고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반례가 없었던 건 아닌데 높은 확률로 일치해서 나중에 이동진 평론가를 만나면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이동진 평론가의 MBTI는 INFJ라고 한다). T 성향의 사람들은 서사의 개연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고, F인 사람들은 데이빗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동진 평론가와 같은 MBTI를 공유하는 내 친구는 내 감상을 듣고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영화광이라며 비난 아닌 비난을 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뇌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데, 사실 인간의 뇌에 분포한 신경망은 그 수가 엄청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해서 인공지능이 사실은 생각보다 인간의 뇌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아무리 물리적인 서버를 많이 갖다붙여도 인간의 뇌를 카피할 수는 없다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덕분에 뇌인지과학이 핫한 분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인공지능을 막상 공부해본 내 입장에선 확연히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는 다르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인공 신경망을 많이 만들어도 인간의 뇌는 반도 복사할 수 없고, 그래서 인공지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그런데 이 발전 방법도 생명체의 후세대 양성 프로그램(?)을 모방한 기법이 대다수다. 돌연변이를 만든다거나 양쪽 데이터에서 더 나은 부분만 취해서 다음 세대를 만든다거나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뭔가 자연에서 탄생한 생명체와는 다른 느낌이 있다. 크레파스로 엉성하게 그린 정물화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은 분할 만큼 나보다 영어도 잘하고 코딩도 잘한다.
그래서 사실 <에이아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소년 데이빗은 그야말로 허구의 산물에 불과한지도 모르고, 어쩌면 인공지능이기에 등장한 캐릭터일 수도 있다. 데이빗은 평생 엄마를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됐는데, 인간은 데이빗과는 달리 죽을 때까지 자신을 버린 가족마저 병적으로 사랑하기도 하지만 결국 가족과 연을 끊기를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이빗은 개발자의 기본 프로그래밍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환경에서 배울 줄 모른다. 그래서 결말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해결할 게 아니라 그냥 엄마를 더 이상 찾지 않도록 알고리즘을 바꿔주면 되는 게 아닐까라고 얘기했다가, (F인) 친구에게 네가 사람이냐는 말을 듣고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영원히 엄마를 찾을 운명인 데이빗이 불쌍한 거라면 그 목적의식 자체를 없애서 평안을 선사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건데..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인데, 특히 최근 들어 <에이아이>처럼 따듯한 인공지능을 그린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승리한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감이 심화된 듯하다. 그래서 <터미네이터>류의 아포칼립스물이 주류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막상 인공지능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인간의 창의성을 따라오지는 못한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읽었던 로봇 과학자의 인터뷰에서 로봇이 집안일을 하고 사람은 예술 활동을 해야 하는데, 현재의 인공지능 개발은 반대로 가고 있다는 내용을 읽어서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술은 죄가 없고,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문제다. 딥페이크 같은 기술은 범죄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아보일 정도니..
영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커터칼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반 문구점에서는 아예 안 팔고, 그나마 화방에 가면 전문가용 커터칼을 5파운드 정도에 살 수는 있지만 부피도 크고 예쁘지도 않다. 결국 찾다 포기하고(한참 후에 TAZAR라는 마트에서 묶음으로 파는 투박한 커터칼을 결국 발견하긴 했다) 아는 언니에게 부탁해서 한국에서 배송을 받았는데, 배송받은 커터칼 중 하나를 캐리에게 선물했더니 얼마 전엔 부엌에서 가장 쓸모있는 소품이라는 말을 했다. 영국에서는 심지어 칼을 사용하는 직업군이 아니라면 칼 소지가 불법이라면서(물론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는 한 소지품 검사를 하진 않기 때문에 평상시에 들고다니는 것 자체에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다이소만 가도 캐릭터 커터칼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칼을 종이를 자르거나 연필을 깎는 용도 이외에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던 스무 명도 넘는 아이들 모두 커터칼을 갖고 있었지만 3년동안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칼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건데.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반면 몇 안되는 인공지능 혹은 로봇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들은 진정한 인간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오래된 영화지만 <바이센테니얼 맨>의 경우는 주인공 로봇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담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어설픈 심리학자인 내 대답은 이것이다. 인간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의 따스한 면만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인간은 원래 선악이 섞인 복잡한 존재고, 그런 인간을 사회 집단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게 법과 규칙, 그리고 사회화라고. 그래서 인공지능이 따스한 면을 보여준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인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에게서 부드럽고 자애로운 면을 봤다면 그건 그 인공지능을 개발한 개발자의 공이다. 결국 개발자의 코드는 개발자를 닮게 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 개발자는 자신이 개발하는 기술이 세상을 좀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길 바랐던 거겠지.
학기 중에 참석했던 인공지능 포럼에서 관객 질문을 받았는데, 좋은 질문이 많았다. 인공지능 자체를 문제삼기 이전에 대중을 교육할 생각이 없냐거나, 인공지능을 규제할 게 아니라 사용하는 인간을 규제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들이었다. 어떤 기술은 폭력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기술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태어났다가 오용되곤 한다. 우리가 만드는 인공지능이 데이빗이 될지 터미네이터가 될지는 결국 우리가 정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인간화되는 걸 두려워하지만, 정작 인공지능은 인간과는 정말 다르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평온함이 찾아오면 은퇴할 줄 아는 데이빗을 만들고 싶었다.
*<에이아이> 이미지 출처는 네이버입니다.